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아누 파르타넨 지음, 노태복 옮김, 원더박스 펴냄

 

핀란드 출신 미국 저널리스트가 미국 생활을 겪으며 북유럽을 객관적으로 조명했다. 저자에 따르면, 세계가 선망하는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은 정치·경제·교육·사회문화 등 전 부문을 관통하는 핵심 철학을 하나 갖고 있다. 이른바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이다. 원래 스웨덴 역사가 라르스 트래고드와 헨리크 베르그렌이 도출한 스웨덴형 이론인데, 저자가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핀란드·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5개 노르딕 국가로 확장했다.

노르딕 이론의 핵심은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독립적이고 동등한 개인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제도와 정책으로는 개인을 가족 및 시민사회 내 모든 형태의 의존에서 자유롭게 하기 위해 가난한 자들은 자선으로부터,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자녀는 부모로부터, 노년기의 부모는 성인 자녀로부터 벗어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렇게 된다면, 모든 인간관계가 완전히 자유롭고 진실해지며 오직 사랑으로 이뤄질 수 있게 된다.

노르딕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최소 9개월 이상의 유급 출산휴가와 아빠 전용 출산휴가, 저렴하면서도 양질인 탁아 서비스, 기회와 평등을 보장하는 수준 높은 공교육, 학생과 교사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교육 방식, 무상 대학교육, 18세 이상의 독립을 지원하는 생활 보조금, 국영 의료 서비스와 전 국민 의료보험, 노인이 존엄을 지키며 늙어갈 수 있는 다양한 의료 및 생활 지원 혜택에는 노르딕 이론이 담겨 있다.

일반적으로는 이러한 북유럽 정책들이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한 공동체 강화 정책으로 오인된다. 하지만 저자는 노르딕 사회의 지향이야말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을 강화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그 결과로 가족이 굳건해지고, 공동체가 활성화되고, 교육 기적을 이뤄내고, 나아가 기업과 국가경제까지 발전하는 성취를 이루고 있다.

노르딕 사회는 혼인율이 감소하고 가족구성에 변화가 일고 있지만 두 가지는 서로 무관하다고 여긴다. 유연한 직장 생활은 충분한 유급 출산휴가 정책으로 보장돼 가정이 더 든든해지는 효과를 낳았다. 여성은 더욱 강해졌다.

핀란드의 어린이집은 서비스와 태도가 놀랍도록 균질하다. 부모들은 선택의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핀란드 교육 개혁의 가장 중요한 정책 가운데 하나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교사가 석사 학위 소지자여야 한다고 정한 것이다. 오늘날 교사 양성 프로그램은 가장 엄선된 대학 전공에 속한다. 훌륭한 교사 양성에 투자하면, 학교는 엄청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노르딕 사회가 마련한 노인 의료 계획의 목표는 노인들이 가급적 자신의 가정에서 지내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자체가 가정 방문 간호, 음식 배달, 집 청소, 장보기 도우미 등의 서비스를 무료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한다. 가족 구성원이 노부모를 직접 돌보기를 선호하는 경우, 국가가 관여해 해법을 찾아준다.

노르딕의 복지 정책은 사람들을 게으름뱅이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열심히 일하도록 북돋운다. 실업 수당, 출산휴가 수당, 퇴직 연금 등 많은 복지 혜택의 보장 정도가 개인의 소득과 연계돼 있다. 일할 수 있을 때 많이 일하도록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준다. 그 때문에 노르딕 지역 국민들은 조세 제도를 수지맞는 ‘패키지 거래’라고 여긴다.

핀란드에서 저자가 낸 세금은 국세와 지방세를 합쳐 소득의 30.6%였다. 외견상 높아 보인다. 하지만 그 대가로 의료보험, 유급 출산휴가, 추가로 2년간의 육아휴가와 수당, 저렴한 양질의 의료 서비스, 세계 최고의 초중등 교육과정, 대학 및 대학원 무상 교육 등을 보장받았다. 노르딕 나라들은 세계은행이 선정한 가장 기업 친화적인 국가 랭킹에서 일관되게 높은 순위를 유지한다. 핀란드의 법인세율은 비교적 낮다. 기업들은 2015년 기준 20%의 세금을 내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노르딕 사회에서는 직원들이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살 만하다. 그래서 한 푼이라도 더 주는 기업으로 이직하는 미국 실리콘밸리 같은 일이 없다.

노르딕 성공의 비결은 큰 정부가 아니라 ‘똑똑한 정부’이다. 노르딕 시민들은 그러한 정부를 만드는 데 적극 관여했다. 미래가 먼저 일어난 노르딕 나라들을 문재인 정부의 정책가들은 편견 없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