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도대체 빚에 허덕이다 스스로 경영도 못 하는 기업을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1. 당신이 새 주인이요? 내 돈 내놓으슈!(우발채무)

우발채무, 예상할 수 없었던 채무를 말한다. 기업이 자금을 차입하는 과정 또는 거래하는 과정에서 보증서를 발급받는 일이 있다. 주로 건설사들이 공사를 하면서 하자보증이나 이행보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증기관들이 보증서를 발급하고 거래에서 사고가 나면 보증기관이 대신 갚아준다. 대신 갚은 보증기관은 보증서를 발급해 달라고 했던 기업에 대신 갚아준 돈을 청구한다. 이를 구상권이라고 한다.

M&A를 하는 과정에서 현재 인수기업이 장래 거래에 대해 사고가 있는지 예측하기 어렵고, 현재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아직 구상청구를 하지 않으면 인수기업은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인수되는 회사의 보증기관이나 보증인들이 청구하는 이 채권은 인수한 회사가 그대로 책임을 져야 한다.

해태그룹의 몰락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 바로 이 우발채무다. 해태그룹은 순환출자와 상호지급보증을 통한 금융권 차입으로 문어발식 확장에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1996년 11월 당시 국내 최대 오디오 업체인 인켈을 인수했다. 젊은 나이에 해태그룹을 승계한 박건배 회장은 인켈 대주주의 친분을 믿고 정밀하게 실사를 하지 않아 인켈 인수 후 예상치 못한 우발채무로 인해 쇠락의 길을 걸었다.

비단 우발채무뿐만이 아니다. 안창현 법무법인 대율 대표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실사 과정에는 회계전문가와 법률전문가가 같이 참여하는데, 회계전문가는 부외부채나 우발채무가 없는지와 회사의 가치(Valuation)를 조사하고 법률전문가는 과징금이 없는지를 면밀히 조사한다”고 설명했다.

부외부채는 실제로 채무가 있지만 회계장부에 표시하지 않은 채무다. 과징금은 공정거래법상 위반으로 부과되는 제재금이다. 보통 과징금은 매출의 10% 정도를 부과하기 때문에 한 해 영업이익을 모조리 환수당할 수 있다. 장래에 발생될 채무나 드러나지 않은 과징금이 있는 회사를 인수할 경우 인수회사가 받는 타격은 치명적이다.

반면 기업이 법정관리에 돌입하면 법원은 일정한 기간을 정해 채무자 기업의 채권자들에게 법원에 채권을 신고받는다. 이 신고받은 채권신고를 기초로 누구에게 얼마를 변제할 것인지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채권자들이 법원의 채권을 신고한다는 것은 채무자 입장에서는 채권자가 누구이고 채무가 얼마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기업을 인수하는 입장에서는 대상 기업이 얼마의 채무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인수해야 할 채무의 규모가 인수가액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법정관리기업은 이렇게 신고를 받는 과정에서 우발채무가 고스란히 정리된다.

정해진 기간에 채권자가 자신이 받을 돈을 신고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야말로 우발채무의 위험성과 관련이 크다. 법원에서 정한 기간 안에 채권자가 자신이 받을 돈(채권)을 신고하지 않고 있다가 어느 기업이 회사를 인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때서야 받을 돈이 있다고 신고한다면 인수기업 입장에서는 우발채무가 발생된 것이다. 이 우발채무는 갚아야 하는 것일까?

윤준석 김·박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이런 문제에 대해 “채무자회생법은 신고를 늦게 한 채권자의 채권을 소멸시킨다고 규정했다. 현실적으로 채권자가 채무자 기업에게 받을 돈이 있다 하더라도 법원이 정한 기간 안에 채권신고를 하지 않으면 그 채권은 소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법정관리가 종료된 후 뒤 늦게 신고한 채권자는 채무자 기업이 M&A로 인수되더라도 인수한 회사에게 돈을 달라고 할 수 없게 된다. 법정관리 절차가 우발채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역할이 있게 된다.

윤 변호사는 법정관리 절차에서 채무자가 회사에 부과해야 할 과징금조차도 금융당국이 신고하지 않는다면 실효된다는 판례가 있다고도 말했다.

법정관리 중인 동아건설 M&A의 실무를 담당했던 한 임원은 “동아건설의 인수, 합병 당시 혹시 있을지 모르는 우발채무를 감안해 삼라그룹이 인수가격을 낮추어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우발채무에 대한 우려는 기업의 인수가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이것은 법정관리 절차에서는 우발채무에 대한 예견 가능성이 있어서 또한 가능한 일이다.

 

2. 살 빠지니 가벼워졌네. 한번 안아보자(채무 줄어들고, 싸졌다)

법정관리 기업의 가장 큰 장점은 채무가 감면된다는 것이다. 채무자 회사가 법정관리에 돌입하면 법원은 회계사로 구성된 조사위원으로 회사로 파견해 회사의 재정상태와 장래 영업가치를 수치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조사위원의 조사에 따라 채무자 기업이 장래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산출되면 그 수익에서 회사운영에 필요한 제반비용을 공제한 나머지를 일반적으로 10년 동안 매년 상환하게 된다. 다만 모든 채무를 상환하지 않는다. 회사의 장래 10년 동안의 이익 중 상환여력의 한도에서 상환하게 된다. 여력이 되지 않는 채무는 회생계획안에서 면제된다.

법정관리 기업을 사려고 하는 인수기업 입장에서는 그만큼 부담이 없다. 법정관리기업이 아닌 정상적인 기업을 인수하려고 한다면, 채무를 감면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사업을 다각화하려는 기업이 법정관리 기업을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인수가격이 싸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M&A는 인수대상기업의 기업가치를 산정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인수가액에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포함된다. M&A 시장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IMF 이후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던 대우건설 및 대한통운을 약 4.5조원에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대우건설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인수자금을 조달한 것이 빌미가 되어 거액의 손실을 안고 재매각한 사례가 있다.

법정관리를 받는 기업은 본래의 기업가치 외에 경영권 프리미엄이라는 것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최저일 뿐이다.

법정관리 기업은 최저가격과 최고가격의 범위가 설정된다. 인수기업은 그 범위 내에서 입찰에 임한다. 기업이 법정관리 신청을 하면, 법원이 조사사위원을 파견해 채무자 기업의 청산가치와 계속기업가치를 따져본다.

청산가치는 채무자 기업이 파산했을 때 채권자들에게 나누어 줄 자산가치를 산정하는 것이다. 반면 계속기업가치는 채무자 기업이 파산하지 않고 계속 사업이 지속되었을 때 산정되는 가치다. 예컨대 X라는 회사가 파산을 한다면 채권자들에게 나누어 줄 재산이 100억원이다. 이 회사를 파산시키지 않고 계속 영업을 시켰을 때 채권자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돈이 140억원이라면, 이 회사의 인수가액은 100억원에서 140억원 사이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가격에 경영권 프리미엄은 붙지 않는다.

김판섭 법무법인 현우 DIP연구소장은 “법정관리 회사가 가장 쌀 때는 청산가치가 계속 기업가치보다 높게 나타나는 경우다. 이 경우 기업은 파산을 해서 자산을 채권자들에게 모두 나누어 줘야 하지만 법원은 이때에도 M&A를 하도록 한다”라며 “이런 조건의 회사를 인수하는 기업은 당연히 청산가치에 해당하는 가격만을 주고 인수한다”고 설명했다.

피혁회사 신우는 상장회사였다. 경영악화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신우는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높게 산출됐다. 신우의 청산가치는 약 300억원의 공장부지 가격이었고, 계속기업가치는 지속적인 영업손실로 마이너스였다.

당시 신우의 한 임원은 “신우가 청산가치가 높게 나와 파산절차를 밟아야 하는 시점에서 법원의 주도로 M&A를 하게 되었고, 이때 재무적 투자자와 전략적 투자자가 참여한 컨소시엄에서 부동산 가격 300억원을 인수가액으로 인수했다”고 밝혔다. 이 임원은 “파산으로 가야 할 상황이고 인수의향자가 유일해서 경영권 프리미엄은 생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3. 빚더미 회사 샀는데 무슨 세금까지 냅니까?(이월결손금)

세금적 이익을 위해 법정관리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법정관리 기업에 이르는 회사는 수년 동안 적자인 경우가 많다. 적자기업은 결손금이 이월되어 이익이 생겨도 법인세 납부가 면제된다. 이월결손금 공제라고 한다. 이월결손금 공제는 최장 10년 이내에 결손금을 현재의 이익에서 결손금을 빼서 기업의 법인세 부담을 완화해주는 제도다.

예컨대 어느 기업이 2016년 기준으로 매년 손실이 발생해서 누적된 결손금이 100억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 회사가 2017년에 10억원의 이익을 내도 이에 대한 법인세(현행 법인세는 과세표준 금액의 22%) 2억2000만원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적자기업은 이 누적된 적자금액을 소진할 때까지 법인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다.

대부분 법정관리기업을 인수하려는 회사는 법정관리 기업을 통해 사업의 다각화를 모색하려는 의도가 크다. 이와 달리 이렇게 세무 이익만을 위해 기업을 인수하는 회사도 있다. 국내 대형 회계업계의 한 파트너 회계사에 의하면, 2015년도 삼라마이더스 그룹이 법정관리 기업인 동아건설을 인수했을 당시 동아건설의 이월 결손금은 약 3000억원으로 알려졌다.

삼라그룹의 경우 앞으로 10년 동안 이익금에서 3000억원을 공제하고 그래도 남는 이익이 있으면 법인세를 납부하게 된다. 따라서 3000억원까지는 이익이 생겨도 법인세를 납부하지 않아도 되는 결과가 나온다.

가령 이월결손금 없이 3000억원의 당기 순이익을 냈다면 이에 대한 법인세 22%인 660억원을 납부해야 되지만, 3000억원의 이월결손금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공제하면 사실상 이득이 없는 것이 되어 법인세 660억원을 내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다.

이와 관련해 당시 동아건설의 한 관계자는 “이익이 나는 회사가 동아건설을 인수하면 이와 같은 이월결손금의 혜택을 누릴 수 없어, 삼라그룹 산하 우방건설과 인수가 아닌 합병의 방식으로 회사를 결합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우방건설과 합병한 동아건설은 합병 금액이 약 380억원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삼라그룹은 인수가액 380억원으로 3000억원을 벌더라도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세무이익을 얻는다. 결국 삼라그룹은 동아건설을 품에 안으면서 건설사업의 다각화와 세무 이익을 취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