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홋카이도의 오시마 반도 남쪽 조그마한 영역에 겨우 발을 붙인 카키자키 가문은 자신들을 지배하던 '안도(安東)' 가문을 저버리고 158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에 붙으며 에조치와 사할린 전체에 관한 교역권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6대 다이묘인 카키자키 요시히로는 재빠르게 성씨를 마츠마에로 바꾼다. 그가 성씨를 마츠마에로 바꾼 이유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치사하다. 조상을 팔아 권력을 향하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죽기 전에 자신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에게 권력을 계승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히데요리가 성인이 될 때까지 다섯 명의 실력 있는 장수들이 뜻을 합쳐 섭정함으로써 통일 일본을 이끌어 나갈 것을 부탁하면서 5대로(五大老)로 임명하였다. 즉 도쿠가와, 우키타, 마에다, 우에스기, 모리의 다섯 장수다. 카키자키 요시히로는 그 다섯 명의 성씨 중에서 도요토미 가문 내에서 서로 다른 계파를 형성하고, 대립의 날을 세우며 견제하던 막강한 양대 산맥의 실력자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본성인 '마츠다이라(松平)'씨의 '마츠(松)'와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의 '마에(前)'를 따다가 '마츠마에(松前)'씨로 성을 바꿈으로써 자신의 충성심이 얼마나 깊은 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이다. 양다리를 걸치면서 어느 쪽이 실권을 잡던 지간에 실속을 챙기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리고 다음해인 1599년에는 마에다가 죽자 즉시 에도가문에 복종하겠다고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에조치와 사할린 전체에 대한 교역권을 다시 공인받는다. 그리고 1605년에는 에조와의 무역 독점권까지 인정받게 된다. 이것이 훗날 에도 막부 건립이후 '마츠마에 번'의 기초가 된 것이다.

일본은 에조치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누 족들은 그런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천성이 착하고 마음이 풍요롭고 낭만적인 민족으로 모든 것이 순리대로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일본이 자신들의 영토를 넘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기는커녕 조상대대로 남의 영토를 넘보거나 전쟁을 해 본 적이 없는 민족이다 보니 자신들의 영토 한 구석을 차지하고 난 이후로 야금야금 먹어 들어오는 마츠마에 번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민족이 평화롭게 살도록 놓아두지를 않았다.

 

마츠마에 번은 1784년부터는 에조치의 개척을 시작해 연안에 몇 개의 이주지를 건설하고 도둑고양이처럼 아이누의 영토에서 영역을 넓혀나갔다.

게다가 에도막부 시대 후기에는 러시아가 영토를 확장하면서 일본과 통상을 요구한다. 당시만 해도 일본은 서양오랑캐들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문을 굳게 닫아 걸어야 한다는 쇄국정책을 유지하려고 했었는데 러시아와 에조치, 즉 훗날의 홋카이도 부근에서 접촉한다. 일본은 즉각적으로 러시아의 위협에 대한 북방 방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1790년대에 사할린과 쿠릴열도를 포함한 모든 에조치에 대한 탐험을 시작하여 지리적인 지식을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지식과 함께 에조치에 대한 지배 및 관리 권한을 1821년에 마쓰마에 번에게 부여해 준다. 영토의 주인인 아이누족에게는 단 한마디 양해도 구하지 않고 자신들끼리 권한을 주고받았으니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그러한 행동들이 에조치를 침략하기 위한 일원이었으나, 아이누 족은 침략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민족이니 그런 일본의 행위에 대항하기 위해서 무언가 준비를 하고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누 족의 일방적인 바람이었지 일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