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2박3일 출장을 앞두고,

잠을 설치는 이변을 겪었습니다.

예전처럼 소풍 전날 설렘은 아니었습니다.

아마 전날 본 호주 할머니의

‘아들 찾아 1만오천키로 여정’이라는 기사가

마음에 밟혀서였을 겁니다.

1950년 가을 한국전에 참전한 호주 청년이

다음해 3월 원주에서 전사했습니다.

유해는 부산 유엔군 묘지에 묻힙니다.

그청년이 10형제의 맏이로 가장역할을 했던 형편였으니,

죽은 아들 찾는 것이 소원였던 모친으로서 그조차도 어려웠습니다.

공장에 다니며 9남매를 키우고, 저축을 해서 여비를 모아

드디어 10년만에 아들과 만났습니다.

1961년에 일본거쳐 한국으로 오는 배를 탔고,

2주에 걸친 고행 끝에 부산에 도착한거죠.

‘아들과 영혼의 재회를 이루었다’며

묘역에서 가져온 흙과 돌을 평생 지녔다는 모정!

10년을 준비해 2주 걸려 아들을 찾는 길에서

가졌을 어머니의 절절한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은퇴하면 첫 번째로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1896년 우리 조상들이 최초로 돌았던 세계 일주 길 순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민영환 특사등 사절단이 대관식이 열렸던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갔던 50일 여정길입니다.

제물포를 떠나 상하이,일본,밴쿠버,뉴욕 도착.

배타고 영국 리버풀로 가서,베를린, 바르샤바, 모스크바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거죠.

대관식에 참석 못하고, 돌아오는 길은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른 뒤 제물포로 귀환.

망해가는 나라의 지식인으로서 그들이 그 길에서

느꼈을 마음을 헤아려 보고 싶습니다.

 

-로,-길 같은 새로운 주소 시스템이 되면서

우리 모두 길 위에 인생을 살게 된 건가요?

길 위에 인생에 그늘도 있겠지만,거기에는 또 위로와 로망도 있을 터입니다.

무엇보다 모퉁이를 돌면 무언가가 있을 기대가 있습니다.

잠을 설치는 일이 있다 해도, 내일 기꺼이 길 위에 인생길을 나서렵니다.

 

필자는 삼성과 한솔에서 홍보 업무를 했으며, 현재는 기업의 자문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중년의 일원으로 일상에서 느끼는 따뜻함을 담담한 문장에 실어서, 주1회씩 '오화통' 제하로 지인들과 통신하여 왔습니다. '오화통'은 '화요일에 보내는 통신/오! 화통한 삶이여!'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필자는 SNS시대에 걸맞는 짧은 글로, 중장년이 공감할 수 있는 여운이 있는 글을 써나가겠다고 칼럼 연재의 포부를 밝혔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이코노믹 리뷰> 칼럼 코너는 경제인들의 수필도 적극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