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책력(달력)은 관상감에서 만들고, 동지에 배포했다. 24절기에 맞게 제작된 책력은 현대에 이르면 12동물의 그림으로 표시되어, 글자를 모르는 이들도 쉽게 볼 수 있도록 그림 달력으로 제작되었다.

농경사회에서 책력은 그해의 가뭄과 홍수를 예측하는 세시풍속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비가 많이 내릴지, 가뭄이 들지를 예측하는 기후관측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달력의 일진(日辰)을 헤아려서 용(龍)의 개수로 따지면 된다.

용은 예로부터 물을 다스리고 비를 내리게 하는 신령스러운 동물인데 용의 숫자가 많으면 홍수가 나고, 작으면 가뭄이 든다. 용은 최소 1~12마리가 있는데, 대여섯이면 농사 짓기에 적당한 비가 온다.

정월 초하루(음력 1월 1일)부터 날을 세는데, 용을 상징하는 첫 번째 진(辰)일 되는 날까지를 세어서, 용의 개수를 헤아리는 방법이다. 2017년 음력 1월 1일은 토끼(卯)날이고, 그 다음 날이 용(辰)날이다. 올해는 음력 1월 2일에 용의 일진이 들어왔으므로 ‘이룡치수(二龍治水)’라고 부른다. 2마리의 용이 물을 다스려야 하므로 물 부족 현상이 예상된다.

따라서 올해의 날씨는 더위와 가뭄으로 푹푹 찌는 한 해가 되리라고 기후를 예측한다. 최근의 잦은 산불과 무더위가 빨라진 것이 그 때문인가.

관상학에서 적당한 습기와 물 기운은 재물 복의 바로미터이다. 촉촉이 젖은 대지는 윤택하고 살이 차오른 모습이고, 가뭄이 나서 논밭이 갈라진 형상은 비쩍 마른 체형을 연상하면 된다. 해골처럼 메말라서 살집이 떨어져 나간 형태는 수기(水氣)가 극도로 부족한 모양새이다.

영화 속 ‘좀비’가 바로 바짝 타들어간 논밭의 형상이다. 메말라서 굶주린 사람들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 바로 좀비의 삶이다. 살집이 부족하면 자연히 뼈가 튀어 나오고, 뼈가 나온 경우는 수기가 부족한 것으로 판단한다. 관상학에서 물이 부족하면 재물복과 건강이 좋지 않다.

뼈와 뼈 사이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관절액이 부족하면 걸음이 부자연스럽고, 뼈가 마모된 형상이므로 좀비의 걸음걸이가 된다. 좀비는 침샘과 혈액이 메말라서 소리가 나오지 않아 으르렁거린다.

<동의보감>에서 “목소리는 신장에서 근원하며 폐는 목소리가 나오는 문이며 심장이 관장한다”고 본다. 모두 혈액순환과 관련된 장부이다. 관상학에서 광대뼈와 뺨, 골기(骨氣)는 폐와 대장에 속하며, 오행 가운데 금(金)의 기운이다. 뼈에서 나오는 골수는 혈액세포를 만들며, 혈액순환이 원활하면 심장과 신장 기능이 건강해진다. 볼 살이 오동통하면 물이 풍족해 윤택하며, 뼈마디가 튼튼하게 된다. 살이 바로 혈액순환의 생명수가 되는 셈이다.

수분이 더 말라버리면 살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서 뼈만 남은 ‘해골 좀비’가 된다. ‘좀비’와 ‘해골 좀비’ 가운데 누가 더 악당인가? 당연히 물 기운이 전혀 없는 해골이 가장 나쁜 관상이다.

뼈가 보이는 해골 이미지는 죽음의 형상이다. 뼈는 금속(金)을 상징하는 숙살지기(肅殺之氣)로서 만물을 파괴하거나 죽이는 기운이다. 생명수가 완전히 메말라 버리면 뼈가 바스러질 듯한 ‘미이라’로 변한다. ‘미이라’가 부활할 때는 살집이 차오르며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물이 있거나 살집이 있을 것이다. 관상은 ‘살집=생명수’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사람의 체중이 평균치에 미달할 경우 몸 안의 영양분이 부족해 세포 대사율이 저하되어 근육, 뼈, 혈관 등의 기능에 문제가 생기고 골밀도도 떨어진다. 지방세포는 랩틴호르몬을 만들어 내는데, 이 호르몬이 부족해지면 인지능력이 떨어져서 치매발병 위험도가 높아진다고 하니, 지방이 풍부한 볼 따귀 살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올해는 용이 두 마리 뿐이어서 가뭄과 폭염으로 물이 마를 수 있다. 수기(水氣)가 부족해지면 우리 얼굴의 살이 빠진다. 살이 부족하면 뼈가 부실해지고, 걸음걸이가 삐거덕거릴 것이다. 삶이 뻑뻑해지고, 인정 또한 메말라 가리라. 기우제를 지내든가, 모자라는 용이라도 빌려와야 할 지경이다.

왕을 옛날에는 용(龍)이라고 불렀다. 용에 비유해서 왕의 얼굴을 용안(龍顔)이라고 했으니,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려운 관문(龍門)을 통과해 입신출세하는 것을 등용문(登龍門)이라고 하니, 청문회를 통과해 승천하길 기다리는 용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올해는 용이 많을수록 다다익선이다. 용은 신통방통한 조화를 부릴 수 있다고 한다.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대지 위에 단비를 내려 주리라. 용의 책무이자 당연한 능력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