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 등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기업 구조조정 방식을 민관펀드같은 민간 자본 주도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가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도입한 정부계 펀드와 관민 펀드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달 31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센터에서 열린 ‘기업구조조정-당면한 과제와 해법 마련’ 정책 세미나에서 현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같이 주장했다. 

▲지난 31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센터에서 실시한 ‘기업구조조정-당면한 과제와 해법 마련’ 정책 세미나에서 현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이 "기업구조조정의 한계와 향후 정책과제"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자본시장연구원

민간펀드(PEF)나 투자은행(IB)이 구조조정 주도해야

현 연구위원은 “민간펀드(PEF)나 투자은행(IB)이 정착되기 전에 정부와 민간이 위험과 수익을 공유하는 다양한 형태의 관민펀드의 설계가 가능하다”며 “정부계펀드나 관민펀드 형태로 경험을 쌓고 축적해서 한국형 구조조정 방식으로 전환하는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관민펀드는 일본의 산업재생지원기구 설립을 계기로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다. 정부계펀드는 일본정책투자은행이 운영하고 있다. 이 둘은 민간펀드나 시장과의 마찰을 줄이고 정책목표와 수익성을 모두 추구할 수 있는 구조조정 펀드로, 부실채권 처리와 기업·산업재생이라는 두가지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 연구위원은 "일본 은행들이 버블 붕괴 이후 부실채권처리로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대형증권사들은 기존 IB업무 경험을 살려 은행들의 거래가 불가한 틈새시장을 공략해 구조조정과 자금면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며 "1990년대 은행 등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에 착안해 외국계 펀드운영회사에서 조성한 부실채권펀드가, 파산우려기관이하의 부실채권을 대상으로 하는 투자가 활성화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금융과 산업의 일체적인 재생지원정책에 따라 주로 비상장 주식을 투자대상으로 하는 PEF(벤처펀드, 바이아웃펀드, 산업재생펀드)가 다수 조성됐으며 이후 일본에서 PEF는 바이아웃펀드나 산업재생펀드 등이 주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현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정부의 직접적 관여나 금융감독기관이 채권단 은행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채무조정과 사업재생이 가능한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며 "초기 시장실패를 보완하고 위험을 감수하기 위해서는 정부계 펀드가 리스크 머니를 공급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실제 구조조정 안건 발굴과 기업실사는 민간 구조조정전문가와 노하우를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두일 유암코 기업구조조정 본부장은 "구조조정에 들어간 수백개 기업을 검토해 왔지만 전문가 풀이 부족한 것이 제일 큰 문제"라며 "다양한 구조조정 사례와 산업 이해관계자를 육성하는 것이 성공적인 구조조정 절차를 위한 길"이라고 첨언했다.

현 연구위원은 운용 및 투자결정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산업재생위원회’와 같은 의사결정기구도 함께 설립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지난 31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센터에서 실시한 ‘기업구조조정-당면한 과제와 해법 마련’ 정책 세미나에서 김두일 유암코 기업구조조정 본부장이 발제에 관해 토론하고 있다. 사진=자본시장연구원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친시장적 기업구조조정 여건 설립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오수근 이화여자대학교 법학대학 교수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금융 시스템 자체가 시장 친화적으로 구조조정이 나타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라며 “채권자가 합리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 시장 친화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려면 채권자가 부실을 털어내는 것이 그들의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센티브 구조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상인 교수는 “현재 금융당국은 회생에 아주 우호적이긴 하나 여전히 도산절차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다”며 “금융 정책 당국자들은 주요 산업의 부실 처리를 남에게 맡기는 일을 상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인호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회수금을 마련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있다며 "자본에 효율성을 추구하는 민간 자본이 구조조정에 투입되어야 보다 성공적인 조정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박 교수 의견에 보충했다.

서종군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 본부장은 민간자본 투입을 위해선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본부장은 “민간자본은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가장 최우선으로 여긴다”며 “사모펀드는 공공자본을 받아서 민간자본을 풀링하는 것으로, 구조조정하는 기업에 자본을 공급하는 관리기관이다. 관리하면서 누군가 통제를 받는다면 자본 유동성이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우리나라가 이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 발제에 나선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STX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법정관리 사례를 예로 들며, 현재 정부 주도 구조조정을 질타했다.

박 교수는 두 조선회사가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된 것에 대해 "정부는 기업 도산에 따른 실업발생과 기업 회생 가능성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기초로 지원 확대하고 있다"며 "이러한 낙관적인 자세가 기업 근로자 까지 고통스럽게 만들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