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 인수전 승기를 잡았다. 21일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도시바는 이날 이사회를 열고 일본 정부계 펀드인 산학혁신기구, 미국의 사모펀드, SK하이닉스 등이 포함된 한미일 연합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업계 1위 삼성전자의 분위기는 어떨까. 공식적으로는 '노코멘트'다. 타 사의 시장 점유율과 경쟁력에 대해 평가하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삼성전자 관계자는 "산술적인 점유율 합산도 크게 의미가 없어진 상황에서 한미일 연합군이 시너지를 일으킨다고 해도 당장 판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기술력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만약 도시바를 단독기업이 인수했다면 삼성전자도 잔뜩 긴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기술력 차이는 차치해도 기본적인 점유율이 출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미일 연합군이 51%의 지분을 각자 나눠가지는 상황에서 파급 효과가 낮아졌다는 점은 삼성전자측에 긍정적이다. '삼성 타도'를 외치고 있는 폭스콘이 샤프에 이어 도시바까지 단독으로 인수했다면 '신경쓰이는 상황'이 될 수 있었지만 이 역시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폭스콘은 메모리 반도체를 운용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당분간 낸드플래시 시장은 삼성전자의 1등 구도가 굳어진 상태에서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를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치열한 2위 다툼이 벌어질 전망이다. 그 중심에서 웨스턴디지털과 SK하이닉스가 연합군 내부에서 치열한 패권 경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SK하이닉스가 한미일 동맹 지분 15% 수준을 확보한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적지 않은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도시바는 낸드플래시 시장의 강자이자 글로벌 시장 점유율 2위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낸드플래시 발(發) 시장 구도가 출렁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출처=픽사베이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7%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도시바가 17%, 웨스턴디지털이 16%를 기록하고 있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11%로 공동 4위에 이름을 올렸다.

만약 도시바 낸드플래시 점유율을 SK하이닉스가 단독으로 가져갔다면 합산 점유율은 28%에 이르게 된다. 1위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한 자릿 수로 좁힐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미일 연합이 공동으로 도시바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품어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28%라는 꿈의 점유율은 가져갈 수 없다.

한미일 연합에 SK하이닉스와 웨스턴디지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점유율을 합산하면 재미있는 결론이 나오기도 한다. 도시바가 11%, 웨스턴디지털이 16%, SK하이닉스가 11%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38%의 점유율이 되기 대문이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의 37% 점유율을 근소하게 넘어서게 된다.

그러나 한미일 연합이 특수목적회사를 만들어 도시바 메모리 지분 51%만 인수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 역시 의미없는 계산이다. 삼성전자가 이번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인수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반응하는 이유다.   

도시바 입장에서는 낸드플래시 사업을 버리는 개념이 아니라, 도시바 지분을 묻어둔 상태에서 중화권을 배제하고 다국적 연합군을 구성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렇게 되면 특수목적회사를 매개로 한미일 연합에 속한 각 기업들이 '얼마나 시너지를 낼 수 있는가'가 중요해진다. 이후의 파급력에 대해 지금 당장 단언할 수 없는 이유다.

다만 한미일 연합군에서 미국은 웨스턴디지털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모펀드로 구성되어 있고, 실제 반도체 사업을 잘 알고있는 플레이어가 의외로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SK하이닉스는 일본 내 부품 파트너와의 협력을 꾀하는 한편 연합군 내부의 지분을 추가로 접수하는 등의 시나리오를 그릴 수 있다. 추후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한편 중국은 반도체 대국굴기를 꿈꾸는 상황에서 시스템 반도체를 넘어 메모리 반도체까지 세계시장 수위권 진입을 목표로 삼았지만 도시바 인수전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다. 칭화유니를 중심으로 마이크론과 샌디스크 인수에 연거푸 실패할 정도로 견제를 받는 상태에서 도시바는 언감생심이라는 뜻이다.

아직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예상할 수 없지만,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인수는 자체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중국의 미래 메모리 반도체 굴기 전략에도 적지않은 충격을 줬을 것으로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