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너'라는 말이 있습니다. 엄연히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신조어입니다. 뜻은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으니, 순순히 대세에 따르라는 나름 귀여운 협박(?)인 셈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중국을 보겠습니다. 최근 사드 배치에 따른 후폭풍 등으로 한중관계가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 경제적 관점에서 가히 재앙에 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지난 3일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한국 경제는 올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약 0.5%, 무려 8조5000억원의 경제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다만 사드 배치는 긴 호흡으로 보면 일부에 불과합니다. 사실 중국의 폐쇄성, 이에 따른 높은 진입장벽 등의 이유로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회의 땅이지만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가진 위험한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곳이 바로 중국이니까요.

문제는 사드 배치 및 중국 정부의 폐쇄성 등을 이유로 현지에서의 패배를 정당화하려는 목소리가 조금씩 고개를 드는 지점입니다.

스마트폰부터 볼까요.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9일 중국 스마트폰 시장 1분기를 평가하며 삼성전자 점유율이 3.3%에 불과, 7위에 머물러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일부 국내 언론은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며 갤럭시노트7 발화에 의한 단종, 나아가 중국 정부의 폐쇄적인 조치가 삼성전자의 힘을 빼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분명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있어요. 바로 삼성전자의 실패입니다. 갤럭시노트7 단종으로 인한 브랜드 타격은 분명 있었어요. 하지만 이것이 문제라면 최근 삼성전자가 1분기 글로벌 시장에서 1위에 복귀한 장면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중저가 라인업 및 갤럭시S7을 통해 글로벌 1위를 탈환했는데 중국은 왜 못했을까요?

당연히 갤럭시노트7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를 중국과 연결해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간단합니다. 화웨이 및 비보, 오포만큼 현지에서 강점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갤럭시노트7 핑계는 그만 대자고요. 여담이지만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발화 정국 당시 중국 ATL 배터리는 안전하다는 성급한 판단을 내렸고, 각지에서 리콜에 돌입하면서도 ATL 배터리를 사용했던 중국에서는 여전히 갤럭시노트7을 판매했습니다. 하지만 ATL 배터리를 탑재한 갤럭시노트7도 발화되었고, 그 결과 중국에서 삼성전자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 바 있습니다. '왜 중국에서 회복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이러한 사실관계가 답이 되어야 합니다.

네? 중국 당국의 '팔 안으로 굽기'가 원인일 수 있다고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2014년부터 벌어진 현지 시장의 추이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원래 삼성전자는 중국에서 스마트폰 점유율 부동의 1위였어요. 하지만 샤오미의 손에 2014년 1위를 빼앗겼고 지금은 톱5에서 완전히 밀려났어요. 맞습니다. 삼성전자는 현지 공략에, 그것도 일찌감치 2014년부터 밀려난겁니다. 그 패권이 샤오미에서 화웨이로, 다시 비보와 오포로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틈을 노리지 못하고 무기력했습니다. 경쟁상대가 계속 바뀌고 있는데 틈을 노리지 못한 것은 역량의 문제입니다.

▲ 출처=픽사베이

이야기가 여기까지 오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애플도 힘을 못쓴다. 우버 현지에서 철수하는 것 봐라. 중국에는 글로벌 기업도 맥을 못추지 않는가. 그러니까 우리가 밀리는 것도 당연하다.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 실제로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외국 기업에 상당한 압박을 가하고 있으며, 거대한 내수시장의 역량을 대부분 자국기업에 몰아주는 분위기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온실 속 화초를 기르는 것 맞습니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야할 점은,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를 볼까요. 플랫폼으로 현지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콘텐츠 기업으로 현지의 아이치이와 손을 잡았습니다. 물론 플랫폼 권한이 없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죠. 하지만 넷플릭스는 자사의 강점 중 하나인 오리지널 콘텐츠를 내세워 방대한 내수시장을 가진 콧대높은 중국을 설득했습니다. 윈도10S를 보면 알겠지만 제시할 수 있는 카드가 많으면 선택지가 넓은 법입니다. "중국은 어려워"라고 말하기 전, 우리는 얼마나 다양한 사용자 경험을 품어내며 소프트웨어 감성까지 동원해 중국을 공략했었나요? 진지하게 자문해야 합니다.

네. 물론 중국 시장 어렵습니다. 그리고 사드 배치 및 그 외 다양한 이슈로 현지에서 글로벌 기업도 크게 힘을 못 쓰는 것 사실이에요. 그런 이유로 한국기업들도 어려움을 겪는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패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합리화만 한다면 그것 자체가 더 큰 문제입니다. 답정너는 이제 그만. 사드 때문이야. 중국 정부 때문이야. 이제 그만.

맨날 미세먼지 문제로 욕만 하면서 패배를 미화하지 말고, 적극적인 이용방법을 찾자고요.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처럼 베이징 스모그라도 빨아들이며 그들을 이용할 생각만 해야 합니다. 아. 그런데 여기까지 글을 쓰다보니 '아무래도 어렵겠구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보아오 포럼이라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는데 최순실 비선실세 논란으로 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과 국회로 다녔던 추억이 뇌리를 스치네요. 상황이 이렇게 되면 패배를 미화라도 해야지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이런 나라에 살고 있으니까요.

[IT여담은 취재과정에서 알게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번은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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