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모회사 알파벳을 설립한 구글에서 화려한 대관식이 열렸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사실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에서 앨런 유스터스 부사장마저 떠난 후, 선다 피차이가 대권을 잡았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홀홀단신 미국으로 넘어와 2004년 크롬 브러우저팀에 합류한 그는 고작 10년 만에 세계를 호령하는 구글의 '차르(Czar)'로 등극했다. 그의 나이 고작 34세의 일이다.

#2016년 11월,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유통중인 500루피와 1000루피 고액권 화폐의 통용을 정지한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당장 시중의 현금 86%가 가치를 잃었고 인도 경제는 위축되었으나, 모디 총리가 이끄는 여당인 인도국민당(BJP)은 지난 3월 치러진 5개 주의회 선거에서 의석 80%를 확보하며 승승장구했다.

#2016년 11월, 코트라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여는 ICT 응용 신산업: 경쟁력 진단과 인도 활용 전략' 보고서에서 오는 2019년 인도의 ICT 경쟁력이 세계 7위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드라마 중 '빅뱅이론'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다수의 매니아를 확보한 작품이며 괴짜 천재 IT 공학도인 쉘든과 레너드가 중심이 되어 벌이는 좌충우돌 생활을 그렸다.

이 드라마가 더욱 재미있는 이유는 주연급 조연인 '라지'의 등장이다. 인도에서 미국으로 유학왔다는 설정이며, 유독 여자 앞에만 서면 말문이 막혀 버리는 독특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자 앞에서는 쑥맨이라도 가끔 쉘든과 레너드를 압도하는 '똘기'를 보여주며 극을 강하게 이끌고 간다.

드라마 빅뱅이론의 라지 캐릭터는 미국 사회가 외부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잘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극의 재미를 위해 다소 과장된 설정을 불어 넣었지만, 미국인들에게 라지는 가끔 자신들을 압도하는 '돌아이'이자 여자 앞에서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현재의 인도는 라지에 투영된 미국인들의 시각과 묘하게 닮아있다. '압도'와 '이해할 수 없는'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하다.

▲ 선다 피차이 구글 CEO. 출처=GSMA

글로벌 ICT 경쟁력을 주도하는 인도..세 가지 포인트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글로벌 ICT 업계를 주도하고 중국의 심천 생태계가 자국 정부의 강력한 육성아래 세상을 향한 대국굴기(大国崛起)의 미래를 보여주는 상황에서, 또 비전펀드를 앞세운 중동 오일머니의 데저트벨리 실험도 덧대어지는 상황에서 새삼 업계는 인도의 존재감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크게 세 가지 측면이다.

먼저 인재 인프라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실리콘밸리와 이민자 문제를 두고 날을 세우고 있다. 미국 중서부 러스트 벨트에 산재한 블루컬러의 열광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파리기후협정까지 탈퇴하며 중공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서 이민자 문제에 있어 소위 백인 우월주의 중심의 접근방법을 보이기 때문이다.

당장 실리콘밸리가 반발하고 있다. 구글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 이민정책을 담은 행정명령이 최초로 나올 당시 구글 캠퍼스 일대에서 이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으며, 테슬라의 앨런 머스크 등 주요 ICT 대표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반 이민정책이 계속될 경우 정부에 협조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실리콘밸리는 왜 트럼프 대통령의 반 이민정책에 반대하고 있을 것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다양성의 가치가 현재의 자신들을 규정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 다양성의 핵심에는 인도 인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당장 펩시코의 여성 CEO인 인드라 누이, 어도비의 샨타누 나라예를 비롯해 다수의 인도인이 실리콘밸리 거치며 현재의 영광을 일궜다는 평가다. 구글의 사티아 나델라는 말할 것도 없으며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CEO도 인도 사람이다.

미국 국토안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약 20만명의 외국인이 H-1B(전문직 취업) 비자 발급으로 자국에 유입되었으며, 그 중 인도가 12만762명으로 전체의 54%를 차지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인도를 실리콘밸리의 '두뇌'로 표현하기도 한다.

다음으로는 인도의 ICT 인프라다. 현재 인도는 ICT 발전의 천국으로 불린다. 마이크로소프트부터 최근에는 애플, 중국의 샤오미 및 비보와 오포 등 다양한 기업들이 기꺼이 인도의 품으로 달려가고 있다. 지난해 초 모디 인도 총리가 ‘스타트업 인디아 이니셔티브’를 발표하며 그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으며, 현재 최순실 사태로 발이 묶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직접 인도로 날아가 모디 총리와 만나기도 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모디 인도 총리. 출처=삼성전자

인도 ICT 인프라의 매력은 다양한 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으나 인도의 IT부문 매출액은 2016년 회계연도 기준 1460억달러에 달한다. 이런 분위기라면 오는 2020년 매출액 2250억달러 달성도 유력하다는 말이 나온다.

코트라가 지난해 11월 발간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여는 ICT 응용 신산업: 경쟁력 진단과 인도 활용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의 IT 기업 중 1000개 이상의 대기업으로 분류되며 78개국에 640여개의 해외 개발센터를 운영할 정도로 글로벌화가 진행되어 있다.

▲ 세계 주요국 ICT 성장 전망. 출처=코트라

마지막으로 시장이다. 인도는 13억명에 달하는 방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거대한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으나 아직 최첨단 ICT 기술력이 정착된 곳은 아니다. 일종의 신진시장이라는 뜻이며, 성장의 여백이 넓다. 여기에 7% 넘나드는 파괴적인 경제 성장률, 평균 나이 26.7세에 불과한 시장이기도 하다.

우수한 인재, ICT 인프라, 그리고 ICT에 우호적인 신진시장이 바로 인도를 규정하는 세 개의 키워드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야 한다. 이러한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방언까지 합치면 무려 700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인도가 영어권 문화에 포함된다는 점부터 출발해야 한다. 19세기 영국의 지배를 받으며 장기간 식민지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힌디어의 표준어화에 대해 남부의 드라비다어계 여러 주에서 격렬한 반대가 있어 현재 영어가 공용어로서 병용되며 지식계급의 공통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러니 영어권 국가 입장에서는 인도인과 일하는 것이 편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인건비도 저렴했기 때문이다.

인도는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영어권 국가와의 스킨십을 넓힐 수 있었다.

여기에 인도 특유의 '분쟁'도 현재의 ICT 존재감으로 이어졌다는 말도 나온다. 지금도 인도를 괴롭히고 있는 정부의 부정부패와 견고한 신분제도, 심각한 환경오염은 인도 성장을 가로막는 적폐로 꼽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ICT라는 탈출구를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 주기도 한다.

구글의 선다 피차이 CEO는 인터뷰를 통해 어린시절 방 2개짜리 아파트에 살며 전화기와 TV는 구경도 못했으며, 이러한 경험이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을 ICT에서 찾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량 기술의 ICT는 최소한 평등한 기회의 문이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 차원의 강력한 육성정책도 있었다. 인도 정부는 1980년 후반부터 국자차원에서 ICT 교육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육성했으며 1988년 설립된 NASSCOM(인도소프트웨어서비스 국영협회)를 통해 나름의 방향성을 잡았다.

하드웨어를 아우른다는 전제로 소프트웨어 교육을 체계적으로 수립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은, 지금의 스마트 팩토리 시장을 생각하면 미래를 간파한 신의 한 수다. 인도에서 고등교육을 받는 인구는 약 1억명에 달하며 매년 40만명이 IT 전문기관을 통해 배출된다는 후문이다. 인도 정부는 고급인재 양성을 위해 2008년부터 2009년, 또 2015년부터 2016년까지 각각 8개, 7개의 대학원 중심 전문 인재 양성소를 구축한 바 있다.

여기에 인도 특유의 사색문화도 지금의 ICT 인프라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말이 나온다. 종합예술이라는 평가를 받는 영화산업이 인도에서도 상당히 강력한 존재감을 떨치는 대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도의 영화 산업 규모는 세계 최대수준이며 극장표 판매량이 일 년에 28억 장 팔리고 있다. 영화도 일 년에 1200편을 제작하고 있어 발리우드(Bollywood)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다시 ICT 인프라와 결합해 유기적인 효과를 창출하기도 한다.

인도는 수학이라는 정량화된 학문의 고향이자, 요가로 대표되는 사색과 철학의 나라다. 불교의 발상지며 종교의 근원적 고향이기도 하다.

▲ 인도 IT 산업 구조. 출처=코트라

"인도를 잡자..단, 조심스럽게"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는 인도 인재의 활약은 곧, 인도의 ICT 경쟁력을 잘 확인할 수 있는 보증수표다. 여기에 다양한 요인들이 겹쳐 인도의 ICT 정책과 인프라는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이러한 방향성은 자국의 ICT 인프라 발전을 꾀하며, 방대한 내수시장과 함께 그 가치를 키우고 있다. 쉽게 말해 ICT와 관련된 '모든 것이 풍부한 상태'에서 'ICT에 호의적인 방대한 내수시장'이 생겨났다는 뜻이다.

이대로 인도의 성장을 바라보며 감탄사만 던져야 할까. 이제 우리도 활용해야 한다. 특히 ICT 인프라가 발전하며 슬슬 자국의 규모를 늘리려는 인도 정부의 행보를 읽어내어 그에 맞는 맞춤형 전략을 펼쳐야 한다. 어떻게 공략해야 할까.

현재 인도에는 다양한 나라의 기업들이 진출한 상태다. 여기에서 스마트폰 시장을 노리는 중국 제조사와 애플의 진출 방식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화웨이는 지난해 10월부터 인도 첸나이 공장에서 이미 자사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애플은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 공장에서 보급형 아이폰SE를 제작, 현지에서 판매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러한 전략은 2020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규모 2위로 부상할 것으로 점쳐지는 인도에서 시장 특화 및 선점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아직 성장하는 순간이기 때문에 미리 진격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행히 삼성전자와 LG전자와 같은 국내 기업들도 적절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삼성전자는 7일(현지시간)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노이다에서 새로운 공장 착공식을 열었으며 2020년까지 약 8500억원을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LG전자도 지난달 인도 진출 20주년을 기념해 대대적인 마케팅 공습을 펼치기도 했다.

유연한 전략도 필요하다. '아름다운 장면'에 숨어있는 불편한 2인치를 찾아내어 가려운 곳을 긁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5월 미국의 쿼츠는 인도에 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유니콘 기업이 넘쳐나고 있으나, 그 이상의 '대박'은 터지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아직 시장이 여물지 않았다는 뜻이다.

자세히 들어가 보면 인도의 한계가 보인다. IBM 경제가치연구소(IBV)의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스타트업이 보여주는 '의외의 한계'는 "수동적인 스탠스"에서 나온다는 설명이다. 여기에는 이미 성공한 모델을 자신들이 잘 아는 현지 시장에 접목하는 것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혁신을 선도하는 장면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전제다. 이러한 한계는 역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에게 호재가 될 수 있다.

현지 스타트업이 검증된 비즈니스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믿을 수 있는 파트너와 함께 새로운 서비스의 전개를 공격적으로 런칭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면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구글 AOSP에 이은 인도 운영체제 파편화가 주는 시사점도 있다. 지난 2월 MWC 2017에서 구글 AOSP 중 하나인 Indus OS가 큰 관심을 받았다. 10개의 언어를 지원하며 안드로이드 하드웨어 동맹군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안드로이드 수직계열화를 원하는 구글 입장에서는 불편한 현실이다. 이 지점에서 타이젠과 같은 새로운 운영체제 실험을 거듭하고 있는 삼성전자 등 다른 파트너들이 실리콘밸리에 대항하는 새로운 대항집단을 구축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코트라의 '4차 산업혁명시대, 우리기업의 현지화 전략' 보고서가 국내 기업 중 인도에 진출한 기업 분포를 분석한 결과, 대기업이 15.8, 중견기업이 17.6, 중소기업 6.5로 나왔다.

▲ 국내 기업의 나라별 현지화 정도. 출처=코트라

여기에서 인도에 대한 국내 기업의 현지화 수준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 국내 기업의 나라별 매출액 중 현지 내수판매 비중을 조사한 결과 중국은 58.5%, 북미는 80.8%에 불과한 상태에서 인도는 90.9%에 달했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과 베트남을 비롯해 인도의 경우 인건비 등 생산비용의 상승이 현지진출의 큰 애로사항으로 조사되었다.

▲ 국내 기업의 국별 매출액 중 현지 내수판매 비중(복수응답). 출처=코트라

결국 장단이 있는 상태에서 인도 시장에는 '현지화'라는 훌륭한 전제도 깔려있는 셈이다. 달려갈 일만 남았다. 다만 전제는 깔린다. 세심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파고 들어 인도가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