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이 서서히 베일을 벗고 있다. 핵심은 일자리 창출과 성장의 분배로 요약된다. 재계는 큰 틀에서 정부의 방침에 따라 힘을 더한다는 계획이지만, 속도와 방향성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를 보이고 있다.

현재 청와대 집무실에는 일자리 상황판이 마련되어 있다. 심각한 일자리 문제를 대통령이 핵심이 되어 강하게 챙기겠다는 의지라는 것이 재계의 판단이다. 다만 문제는 총론이 아닌 각론에 있다. 재계 입장에서 일자리 창출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동의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방향성을 잡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강공 드라이브"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일정부분 확인됐다. 지금까지의 고용없는 성장을 반성하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지나친 독과점 및 담합구조를 깨트려 힘의 균형을 유도하는 방향성이다. 동등하고 치열한 경쟁상황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사실상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로 활동하고 있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6일 공정거래위원회와의 업무보고에서 가맹 유통 대리점의 불공정행위와 하도급 납품단가 후려치기 관행에 칼을 꺼낸 장면이 극적이다. 특히 징벌적 배상의 범위는 손해액의 3배 이내로 기업이 책임을 지도록 만든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배상의 규모와 대상을 넓히는 한편, 배상액 자체를 특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즉 기업의 갑질, 불공정거래 관행을 확실하게 잡아내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26일 업무보고 이슈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거의 확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공정위 기업집단국 신설과도 결을 함께한다.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재벌 저승사자로 불리던 조사국을 부활시키는 것이며, 조사국은 2005년 폐지된 바 있다.

이러한 철퇴가 곧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는 것이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논리다. 실제로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은 26일 업무보고 모두발언에서 "2000년 고용 유발계수는 26.5명에 달했으나 2013년에는 13명으로 줄었다"며 "고용없는 성장구조가 고착화된 셈"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김 위원장은 '상속자의 나라'라는 표현을 쓰며 "우리나라 경제는 지나치게 독과점 및 담합 구조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활력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공정위가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것도 부연했다.

▲ 삼성전자 2차 협력사 현금 물품지급 설명회. 출처=삼성전자

재계, "큰 그림은 동의하지만"
문재인정부가 상속자의 나라를 타파하고 고용없는 성장을 거부하는 한편, 공정위를 중심으로 강력한 혁신의 의지를 내비치자 재계는 큰 그림에는 동의하지만 내심 전전긍긍하고 있다.

일단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는 문재인정부의 의지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재계가 비정규직 제로와 일자리 정책을 핵심공약으로 걸었던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는 순간부터 나름의 '각오'를 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긴 호흡을 갖고 회사의 성공을 위한 로드맵의 일부로 정규직 전환을 고려하는 장면이 단적인 사례다. 비정규직이 전체 직원의 1% 미만인 삼성전자는 아직 별다른 준비를 하고 있지 않으나 LG유플러스의 경우 협력업체 직원 정직원 전환, SK브로드밴드는 5200명에 달하는 협렵업체 직원을 별도의 자회사에 편입시켜 모두 정직원으로 돌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공정위를 중심으로 재계를 압박하는 모양새에는 다소 긴장하는 눈치다. 재계 관계자는 "불공정 및 독과점 구조를 깨트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식은 다소 위험할 수 있다"며 "디테일한 방법론에 있어 필요이상의 규제가 가해지면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우려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싸고 갈등이 커지는 대목과,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시각의 차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간단히 생각하면 고무적인 방식이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끌어낸 인청공항 비정규직 직원의 정규직 전환에 있어 일부 비정규직 직원들이 월급이 줄어드는 점에 반발하는 것과, SK브로드밴드가 협력업체 직원을 모두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대목에서 협력업체가 '인력 빼가기'로 비판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도 대표적인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여겨지지만, 글로벌 기업의 경우 수직계열화를 통해 내적 생태계를 구축하는 상황에서 이를 우리만 무작정 재벌기업의 횡포로만 보면 곤란하다는 반론도 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 기업집단국 부활에 대해서도 "꼭 지금이어야 하는가"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다만 재계는 당분간 문재인정부의 기조에 발을 맞추며 정중동의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재계 관계자는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이 걸려있는 상황에서 누가 눈치를 보지 않겠는가"라며 "당분간 각 기업들은 최소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삼성전자가 1차 협력사에게 2차 협력사에 물품대금을 현금으로 30일 이내에 지급하게 만드는 새로운 프로세스를 도입한 것처럼, 큰 틀에서 중소기업과 장기적인 상생을 위한 행보를 보이며 일자리 창출에도 협력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소위 마지노선을 넘으면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오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서로의 입장을 확실하게 조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