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지난 대통령선거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 시행 결과 해당 질환(암, 심혈관, 뇌혈관, 희귀난치성 질환) 보장률이 79.9%를 기록했다.

4대 중증질환 13개 항목의 선별급여 적용 등을 통해 2015년 4대 중증질환 보장률은 전년 77.7% 보다 2.2%p 상승했으며, 4대 중증질환의 비급여 부담률은 11.5%로 전년(14.7%) 대비 3.2%p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2015년 기준 건강보험 보장률은 전년 대비 0.2%p 상승해 63.4%로 나타났다. 진료비(비급여 포함)로 100만원이 나왔다면 63만원은 건보 재정으로, 37만원은 환자가 부담하는 셈이다.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수천억원을 쏟아 부었지만,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10년 동안 보장률은 62~63%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OECD 회원국 평균 보장률(78%)에 여전히 못 미치는 수준인 것이다.

이에 따라 4대 중증질환이 아닌 다른 중증 환자들은 치료에 상당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이 이토록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비급여 풍선효과, 건보 보장률 저해
우리나라가 건강보험을 도입한 시기는 박정희 정부 때이다. 1963년 의료보험법이 처음 도입됐지만 본격적으로 기틀을 잡았을 때는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의 가입을 의무화했으며, 그 뒤로 공무원, 사립학교 교직원, 농어촌 거주자로 점차 대상을 넓혔다. 1989년 도시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건강보험을 도입하면서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했다.

아파서 죽는 사람보다 굶어서 죽는 사람이 많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적게 보장 받더라도 보험금을 적게 내는 형태로 시작했다. 원가에 못 미치는 의료 수가였지만, 보장 대상을 넓히면서 수가도 올려주겠다는 정부의 약속과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에 의해 ‘저부담, 저보장, 저수가’ 제도에 동의했다.

초기에는 전 국민의 5%만이 건강보험 가입자여서 병원은 나머지 환자들에게서 수익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1960~70년대 경제 성장률이 급격하게 성장하며 연평균 9.2%에 달하면서, 건강보험을 가입하는 대상자도 급격하게 확대된 것이다. 의료계는 정부로부터 약속받은 수가를 인상할 겨를이 없었고, 이에 따라 비보험 환자를 통한 손실 보전도 불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병원들은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 등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으로 손실을 보전하기 시작했다.

‘저부담, 저보장, 저수가’ 시스템이 계속되자 ‘비급여 진료비’도 증가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관리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높을 뿐만 아니라, 병원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전환해도 새로운 비급여 항목이 나오는 풍선 효과로 의료비 보장 효과가 미비할 수밖에 없다.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공약으로 특정 질병만 보장률 높여
4대 중증질환 보장률이 증가하는 동안 고액 진료비 질병 중 하나인 치매는 보장률이 2012년 71.5%에서 2015년 69.8%로 후퇴했다. 치매는 연간 1000만원 이상 병원비를 쓴 경우가 5만여명에 이른다. 패혈증(68.1%)과 골수염(62.2%)은 2015년 모두 건강보험 보장률이 60%대에 그쳤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특정 질환을 대상으로 한 선별 지원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2015년 기준 환자 당 진료비가 연평균 1000만원 이상인 질병의 환자는 70만8200명에 이른다. 이중 4대 중증에 포함되지 않는 환자의 비율은 2013년 39.4%에서 2015년 43.3%로 3.9%p 상승했다.

보장률 80%로 올리려면 보험료 30% 인상해야
19대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대선 후보들은 이같은 현실을 반영해 건강보험 보장률을 OECD 평균 이상으로 끌어올려서 병원비를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건강보험료 인상 없이 보장률 강화’라는 문구는 달콤하다. 하지만 보장률을 80%까지 올린다 쳐도 1년에 16조 8000억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게 복지부 계산이다. 현재 건강 보험 누적 흑자가 20조원에 달하지만 노인 의료비의 급격한 증가 등으로 인해 이 돈만으로는 어떤 공약도 2년 이상 지켜지기 어렵다는 것.

사실상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세금인 국가재정을 끌어오거나 건강보험료를 지금보다 두 배 이상 올려야 한다. 연금 전문가들은 건강보험 보장률을 80%까지 높이려면 지금보다 보험료를 30% 더 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이 발표한 국민의 보건의료 분야 각종 정책의 필요 수준과 해결 우선순위 인식에 관한 '의료정책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47.7%가 ‘더 많은 보험료를 지불하더라도 더 많은 보험 혜택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23.9%는 보험 혜택을 축소하더라도 보험료 인하가 필요하다‘고 했으며, 20.4%는 지금이 좋고 변경이 필요없다’고 응답했다.

더 많은 보험료를 지불하더라도 더 많은 보험 혜택을 원하는 응답자들에게 어느 정도 건강보험료를 추가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본 결과로는 현재 납부 금액의 최대 10∼20%를 추가로 지불할 수 있다는 비율이 32.8%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평균 추가지불의향 비율은 현재 납부 금액의 18.7%로 나타났다.

보험료 인상을 통해 중증질환 입원 및 간병, 소아청소년 진료 등에 대한 무상 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는 의견에는 76.0%가 동의한다고 응답했고, 건강보험 의료보장 혜택을 강화할 때 우선 혜택 분야로는 37.7%가 ‘암, 뇌졸중 등 중증질환 보장 강화’를 원했다.

박근혜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은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만 이끌 수 있었다. 엄청난 재원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질환의 보장률만 높일 수 있었다. 전체적인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할 것이다. 보여주기식 공약이 아닌 실현 가능한 복지 정책을 위해선 재원 마련 방안도 함께 제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