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스승의 날 킴스호텔에서. (뒷줄 좌로부터)이종민 작가, 조경호, 김근중. 김선두, 서용 (앞 좌로부터)이정연 작가, 일랑 선생님과 부인 성순득 사모님.

 

결국 동양화를 전공하는 인원들만 남았고 대형 화판까지 특별주문 제작한 후 배움의 열기로 뜨거웠다. 동국대, 서울대 홍대, 중앙대 졸업생들로 구성된 멤버로 7명이었다. 동국대출신 손연칠 교수, 장산스님, 허만욱 교수, 서울대 출신 이정연 교수, 홍대출신 김근중 교수, 중앙대 출신의 조경호 교수, 김선두 교수 등 총 7명으로 구성되었다. 당시 서울대 출신은 나 혼자였고 여자멤버는 현재까지 혼자이다.

우리는 사군자를 창작 작업까지 끝낸 후 크로키, 산수화, 화조화 ,영모화, 금박, 견화, 인물초상화, 벽화, 장지기법, 동양화론등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고 접하지 못했던 많은 동양화기법과 화론공부를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갔다. 나는 이상범 화백의 산수화, 변관식 화백의 금강산도, 김은호 화백의 인물을 실물크기로 모사했다.

또 중국 황공망의 부춘산거도, 임백년 등 중국 대가들 및 일본화 기녀 인물까지 실물사이즈로 모사하였다. 답답한 것은 창작 작품들은 물론 모사작품들도 당시 찍어놓은 사진이 한 장도 남아있지 않다.

당시 멤버였던 김근중, 김선두 교수는 실경산수를 방방곡곡 우리 산천을 두루 다니며 부지런히 스케치를 해왔는데 나는 가슴속으로 무척 부러웠다. 정말 모두들 열기 있게 공부했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남대문삼성본관에 교수님 암각화를 하시는 것을 도와드리며 많은 것을 체험할 수 있었는데 매번 무슨 일을 처리하실 때 교수님의 상상을 뛰어넘는 탁월하신 능력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동안 만난 분들 중 여러 면에서 몇 안 되시는 범상하신 분이시다.

83년에 독일에서 열린 ‘한독미술교류100주년기념전’ 전시회에 막내화가로 참석하게 되었다. 교과서나 화집으로만 보던 뮤지엄에 걸린 유명한 화가들의 살아있는 듯 한 작품들과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이 뺏겨 외국으로 나가고 싶은 열망으로 타올랐다. 그리고 한 달간 여행 중 마음의 아픔도 많이 치료가 되어 미국으로 유학을 결정한 후 랑우회를 떠났다.

당시 서울대 미술대학원 마지막 학기가 되어 아버지는 물론 주위 많은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국 프랫(Pratt)대학원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동양화를 기초부터하게 되었던 나는 좀 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었고 전에 어머니가 내게 원했던 유학의 길로 마음을 잡았다.

아니면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고파 후배와 함께 40일 간 묵언 수행도 했었지만 하나님이 나를 미국으로 불러 인도해내셨고 거기서부터 나는 여러 가지 기적의 체험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좋아하던 단전호흡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 후 내 작품의 세계는 그분을 향한 러브 스토리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랑우회 시절 배웠던 실력으로 어려울 때 미국에서 사군자를 가르쳐 생활비를 벌 수 있어 감사함을 느낀다. 또한 서양화는 물론 현재 작업까지 랑우회에서 배웠던 동양화론, 동양화실기, 철학 등이 내 그림 밑바닥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뒤돌아보니 랑우회 역사는 어느덧 30여년이 흘렀다. 지금도 우리는 매해 이종상 교수님 생신이나 행사 때는 물론 스승의 날, 경조사 및 랑우회 개관일 등에 가족같이 부부동반으로 만나 교수님께 짧지만 화업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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