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매체에는 대여 한복의 문제점을 꼬집는 내용의 기사를 냈다. 경복궁과 창덕궁 등지를 가득 메운 한복이 엉터리라는 내용이다. 해당 기사에서는 한복 열풍의 배경을 잘못 넘겨짚고 있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 부분을 차치하고라도 큰 이슈가 되었다. 댓글을 달아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뭐가 어떠냐’, ‘기자가 선비충’이라는 말을 쏟아냈다. 과연 한복 전문가들과 네티즌들을 불편하게 만든 근원은 무엇일까?

지난 칼럼에서도 적은 바 있지만, 현재의 한복 입기 열풍은 단순히 몇몇 연예인들이나 해외 혹은 외국에서 비롯한 유행은 아니다. 과거의 정치적, 이념적 도구로 활용됐던 한복은 2011년 들어 일명 ‘신라호텔’ 사건으로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한복을 소중한 우리의 전통문화유산으로 다시 보기를 원했고 이로 인해 다양한 민간단체 결성,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이 흐름에서 지반을 탄탄하게 깔아 놓은 것은 대중매체였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인 <무한도전>과 가수 경연 프로그램에서 1990년대 음악이 인기 차트를 장식하고 과거 향수를 자극하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됐다. 그러다 2014년, 테마여행 붐이 시작된다. 여기에 여행과 한복은 더할 나위 없이 독특한 소재였다. 이때 한복 여행을 다녀온 여행기 속 한복이 부각되면서 새로운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는 입어야 하는 옷이 아니라 입고 싶은 예쁜 옷으로서 한복을 새로운 패션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전통 한복과 기성 한복 사이에서 발돋움을 꿈꾸던 유수의 디자이너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한복 대여 업체는 IMF로 인해 우리나라의 모든 가정이 허리띠를 졸라맸던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한복 한 벌을 맞출 형편은 되지 않고, 그보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금액으로 구색에 맞게 빌려 입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매우 좋은 선택지가 되어 주었다. 2001년도 관련 논문(임경화, 강순제)에 따르면 당시 실크제품은 6~10만원, 합성섬유 제품은 4~5만원 선에 거래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커머스나 길가 안내판에 5000원~1만원에 한복 대여를 해준다는 광고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격이 낮아지면 품질이 떨어진다. 이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사실 한복 체험을 하는 소비자들에게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전통문화 차원에서 한복을 좋아할 수도, 아니면 아예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특별해 보여서, 독특해 보여서, 남달라 보여서 한복을 선택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한복 입기(혹은 체험)가 많은 젊은이들에게 확산될 수 있었다. 전통을 잘 알아야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멍에를 내려놓은 것이다. 그들은 궁에 놀러갈 때 입고, 여행갈 때 입고, 파티에서 입고, 각종 레포츠를 하면서 한복을 입는다. 소수의 한복 마니아가 시작한 이러한 시도는 생활 한복과 기성 한복의 확산에 기여했다.

물론 한복 입기 체험이나 활동이 한복산업계에 긍정적인 발전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1만원대의 생활 한복이나 기성 한복을 판매하는 업체 수는 급속히 늘었지만 중국산 저가 제품이 대부분이었고 정작 전통 한복 시장은 명절 특수도 사라진 채 폐업을 고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신한복’의 등장 이후 한복산업의 확대를 기대했다. 기성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한복의 매력을 알게 되어 전통 한복으로 수요가 이어지기를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중국산 저가 상품이 시장을 지배하게 된 꼴이다. 이것이 한복(韓服, 한국에서 만든 옷)인지, 중복(中服, 중국에서 만든 옷)인지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지 헛갈릴 정도다.

그러고 보면 여행 한복이 유행을 시작할 때, 기성 한복 혹은 신한복이 시장에 나타날 때 즈음, 주변에서는 인기 디자이너의 옷을 그대로 카피해 판매한 업자가 떼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경복궁, 창덕궁 근처에는 한복 대여업체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돈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한 가지 묻고 싶다. 그들은 전통문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시작했는가? 가치를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가?

산업이 확대되려면 돈이 돌아야 한다. 일단 밥은 먹어야 가치를 논할 수 있지 않는가. 하지만 한복 산업은 그렇게 유식한 말을 논하기엔 대부분 너무나 영세하다. 그렇기에 한복 대여점은 소비자의 요구나 불평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들에게 고고한 전통문화의 가치를 아무 대가없이 따라주길 바라는 것은 관의 오만일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생계가 달린 문제다.

어떤 형태의 한복이 ‘진짜’ 한복인 것일까? 조선시대 18세기 시대의 한복? 19세기? 60년대 한복? 이것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역시 지금의 ‘한복 같지 않은 한복’ 혹은 ‘변형된 한복’의 기준은 무엇인가? 어쩌면 이것을 구분하고 나누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할지 모른다.

결국 가치의 문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어떤 한복 디자이너는, 어떤 한복 대여업체에서는 묵묵히 전통의 가치와 소비자의 요구를 균등하게 맞추어 가려는 노력을 계속한다. (어떤 한복 디자이너는, 어떤 한복 대여업체에서는 전통은 이미 저 멀리 내팽개치고 한복으로 돈벌이나 할 생각으로 정신이 없다.) 한복에 대한 가치의 인식, 나아가 전통문화의 소중함에 대한 생각, 자신이 살아 있는 문화 계승자라는 자각은 잔잔하고 작은 파문일지 모르나 여럿이 모이면 큰 파동이 된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는 그러한 ‘통찰’들은 사라진 채, ‘소비재’로서의 한복과 전통문화가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조선일보(2017년 5월 28일). 기생 치마에 임금 문양… 엉터리 ‘古宮 체험 한복’ 판친다

임경화, 강순제(2001). 한복 대여업체의 현황과 전망에 관한 연구. 한복문화학회 4(3), pp. 8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