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인사의 하이라이트,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가 논란의 중심에 올랐다. 위장전입, 장녀의 이중국적 논란이 불거진 것. 외교부는 26일 강 후보자의 인사청문요청안을 국회에 요청했다. 강 후보자는 가족회의를 거쳐 장녀가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방향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감한 문제
한 나라의 고위 공직자가 자국의 국적을 보유하고 있지 않는 것은 큰 문제가 될 터이다. 국민은 고위 공직자가 꾸린 콘트롤 타워를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박근혜정부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내정되었다 낙마한 김종훈 씨가 대표적이다. 미국에서 벤처기업가로 명성을 떨쳤던 김 씨는 장관 임명 직전 한국 국적을 취득해 논란이 되었고, 끝내 장관에 기용되지 못한 바 있다.

그렇다면 본인이 아닌, 배우자나 자녀를 비롯해 가까운 친인척이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떨까. 2005년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후 최소한 국내에서는 이들이 고위 공직자에 오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명박정부 당시 초대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던 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부인과 아들이 미국 영주권을, 딸은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문제가 돼 고배의 쓴잔을 마시기도 했다.

고위 공직자는 국가의 미래를 건설하고 청사진을 제시해야 하는 직위에 있으며, 그 과정에서 철저하게 국민만 바라봐야 한다. 그런데 국적과 혈연이라는 경계가 흐릿해지면 힘있게 추진해야 할 정책의 순수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하물며 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아 냉정하고 치밀하게 자국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외교부 수장이라면, 기준은 더 엄격해야할 것이다. 특정 국가의 국적을 가진 딸을 가진 외교부 장관이 100% 잘못된 길을 걷는다는 단정은 아니라해도, 최소한의 리스크는 당연히 걷어내야 한다. 강 후보자 장녀를 둘러싼 이중국적 문제는 이런 관점에서 타당한 문제제기이자 필요한 검증이다.

기회비용의 정치학

우리는 규칙을 세울때 가급적 예외를 배제한다. 특히 국가와 같은 대단위 조직의 인프라를 조성하는데 있어 정해진 규칙에 예외를 적용하는 것은 상당한 리스크다. 

하지만 예외가 필요한 경우가 생긴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당장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둑이 있다고 치자. 규정에 따르면 둑에 구멍을 뚫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나 현장을 잘 아는 기술자가 보기에 지금 즉시 둑에 작은 구멍을 뚫어 약간의 물을 빼내야 한다. 당신이 기술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규정에 따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둑이 무너지는 것을 순리로 받아들이는 한편 아랫마을에 사는 내 가족만 몰래 대피시킬 것인가. 아니면 규정을 무시하고 평시라면 있을 수 없는 구멍을 뚫어 물을 빼 파국을 막고 이웃까지 살릴 것인가.

지금의 외교부는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둑과 닮았다. 비록 복잡한 국제정치 공학적 실타래가 얽혀있어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지만, 일본과의 위안부 협상이나 중국에서 불거진 사드배치 논란 등 '외교참사'라 불리는 심각한 균열이 둑 전체를 쩍쩍 가르고 있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박근혜정부를 거치며 외교부의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반발도 거세지는 상황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적절한 기회비용을 따져야 한다. 무너지기 시작한 외교부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에 배팅하는 것과, 철저한 원칙을 지키며 손을 놓고 마지막을 기다리는 것.

물론 강 후보자가 무너지기 시작한 외교부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아닐것이다. 다만 그간 강 후보자가 UN에 종사하며 보여줬던 능력과 열정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의 단서가 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이견의 여지가 있지만 강 후보자를 선택할 만하다. 댐의 붕괴를 막아내기 위해 규정에 없는 구멍을 뚫는 예외의 마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강경화 후보자를 인정해야 한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겠지만, 지금 우리의 상황이 편안하게 후보자 망신주기 끝에 결론이 나는 것을 지켜볼 순 없다. 

포용력있게 가자

고려 광종시대 쌍기(雙兾)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중국 후주 사람으로 시대리평사(試大理評事)라는 관직에도 올랐으나 956년 고려에 사절로 온 이후 병을 핑계로 돌아가지 않았고, 그대로 고려에 머물게 된다.

고려역사에 있어 그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당시 호족들의 견제에 막혀 개혁정치를 펴지 못하던 광종의 든든한 브레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광종 9년인 958년 과거제도를 처음 도입해 체계적인 국가 시스템을 정비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당연히 기득권의 반발이 거셌다. 훗날 고려의 문신인 이제현이 쌍기를 두고 "겉치레만 화려한 모습의 문(文)을 주창해 후세에 큰 폐단을 남겼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호족들의 반발은 조직적이고 강력했다.

그러나 쌍기의 정책은 광종대에 이뤄진 고려개혁의 핵심이자, 강력한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염원이 극적으로 발현된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쌍기는 엄연히 후주인이었지만, 그의 능력은 고려를 위해 사용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쌍기와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넓은 대륙에서 갈고닦은 선진문물을 적극적으로 들여와 파격적인 혁명을 일으켰던 쌍기의 존재가 지금의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아닐까. 만약 광종이 쌍기가 친인척 대부분이 후주에 있었다는 점만 집중해 그를 기용하지 않았다면 그의 개혁정치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고대 로마 제국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며 각 부족의 유력자들을 제국의 중추인 원로원에 포함시킬정도로 통 큰 포용력을 키워 지중해의 왕자로 성장한 바 있다. 간간히 부족장이 의원이 되어 원로원에 출석한 가운데 부족장의 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보고를 받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으나 로마는 이러한 포용력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로마의 멸망은 이러한 포용력을 버리는 순간 시작되었다는 점도 잊지말자. 포용력있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