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여름의 길목, 어느날 우연히 걸려온 전화가 저를 고뇌에 빠뜨렸습니다.  "차량 시승행사에 한 번 참여하지 않으실래요?"

 

모바일로 차량견적을 받아보고 구입하는 한편, 관련 콘텐츠도 제공하는 O2O 스타트업 '겟차' 담당자의 제안이었습니다.  겟차는 최근 판교 일대에서 차량 시승 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참여하라는 뜻이에요. 처음에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IT기자가 시승기는 무슨...그런 것은 자동차 전문기자들이 있는데요 뭐. 제가 뭘 안다고". 개인적으로 국산차나 외제차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습니다. 잘 알지도 못해요. 자동차는 잘 굴러가면 그만이지 무슨.

그런데 통화하는 동안 묘한 생각들이 제 가슴 한 켠을 복잡하게 긁었습니다. 이런 생각이었어요.  "IT기자가 언제 전기차 등을 빼고 시승기를 해 보겠어?"라든가 "매일 기사로 쓰는 자율주행차 시대가 온다고 해봐, 차량 시승기라는 콘텐츠도 없어질 걸?"이라는 속삭임. 여기에 "O2O 스타트업의 마케팅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야"부터 "미래 기술 이야기를 하면서 IT 기술의 기타영역 정복에 대한 글만 쓰지, IT기술과 융합하는 기존 산업의 매력 포인트는 느껴볼 기회는 없잖아"라는 자기합리화까지.

뭔가 마음이 흔들린 저는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차량 종류는 뭔가요?" 그러자 돌아오는 답. "BMW와 벤츠요"

생각을 접기로 했습니다. 전 비싼 차(?)와 궁합이 잘 맞지 않거든요. 이제 첫째도 유치원 가야하고 아파트 대출금에 월세도 내야 하는데 사고치기 싫었어요. 그러나 마지막 순간, 겟차 담당자의 말에 결국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운전대를 잡고 시승도 하고 상황에 따라 옆에 동승도 하는 것으로 갈게요". 그 정도라면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당장 약속을 잡았습니다. 비록 "만약 사고가 나도 보험처리는 되는 것이죠?"라는 제 소심한 질문에 겟차 담당자가 대답하지 않은 점은 마음에 걸렸지만. 저는 제 운명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 겟차 서비스 화면.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시승을 시작하다

13일 오전 약속장소인 판교 인근의 카페에 도착했습니다. 저와 통화한 담당자와 다른 직원이 미리 나와 있더군요. "절 기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험하게 대해주세요"라는 말에 유난히 환한 미소를 보여주던 남자직원이었습니다.

시승에 앞서 책임 시승 확인서에 사인했습니다. 그러자 저와 동승할 남자직원은 저를 바로 옆 골목에 주차한 차량으로 안내하더군요.

▲ 확인서.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매끈한 벤츠 C200d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직원은 자리에 앉자마자 녀석의 소개를 하기 시작했어요. 2017년 기준 4970만원에 팔리고 있으며 1600cc 디젤엔진에 160마력, 32토크를 자랑한다고 말했습니다.

7단 변속기에 복합연비기준 16.2km/ℓ며 제로백은 10.2초라고 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직원은 겟차 소속이면서 자동차 '덕후'였습니다. 어쩐지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더라니.

▲ 벤츠 C200d 전면.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출발하시죠"라는 직원의 말과 함께 벤츠 C200d이 부드럽게 나아갑니다. 중후하고 안정적으로 굴러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자동차 전문기자라면 복잡한 전문용어를 쓰면서 이런저런 사족을 달 수 있겠지만 저는 '차알못'입니다. 출발 당시의 느낌을 딱히 계량적으로 풀어내기는 어렵더군요. 다만 분명한 것은  '중후하다'는 첫인상입니다.

주행을 계속하니 벤츠 C200d의 진가를 약간이나마 알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비단 IT기자이기 때문은 아니지만, 저는 모든 제품을 사용자 경험의 확장적 측면에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벤츠 C200d의 편의성을 강조한 사용자 경험이 인상에 강하더군요. 코너링과 가속의 순간도 부드럽게 넘기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ICT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주행의 편안함에 집중한 사용자 경험'이 강했다는 뜻입니다.

▲ 벤츠 C200d 내부.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 벤츠 C200d 칼럼시프트.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 운전중.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 운전중.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어느덧 차는 큰 길로 나왔습니다. 운전이 조금씩 손에 익으니 약간 여유가 생기더군요. 주변을 돌아볼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어색함. 드라이브를 꼭 여인과 함께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없지만, 오늘 처음 만난 두 남자가 좁은 차량 안에 있으려니 왠지 손발이 오그라들었습니다. 중간 정도에서 운전대를 직원에게 주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어색함은 정점을 향해 달려갔어요.

다행히 직원은 자동차 덕후였습니다.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정말 친절하고 열정적으로 벤츠 C200d의 제원을 설명해주었습니다. 특히 벤츠의 칼럼시프트와 패들시프트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기존 변속기의 기능을 대체하는 칼럼시프트의 등장은 벤츠의 정체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부드러운 운행감각과 편안한 주행을 컨셉으로 삼고있는 벤츠의 경우 '운전자의 사용자 경험'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칼럼시프트를 장착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이러한 행보는 BMW와는 정반대의 방향성이라는데 이는 따로 설명을 하겠습니다.

▲ 운전중.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그렇게 벤츠 C200d는 예정한 코스를 돌아 목적지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BMW 320d입니다.

녀석은 2017년 기준 4740만원입니다. 2000cc 디젤엔진에 8단 변속기어를 지원하며 162마력, 40토크의 성능을 자랑합니다. 복합연비기준 16.8km/ℓ며 제로백은 7.8초입니다. 제원으로만 보면 벤츠 C200d보다 상위 라인업으로 봐야합니다.

▲ BMW 320d 전면.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BMW 320d의 첫인상은 투박했습니다. 벤츠 C200d가 세련된 디자인에 내부 인테리어도 다소 고풍적으로 만들어졌다면, BMW 320d는 '운전하는 맛'이 있다고 할까요. 엔진음도 맹렬하고 달릴때마다 노선소음이 간간히 파고듭니다. 약간 남성적인 분위기가 풍긴다고 할까요. 제가 변태일 수 있지만 조작도 대부분 수동인 것이 '뭔가 운전하는 느낌이 난다'는 인상입니다. 맞아요. 이것은 남자의 감성. 메카닉.

이러한 경쟁력은 가속단계에서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차량이 크게 휘청이며 마치 대어를 물린 낚시꾼에 빙의되는 경험을 했어요. 벤츠 C200d가 고풍스러운 애플의 느낌이라면, BMW 320d는 저돌적인 아마존과 닮았습니다.

▲ BMW 320d 내부.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 BMW 320d 내부.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 운전중.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두 가지 관점의 경험을 하다

이번 시승을 경험하면서 저는 두 가지 관점에서 콘텐츠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먼저 스타트업 O2O의 마케팅 부분. 겟차는 왜 차량 시승 마케팅 행사를 하고있는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겟차의 노림수는 명확했습니다. 저와 함께 차량에 올라탄 직원이 말하더군요. "일반적으로 외국의 경우 차량을 구입할 당시 실제 시승을 하고 결정하는 일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런 일이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집과 회사 다음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차량을 선택하면서 실제 경험 후 선택하는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겟차가 집중한 부분은 바로 여기입니다. 바로 '선택의 폭을 넓히는 발판이 되어보자'는 어젠다.  '눈치보지 말고 자신이 구입할 차량을 직접 시승하고 선택하자'는 전제를 통해 시장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한편 이를 통한 겟차의 홍보 마케팅을 구사하는 방법론입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또 온라인 중심의 O2O 스타트업의 경우 오프라인 경쟁력을 한껏 끌어오는 상황에서 실제 사용자 경험을 무기로 삼는 것은 '영악한 전략'이기도 하거든요. 그 과정에서 시장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공적인 역할도 일부 수행하게 만듭니다. 추후 많은 스타트업이 참고해야할 마케팅 지점으로 보여집니다.

그리도 또 하나. BMW 320d를 시승할 당시 느꼈던 감정입니다만 자율주행차 등 기술의 발전이 넘어야 할 가장 강력한 사용자 경험은 바로 '운전의 맛'이 아닐까 합니다. 개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BMW 320d은 기계적인 감성을 운전의 맛으로 풀어낸 극적인 차량으로 보입니다. 벤츠 C200d와 명확하게 갈리는 영역이에요.

추후 자율주행차가 세상을 지배하는 날이 온다면,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추신] 다행히 사고는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