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이미지 투데이

김씨는 세 아이의 엄마다. 남편은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한다. 워낙 영세하다 보니 남편은 가게 운영자금으로 김씨의 카드와 대출을 사용했다. 늘어나는 채무를 감당할 수 없어 김씨는 보험영업에 나섰다.

수당에 비해 영업비용이 더 나가 보험영업은 잘되지 않았다. 채무를 줄이는데  실패했다.

그녀는 2014년에 파산신청을 했다. 다음해 5월, 우여곡절 끝에 법원은 김씨의 모든 채무에 대해 면책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최근 뜻밖의 상황에 당황하고 있다. 세 아이가 커가면서 좀 넓은 집이 필요했던 김씨 부부. 김씨의 남편은 올 3월 경에 주택금융공사에 보금자리론을 신청했다.

주공에 보금자리론을 신청한 후, 부부는 이사 갈 집에 계약까지 마쳤다. 그런데 남편이름으로 신청한 주택보금자리론 신청이 거부된 것. 없는 살림에 어렵게 마련한 계약금마저 날릴 판이었다. 

부부는 의아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김씨가 한때 많은 채무를 지고 파산선고까지 받았지만, 남편의 신용과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김씨는 법원으로부터 면책결정을 받았다. 김씨와 달리 남편의 신용상태는 문제가 없었다.

김씨는 주택금융공사에 거부 이유를 문의했다. 이에 대해 주금공은 비록 신청인이 아닌 그의 배우자라도 신용정보 및 해제정보가 남아 있다면 대출이 불가하다고 회신했다. 주금공 담당자는 배우자가 면책을 받았지만 여전히 채무는 남아 있는 자연채무상태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면책된 채무에 대해 상환하지 않으면 대출은 가능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 주택금융공사가 김씨에게 보낸 회신서면, 자료=한국금융피해자 협회 제공

자연채무는 채무는 있지만 강제집행을 할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민법상 개념이다.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무가 그 예이다. 금융대출금에 대해 채권자가 일정기간(5년) 회수를 게을리하면 더 이상 압류와 같이 법적 강제력을 행사 할 수 없다. 하지만 채무는 여전히 남아 있어서 혹시라도 채무자가 실수로 상환을 하게 되면 다시 돌려달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요컨대,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일단 갚으면 회수할 수 없는 채무를 말한다.

법원이 면책해 준 채무가 아직 남아있다는 주공의 회신에 김씨는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주금공의 보금자리론은 배우자가 한국신용정보원 `신용정보관리규약`에서 정하는 부도 및 공공정보와 해제정보가 있으면 부부 합산소득이 7천만원이하라도 받을수 없다.

주택금융공사의 관계자는 "주금공에서 정하는 보금자리론 조건에 파산, 면책된 배우자를 제외하는 것은 상환능력이 의심되기 때문"이라며 "부부 합산소득과 부부 모두의 상환능력을 고려해서 대출하는 보금자리론의 요건상 이는 거부 이유가 된다"고 설명했다.

파산자의 면책은 채무자회생법상 채무자의 조속한 경제적 회복을 입법목적으로 한다. 이 같은 제약이 면책제도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이 관계자는 "보금자리론이 상환능력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대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차별적인 정책

하지만 도산법조계는 이와 같은 정책이 면책의 취지를 벗어난 것이라고 말한다. 김관기 한국도산법연구회 회장은 해묵은 `연좌제`와 다를 것이 없다고 비판하면서 “면책 제도는 성실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를 경제적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목적인데, 면책 받았다는 이유로 가족 전체가 피해를 보게 하는 정부 정책은 채무자 회생의 입법목적을 거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 회장은“과다한 채무 때문에 면책을 구한 채무자에게 보금자리론을 받기 위해 다시 그 돈을 갚으라고 하는 것이야 말고 어불성설”이라며 “채무자가 면책받은 돈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라면 왜 파산법원을 가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현행 채무자회생법에는 누구든지 회생절차, 파산절차를 밟았다는 이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현행 대한민국 헌법 13조 2항에는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어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