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연차총회에서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해 새로운 ICT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김대중정부 시절 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추진된 ICT 인프라 작업이 우리나라 인터넷 속도의 비약적인 팽창을 거듭하게 해 유의미한 성과를 창출한 지점을 따라가는 분위기가 읽힙니다. 고무적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4차 산업혁명에 남다른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를 존속시켜 4차 산업혁명의 선봉장 역할을 맡긴다는 점을 분명히 했으며, 유영민 장관 내정자도 "4차 산업혁명 구현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 무엇?

새로운 정부의 출범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의 뜨거운 열기가 미래의 대한민국을 삼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영역의 응용법도 고개를 들고 있어요. 섬유업계에서는 섬유패션의 4차 산업혁명을 외치며 온오프라인 유통 플랫폼을 구축하자고 나섰으며, 국회기후변화포럼은 14일 국회에서 기후기술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주제를 다루기도 했어요. 물류도 4차 산업혁명, 골목상권도 4차 산업혁명, 육아도 4차 산업혁명 시대입니다. 고용노동부는 제4차 산업혁명 대비 국가기술자격 개편 방안을 발표하며 17개 국가 자격증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어요.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묘한 의심이 듭니다. '도대체 4차 산업혁명이 뭐길래 다들 써먹지 못해 안달이 났을까?' 이런 의심은 박근혜정부 당시 나온 창조경제의 의미를 둘러싼 논쟁과 오버랩되며 실체를 가진 위협으로 여겨집니다.

박근혜정부는 미래부를 발족하면서 창조경제 부흥을 기치로 걸었지만 정작 창조경제의 진짜 의미는 아무도 몰랐지요. 이런 상황에서 스타트업 열풍이 태평양을 건너 들이닥치자 창조경제는 갑자기 '스타트업 육성'이라는 패러다임으로 환치되어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잉태했습니다. 광의의 개념에서 출발했지만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 갑자기 변신을 거듭한 부분만 봐도 창조경제가 얼마나 덧없는 구호였는지 잘 확인됩니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도 창조경제와 비슷한 냄새가 나요. 왜? 그 누구도 실체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 사안이 아주 심각해집니다. 창조경제에 이어 모호한 4차 산업혁명을 일궈내야 하는 미래부 직원들의 한숨은 차치한다고 해도, '도대체 4차 산업혁명이 뭐냐?'라는 질문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연히 '4차 산업혁명은 실체가 없다'는 주장으로 연결됩니다.

맞는 말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 뭔가요? 지난해 다보스 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을 히트시킨 클라우스 슈밥도 뚜렷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어요. 스마트팩토리,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를까요? 연결혁명? 공유혁명? 2010년대 초 로렌스 레식 교수에 의해 공유경제의 개념이 처음 대두되었을 무렵, 사람들은 이를 4차 산업혁명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럼 클라우스 슈밥은 5차 산업혁명을 말했어야 합니다. 심지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외국에서 잘 사용되지도 않아요.

나아가 3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도 문제가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을 이용한 기계적 혁명, 2차 산업혁명은 전기의 힘을 이용한 대량생산의 시대,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를 활용한 자동화 시대로 봅니다. 그런데 3차 산업혁명 근간을 이루는 컴퓨터 활용은 경계가 약간 모호합니다. PC와 모바일의 경계를 포함하는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초연결 사물인터넷을 기점으로 4차 산업혁명과 대비되는 것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만약 초연결 사물인터넷만으로 3차 산업혁명과 4차 산업혁명을 나눈다면 이 역시 오류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초연결 인프라를 사물인터넷으로 부르는데, 이는 2000년대 초 유비쿼터스(Ubiquitous)의 개념과 상당히 유사하거든요.

유비쿼터스는 사물인터넷과 동일하게 초연결을 기본으로 하지만 3차 산업혁명의 내부에서 작동하는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요?

통신사가 1G에서 전화, 2G에서 전화와 문자, 3G에서 전화와 문자, 인테넷을 통해 통신혁명을 일으켰으나 4G에 이르러 그 이상의 사용자 경험을 발견하지 못하고 무턱대고 LTE(Long Term Evolution)라는 전송속도를 기준으로 삼은 것처럼 말입니다. LTE의 뜻을 풀이하면 '장기간의 지속적인 진화'입니다. 모호함의 극치이자 마케팅 용어이지요. 통신기술이 보여줄 수 있는 사용자 경험의 한계치입니다.

심지어 3차와 4차 산업혁명은 '산업혁명으로 부르면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1차 산업혁명으로 증기기관이 발전해 가내 수공업에 의존하는 인류의 생산성은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2차 산업혁명은 전기의 힘으로 중공업 산업이 발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어요. 모두 에너지 인프라의 변화와 비약적인 생산성 증진을 끌어냈습니다.

그런데 3차 산업혁명으로 확인할 수 있는 비약적인 생산성 증진의 증거가 있나요? 우리는 2차에서도, 3차에서도, 4차에서도 전기를 쓰고 있습니다. 본류는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3차와 4차 산업혁명을 거치며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늘어나지도 않았어요. 경계를 나눌 필요가 있나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4차 산업혁명은 신기루가 됩니다. 마케팅 용어, 의미없는 레토릭이 되는 겁니다. ICT 기업들이 몇몇 새로운 기술을 재발견하거나 일부 동원해 그럴싸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것.

심지어 공유경제를 4차 산업혁명에 포함시키면 황당하게도 5차 산업으로 변신하는 갈대같은 것.

나아가 불길한 예언이 들립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4차 산업혁명을 운운하며 접근하는 자들에게 사기당하지 말아라' 단순히 온라인 쇼핑몰을 하나 만들면서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고 있다며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들을 발견하는 순간 예언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100%라고는 말을 못하지만 아무 영역이나 4차 산업혁명을 붙여 세미나와 토론회를 여는 이들을 보는 순간, 예언은 이미 현실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 산업혁명의 주역인 열차. 출처=픽사베이

바보야, 핵심은 디테일에 있어

4차 산업혁명의 명확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소위 '사짜'들도 많아지고 있어요. 맞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위험한 단어입니다.

그러나 원점으로 돌아가 천천히 생각해 볼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마음에 들지 않아도, 분명한 변화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 아닐까요?

사실 산업혁명의 전제조건을 에너지 인프라와 생산성으로만 재단하는 것은 2차 산업혁명까지 유효합니다. 3차 산업혁명부터 이러한 개념이 살짝 달라진다고 봐야 합니다.

왜냐? 전기라는 에너지 인프라는 여전하고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늘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3차 산업혁명은 오프라인에 이어 온라인의 개념이 플랫폼 사업자를 통해 직접적으로 다시 오프라인에 발을 내딛는 행보가 연출되기 때문입니다. 즉 2차 산업혁명까지 존재했던 단 하나의 유일무이한 공간인 오프라인과 대비되어 온라인이라는 시장이 생겼고,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시장이 열리는 순간 세상에 없던 새로운 사업 비즈니스 모델들이 탄생했다는 겁니다.

이들의 생산성을 오프라인으로만 판단하면 전체값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ICT 기술은 소프트웨어 온라인 인프라로 오프라인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그 자체로 산업혁명에 준하는 변화입니다.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는 시각에 무게가 실립니다. 하지만 유비쿼터스에서 시작된 초연결의 실험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파괴하는 순간, 이 역시 에너지 인프라와 생산성 이슈와 완전히 달라지는 겁니다. 모든 것을 오프라인 산업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면 달라진 것이 없지만, 무수히 많은 기회의 장이 열리고 그 자체로 산업의 역동성이 올라가는 점은 혁명으로 불러야 합니다.

▲ 아디다스의 스마트팩토리. 출처=아디다스

그 중심에 정보(데이터)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는 정보를 다루는 방식의 새로운 혁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인더스트리(industry) 4.0을, 미국은 산업인터넷을, 중국은 인터넷플러스를 추진하고 있어요.  제조업이 강한 독일이 설비 및 단말기 중심의 플랫폼을 빠르게 발전시켜 공장의 고성능 설비와 기기를 연동시키는 장면과 GE를 중심으로 프레딕스 플랫폼을 가동, 클라우드를 중심에 두고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의 현실화를 목표로 진격하는 미국의 행보가 눈에 들어옵니다.

노동 집약적 제조 환경을 빠르게 스마트 제조로 돌리는 중국의 시도는 인더스트리4.0과 다소 다르지만, 기계화 및 자동화의 발전에서 인더스트리 4.0과 동일한 목표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정보, 그리고 공유와 흐름입니다. 전장은 이미 펼쳐졌어요. 인공지능이 횡행하며 빅데이터가 스마트데이터로 수렴되며 클라우드와 가상 및 증강현실이 판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유의미한 데이터가 흐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링크드인을 인수하고 아마존이 슬랙에 군침을 삼키는 이유, 그리고 애플이 중국 디디추싱에 투자하고 카카오가 스마트 모빌리티를 준비하는 한편 자율주행차 기업들이 차세대 플랫폼을 활용하는 진짜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맞습니다. 이건 정보 전쟁이에요.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혁명에 준하는 세상의 변화는 3차 컴퓨터, 4차 초연결을 매개로 동시다발적 전격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은 실체가 없어. 창조경제 2탄이야'라며 눈을 감을 겁니까? 핵심은 디테일에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광의의 개념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묶어 새로운 개념으로 설정하고, 싸움터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UN이 설립되었으니 지구의 평화는 영원할거야. 그러니 군대는 없어도 괜찮아"라면서 태평하게 살다가는 적국의 핵폭탄 맞습니다. UN이 설립되어 '참혹한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번진것은 드러나는 대의명분이고, 이면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생사의 문제입니다.

당장 움직여야 합니다. 먼저 4차 산업혁명을 우리 상황에 맞게 바꾸는 작업부터 해야 합니다. 그렇게 개념을 좁힌 상태에서 거대한 트렌드에 대항하지 말고 일단 활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합니다. 그 간극에서 '사짜'들을 걸러내고 세상이 우리를 선택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후 나아갈 길이 보이는 순간 큰 그림에 따라 특화전략을 펼쳐 생태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에는 정부가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정정도 중심을 잡아주어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자는 문재인정부에 드리는 간곡한 건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