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 상(Pulitzer Prize)은 언론계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1917년부터 시작된 이 상은 미 컬럼비아대학 언론대학원 퓰리처상 선정위원회가 주최, 매년 4월 수상자를 발표한다. 뉴스 및 보도사진 등 14개 부문과 더불어 드라마 및 문학 등 7개 부문에서 시상이 이뤄진다.

원래 퓰리처 상에 '온라인'의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1999년 공공 서비스 분야 시상에서 처음으로 온라인 작업을 인정한 후 2007년부터 모든 수상 대상에 온라인 콘텐츠를 포함시키고 있다. 기술의 발전에 따른 시대의 흐름을 따라간 셈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말하려는 저널리즘은, 정확히는 저널리즘의 근간을 이루는 기자의 종말은 퓰리처가 스스로가 받아들인 냉정한 칼날의 궤적과 정확하게 닮았다.

▲ 1969년 퓰리처 상 보도사진 부문 수상작. 출처=픽사베이

황색 저널리즘과 기레기의 시대
우리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라는 용어가 스스럼없이 사용되는 시대를 살고있다. 여기에는 막강한 의제설정능력을 휘두르며 권력자와 결탁한 악당에 대한 증오와, 그들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대중의 욕망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괴물의 탄생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언론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며 첫 발을 떼었다. 이후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이 벌어지며 기레기 논쟁은 사회 각층이 '서로의 서로를 향한 투쟁'에 나서는 상황에서 나름의 진영논리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내 주장과 맞는 논지를 펼치는 언론이면 내편, 아니면 죽음을"

세월호 참사 2주기가 지나고 촛불혁명으로 정권도 바뀌었지만 여전히 기레기는 대중의 관념 속에서 유령처럼 살아남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룩뉴스'와 같은 사이트다. 왜곡보도와 가짜뉴스를 대중의 힘으로 걸러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으며, 일주일에 한 번 순위를 매겨 뉴스와 기자를 대중의 분노라는 가판대에 패스트푸드처럼 공개한다. 여기에 범람하는 가짜뉴스의 등장으로 커져가는 반감과, 온라인 저널리즘 시대를 맞아 자극적으로 변해가는 일부의 일탈이 겹쳐지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 노룩뉴스. 출처=캡처

이 문제를 어디에서 풀어야 할까. 정치공학적 요소가 상당히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예단할 수 없지만, 크게 두 가지 측면의 방법론이 있을 수 있다.

먼저 '기레기는 언제나 있어 왔다'는 전제를 발굴하며 문제의 근원을 더듬어보는 방식이 있다. 따지고 보면 기레기라는 집단관념은 어느 세월, 어느 공간에나 있었다. 흔히 언론학에서는 미국의 경우 1800년대와 1850년대를 페니신문(pennypress) 시대, 1850년대에서 1900년대를 기자의 시대(Age of Reporter)로 본다. 특히 후자를 새로운 저널리즘의 대두로 이해하는데, 쉽고 간편한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페니신문 시대와 달리 기자의 시대에는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언론사와 기자의 시스템이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서 활동한 사람이 조셉 퓰리처, 바로 퓰리처 상의 창시자다. 그는 헝가리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부친이 파산하자,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17세의 나이로 미국에 온다.

그는 남북전쟁이 터지자 용병으로 활동했으나 전쟁이 끝난 후 당나귀 몰이꾼과 레스토랑 웨이터 등으로 전전하게 된다. 그러던 중 거리에서 체스를 두던 지역 언론사 관계자에게 우연히 발탁되어 언론계로 들어온다.

▲ 조셉 퓰리처. 출처=픽사베이

퓰리처는 언론계의 탁월한 경영자이자 전략가였다. 이를 바탕으로 업계의 신성으로 부상한 그는 금융업자 제이 굴드로부터 뉴욕월드라는 매체를 인수하게 된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재미있어진다. 뉴욕월드를 인수하기 전 운영했던 '포스트 디스패치'가 드라마틱한 성공담, 대중이 동경하는 상류층의 뒷 이야기 등으로 대성공을 거둔 상태에서 퓰리처는 자극적인 스캔들에 집중하는 저널리즘을 적극적으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황색 저널리즘의 탄생이다. 언론계 최고의 상이라 불리우는 퓰리처 상을 만든 사람이 황색 저널리즘, 우리말로 기레기 전성시대를 열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퓰리처의 지론은 "자극적인 신문이 사회적 목표에 부합한다"였다. 이에 충실했던 그는 끊임없이 강렬하고 뜨거운 이슈를 지면에 다뤘으며,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았다. 1887년 혜성처럼 등장해 탐정 저널리즘의 지평을 열었던 전설의 여기자 넬리 블라이가 퓰리처의 손에서 태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조셉 퓰리처와 뉴욕월드의 등장, 그리고 성공은 황색 저널리즘이 상당히 오랜기간 우리의 곁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다. 물론 고귀한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언론사가 대부분이었으나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가 19세기의 조셉 퓰리처를 보면 어떻게 반응할까? 한 번 천천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황색 저널리즘의 태동이 상당히 이른 시간에 시작되었다는 점은 확인됐다. 이후의 방향성은 어떻게 설정되었을까? 언론환경은 조셉 퓰리처가 유언으로 퓰리처 상을 남긴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구독료 및 광고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이 의제설정능력과 공존하며 감당할 수 없는 그림자를 남겼으며, 그 과정에서 세상을 밝히는 횃불이 간간히 명멸하는 분위기만 반복되었을 뿐이다.

결국 문제의 해결방안은 황색 저널리즘의 존재와 기원을 인정하고, '지갑을 열어야 하는 구독자를 확보해야 하는' 언론사의 기본적인 속성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여기서 두 번째 방법론이 등장한다.

▲ 페이스북 인스턴트 아티클. 출처=페이스북

온라인과 기술의 발전
월드와이드웹(WWW) 시대가 열리며, 세상은 인터넷으로 이어지고 모바일로 얽히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의 생성과 전달은 언론사의 전유물에서 모두의 플랫폼으로 개방되고 있다. 언론의 진짜 위기가 시작된 셈이다.

쉽게 말해 언론사 본연의 의제설정능력에 준하는 비슷한 파괴력을 불특정 다수가 가져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카르텔에 진입하는 진입장벽이 낮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당장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저널리즘에 쏟아지는 비난과 비판, 여기에 변화된 언론 환경에 대한 도전까지. 이를 모두 해결하려면 어떤 방법론을 제시해야 할까?

인터넷 시대 초창기 언론사는 새로운 인터넷 플랫폼에 참여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콘텐츠의 제작과 유포를 모두 확보했던 시대를 포기하고 인터넷 플랫폼에 콘텐츠를 맡기는 방식이다. 독일 악셀스피링거가 구글 플랫폼에 올라탔고, 국내 언론사들은 네이버로 달려갔다.

이러한 방식은 얼핏 '윈윈'으로 보이지만, 저널리즘에 쏟아지는 비판을 키우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시공간을 따지지 않는 온라인 플랫폼 유통은 규모의 경제라는 진입장벽을 허물었으며, 그 과정에서 언론사 자체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행보로 이어졌던 지점이 일차원인이다. 언론사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은 언로의 다각화적 측면에서 고무적이지만, 그에 비례해 필요이상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콘텐츠의 질이 저하되는 역기능도 있다.

그런 이유로 언론사의 비즈니스 모델도 인터넷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점점 망가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많아지는 언론사 숫자에, 콘텐츠의 가치는 인터넷 패러다임을 거치며 '무료 콘텐츠'의 당위성을 확보하기도 했다. 그래도 언론사는 온라인을 버릴 수 없다. 그렇게 늪에 빠져갔으며, 늪에 빠질수록 더욱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기사를 통해 근근히 살아오는 것이 반복됐다.

그리고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2010년대에 들어 언론계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만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포털이라는 인터넷 플랫폼에서 벗어나 또 다른 플랫폼 종속에 기꺼이 고개를 들이미는 형국이었으나, 페이스북과 같은 신진 플랫폼 사업자들은 기존의 플랫폼과 달랐다.

인스턴트 아티클과 같은 상생의 모델을 통해 나름 접점을 찾으려 시도했기 때문이다. 최근 페이스북은 인스턴트 아티클에 배치된 언론사 콘텐츠 일부를 유료 모델로 전환해 자신들은 독자 데이터를 확보하고, 수익금은 언론사에 배분하는 모델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SNS의 언론 콘텐츠 파괴력이 기존 포털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우울한 결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4월 미국의 미디어 전문매체 디지데이는 "페이스북 인스턴트 아티클에 대한 저항이 높아지고 있다"며 "뉴욕타임즈와 같은 몇몇 언론사들이 인스턴트 아티클을 포기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페이스북의 폐쇄적 정원에 들어서며 언론사 홈페이지 도달률이 떨어지고 이에 따른 수익성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황색 저널리즘은 이미 존재했던 상황에서 온라인 세상이 펼쳐지자 언론사의 플랫폼 종속은 더욱 심해졌다. 그 과정에서 황색 저널리즘은 기술의 발전을 따라 점점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고, 언론사의 입지는 크게 좁아지고 있다.

언론사들은 필사적으로 대응하는 중이다. 뉴욕타임스는 혁신보고서를 만들고 일각에서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저널리즘을 구현하기도 한다. 빅데이터 사용자 경험만 제공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바이럴 영상으로 길을 모색하는 곳도 생겼다. 메신저의 대화 내용으로 콘텐츠를 만들거나 모바일 플랫폼에만 특화된 콘텐츠도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사가 발버둥을 칠 수록 길은 보이지 않고, 비전이 보이지 않는 언론사는 구태에 스며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 가상현실 기기. 출처=플리커

기술의 발전, 기자의 존재를 지우다?
지난해 초만해도 로봇 저널리즘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인공지능 기술력이 고도화되며 기자의 자리를 대신하는 모델이다. 현재 소프트웨어 퀼은 30초에 한 건씩 기사를 뽑아내고 있으며, 사람들은 로봇 기자와 인간 기자를 구분하기 어려워한다.

로봇 저널리즘의 대두는 기레기에 대한 부정적인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최적의 방식이기도 하다. 합리적인 알고리즘으로 언제나 '옳을 가능성이 있는 기사'를 뽑아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저렴한 인건비는 덤이다. 일각에서는 로봇 저널리즘이 전체 언론계를 관통하는 가칙 될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여기에 깔린 전제는 기레기의 종말. 즉 노룩뉴스가 바라는 기레기의 죽음과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정의다. 가뜩이나 전문가들이 기자 뺨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시대, 전통적인 역할은 점점 사라지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믿음이 스며들어 있다.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저널리즘은 어떤가. 지난 2015년 뉴욕타임스와 구글이 협력해 가상현실 저널리즘을 실제로 구현한 후 이 방식은 느리지만 조금씩 '우리의 경계'로 들어오고 있다. 이제 기자가 목숨을 걸고 분쟁현장을 누비지 않아도, 사람들은 구글 카드보드를 통해 직접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고 분노할 수 있다. 당연히 연결고리인 기자는 필요가 없다. 구글이 AMP(ccelerated Mobile Pages)를 주장하며 다소 개방된 언론사 콘텐츠 시장을 노리는 지점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기술의 발전이 정보 제공자의 역할을 박탈하며, 저널리즘의 복원도 가능하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실일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기자의 자리를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대신해도 19세기부터 이어진 황색 저널리즘 연대기는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일차적으로 기사는 현장기자의 손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의사권자는 인간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로봇 저널리즘이 최고의 저널리즘을 추구한다는 보장도 없다. '사명감을 프로그래밍한 로봇 저널리즘의 등장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주제는 최소한 강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해야 그 결과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최근 한국을 방한한 위키디피아 창업자 지미 웨일스의 '멘트'에 집중하는 것은 어떨까. 그는 가짜뉴스 검증 플랫폼인 위키튜리뷴을 런칭하며 "인공지능이 발전해도 진실을 감지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집단지성의 힘으로 다양한 사유의 방향성을 최대한 파악한다면,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직감 뿐이라고 본 셈이다.

물론 그의 말에 반대할 수 있는 논리도 충분히 있지만, 최소한의 언론 환경 프로세스를 고려하면 무겁게 고려할 필요는 있다. 황색 저널리즘과 기술의 발전에서 생기는 간극을 메우는 것은 모든 의사결정권자인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 아직 본격적인 기술기반 인공지능 시대가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어쩌면 향후 언론역사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은 것일 수 있다. 지금이 모든 것을 규정하는 시작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