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체를 운영해온 최씨(60세), 올해 초 그가 대표이사로 있던 법인은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신청을 했다. 회사가 회생절차를 밟자, 임원들이 하나 둘 회사를 떠났다. 하자보수청구 등 각종 소송에 휘말리면서 회사는 더 이상 회생절차를 이행하지 못하고 파산절차로 전환하게 됐다. 회사의 파산산고로, 연대보증인인 최씨도 파산절차를 밟게 됐다.

서올회생법인 소속 파산관재인이 지정된 후, 그는 본격적인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를 조사하는 사람은 파산관재인 사무실에 근무하는 업무보조인이었다. 사람들이 그를 ‘조사실장’이라고 불렀다.

법률절차를 처음 대하는 최씨는 모든 용어가 생소했는데, 준비상 애로사항을 말하자 그는 “그건 댁의 사정”이라며 단칼에 말을 끊었다.

최씨는 모두 6차례 조사를 받았다. 이중 5차례 면담까지 그는 파산관재인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급기야 조사실장은 최씨에게 약 2천 페이지에 가까운 은행거래내역서를 요구했다.

`조사실장`이라는 업무보조인은 그 내역서에서 과거 2년동안 1000만원이상 지출내역에 대해 설명할 것으로 최씨에게 요구했다. 최씨가 각 건설현장마다 건설인부들의 노임을 지급하고 비용을 지출한 내역을 모아 1000만원이상 금액을 정리하는 것은 사실상 자료와 기억의 한계가 있었다.

최씨가 운영한 회사는 이미 파산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자료를 임의로 반출할 수도 없었고, 임직원들이 없어 그 지출내역을 알기도 어려웠다. 

사정이 이런데도 파산관재인 보조인은 최씨를 다그쳤다. 최씨는 중압감에 더 이상 파산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파산자로 남겠다고 결심했다. 보다 못한 최씨의 대리인 변호사가 관재인 사무실에 찾아가 항의를 하자,  그때서야 파산관재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개인 파산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법원의 채무조정 대상자들이 신청을 주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채무자의 경제적 회복으로 목적으로 하는 도산법이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채무자의 빠른 경제적 회복을 목적으로 하지만 채무자에 대한 가혹한 재산조사에 맞추져 있다는 것이 파산법조계의 주된 분석이다. 특히 일반적으로 채무를 완전히 탕감하는 개인파산제도에서 이 현상은 두드러진다. 이 같은 현상은 일부 파산관재인이 주도한다.

▲ 2014년 한 시민단체가 파산관재인 사무실 앞에서 파산관재인과 그 보조인을 규탄하고 있다. 자료=한국금융피해자 협회제공

보조인, 파산관재인 듯 파산관재인 아닌 파산관재인? 

파산관재인은 개인파산절차에서 채무자의 재산을 조사하고 채무를 탕감하는 데 있어 문제가 되는 사안을 법관에게 보고하는 역할이다. 법관은 대부분 이 보고에 기초해서 채무의 탕감 여부를 결정한다.

이들은 사실상 파산법관의 업무를 대행한다. 이 때문에 채무자가 파산선고를 받을 때 판사는 채무자들이 보는 앞에서 위촉장을 수여하는 퍼포먼스도 한다.

파산관재인의 무리한 채무자의 조사는 항상 논란이 되어왔다. 채무자에 대한 고압적인 태도와 형사피의자로 취급하는 일련의 조사행태가 그것이다.

최근까지 그러한 관행은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더 나아가 이제는 파산관재인의 업무를 보조하는 보조인까지 가세하는 형국이다.

파산관재인도 평가받아야

파산관재인과 그 보조인들의 이와 같은 무리한 조사는 "이들이 전혀 통제 받지 않기 때문에서 생기는 문제"라고 파산법조인들은 지적한다.

일부 파산변호사는 "파산관재인이라도 최소한 조사의 취지와 설명을 반드시 해야하고 채무자가 입수할 수 없는 자료는 관재인이 법원을 통해 확보해야지, 이것을 신청인 채무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인은 “파산관재인과 그 보조인은 채무자의 재산(부동산, 현금 등)을 확보하면 그 금액에 따라 일정비율의 보수를 지급받는다”며“이런 이해관계 때문인지, 일부 파산관재인과 그 보조인이 채무자에게 방대한 양의 자료제출을 요구하고, 채무자가 그에 응하지 못하는 경우 면책을 허락하지 말라는 보고서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사실상 협박에 가깝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그는 “채무자로 하여금 임의로 재산(주로 현금)을 파산재단에 내어놓도록 유도하는 사례가 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그 파산관재인과 그 보조인은 보수를 손쉽게 확보한다”고도 비판했다.

도산법조계 일각에서는 파산관재인이 법관과 같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법관 평가제와 균형을 맞춰 파산관재인 평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법조인 모임은 지난주 정례회에서 변호사협회에 이에 대한 의견을 제출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일부 파산관재인의 전횡은 새로 위촉받은 관재인이 업무의 이해도가 부족해 생기는 문제라고 제기하며 원인을 전문성 부족에서 찾는 의견도 있다. 무엇보다 경제적 갱생을 도모하는 채무자를 형사피의자와 같이 죄인 취급하는 일부 파산관재인의 의식부터 바꾸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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