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필자는 세계적인 금융회사의 글로벌 혁신센터에서 미래의 성장동력을 발견하기 위한 워크숍을 몇 차례 주관한 적이 있다. 이 회사는 이미 금융업이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 없이는 성장이 불가능하며 생존 자체도 위협받을 것임을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자율주행자동차가 거리에 돌아다니면 우선 자동차 보험과 자동차 사고로 인한 상해보험 가입이 줄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오래 전부터 이 금융회사는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에 살아남기 위한 변혁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금융회사는 기존의 비즈니스 방식을 단순히 앱을 통한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는 수준이다.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이론을 주장하고 있는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혁신에는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과 ‘파괴적 혁신’에서, “존속적 혁신은 과거보다 더 나은 성능의 고급품을 선호하는 고객들을 목표로 기존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보다 높은 가격에 제공하는 전략인 반면, 파괴적 혁신은 현재 시장의 대표적인 제품 성능에도 미치지 못하는 제품을 도입해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라 말했다. 일반적으로 기존에 고객이 아니던 사람이나 덜 까다로운 고객들을 사로잡는, 간단하고 편리하고 저렴한 제품들을 출시하는 전략”이라고 했다. 존속적인 혁신보다 파괴적인 혁신을 이루는 것이 기업의 성장과 경기에는 훨씬 유리하다.

지금 국내 시중은행에서 진행되고 있는 금융업 종사자들의 구조조정 방식은 이미 10년 전에 유행했던 수익성 위해 인원을 줄이는 존속적인 혁신이다. 국내에 진출해 사업을 확장하던 씨티은행은 지점수를 130개에서 30개로 줄이기로 결정했고, 잉여 인력을 콜센터 직원으로 전환 혹은 명예퇴직으로 유도하고 있다. 하나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934여개의 지점수를 2025년까지 매년 50개 줄이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기존 고객들의 약 20% 정도만 은행을 방문할 정도이고 나머지 대부분이 고객들은 은행이 만들어 놓은 앱을 통해 모든 은행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또한 보험회사들은 상품은 보험 설계사에 의해 판매를 하다가 지난 몇 년간 은행을 통한 판매방식인 방카슈랑스가 전체 신규 보험거래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수백 년간 유지해 왔던 금융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그 수명을 다한 것 같다. 고객들이 예탁한 돈을 가지고 다른 고객에게 빌려주는 예대마진에 의한 수익구조에서 방카슈랑스 같은 수익성 사업과 몸집을 불리는 메가뱅크(Mega Bank)로 은행이 변화를 거쳐왔다. 하지만 원천적인 은행의 비즈니스 모델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최근 금융업에도 금융과 기술이 융합된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이 대두되고 있다. 보험업계는 인슈테크(보험+기술·Insurance+Technology) 스타트업들이 보험시장의 틈새를 파고들어 보장의 ‘개인 맞춤화’를 시도하고 있다. 국제보험감독자협의회(IAIS)는 ‘보험산업에서의 핀테크 발전’ 보고서에서 P2P보험과 온디맨드(On Demand) 보험을 대표적인 혁신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영국 P2P(Peer to Peer) 보험사인 게바라는 보험 상품에 가입할 고객을 소비자가 직접 구성할 수 있다. 소비자가 친구나 지인을 초대해 비공개 집단을 만들고, 게바라가 보험사와 협상을 한다. 보험료는 인원수, 차종, 그리고 지역 등에 따라 차등이 된다. 사고 가능성이 낮은 사람들이 많으면 보험료가 싸지고, 반대의 경우 높아지는 방식이다. 게바라에서 모인 집단 내에서 보험금 청구가 발생하면 그룹 내에서 적립된 보험료로 보험금이 지불되고, 다음 연도 보험료가 인상된다.

반면 사고가 없어 보험금 청구를 하지 않는 집단은 적립금이 쌓이면서 보험료가 점점 내려가 최대 80%까지 보험료를 낮출 수 있다. 또한 온디맨드는 소비자가 요구하는 시점에 즉각 원하는 형태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요 중심의 ‘맞춤형’ 서비스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시점에 즉각 간단한 보험 상품을 제안해 기존의 규격화된 상품이 도달하지 않는 틈새를 공략하고 있다.

금융관련 업무에 IT가 결합해서 빅뱅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하는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핀테크(Fintech)로 시작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경쟁자가 누가 될지, 그들이 언제 이 시장에 진입할지 가늠할 수 없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