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 공통으로 적용되는 환경이라는 조건에 가장 잘 적응한 개체들만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물학적 가정에 근거한 이론이다. 이를 기업 경영에 적용해보면 한 세기(100년)라는 긴 시간 동안 살아남은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이 지속되는 경제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어떤 전략적 접근을 통해 100년 동안 그 이름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물론 개별 기업들이 마주했던 일시적 상황이나 그에 대한 대응 하나하나를 전부 다룬다면 ‘열거만 해도’ 책 몇 권 분량으로도 모자랄 방대한 스토리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순서에서는 국내·외 100년 이상 유지해온 기업들 중 한 가지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한 생존, 그리고 ‘변화’를 통한 생존 등 두 가지 관점으로 한정해 각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들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마에스트로를 만드는 힘 ‘일관성’

특정 분야에서 최고의 단계에 이른 사람을 마에스트로(Maestro, 장인·거장)라고 부르며 존경을 표한다. 여기에는 특정 분야에서 그보다 더 많은 경험을 지녔거나, 그보다 더 기술적으로 뛰어난 사람은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비단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표현은 아니다. 기업에도 마에스트로가 있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이르고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연구와 성찰을 지속하는 기업들에게도 우리는 마에스트로라는 찬사를 보낸다.

그런 의미에서 ICT 기업들 중 마에스트로의 수식어가 허락되는 업체로는 IBM이 있다. IBM의 전신은 1911년 찰스 플린트가 설립한 컴퓨터 타뷸레이팅 리코딩 컴퍼니(Computing Tabulating Recording Company)다. 1924년 현재의 IBM으로 회사명을 변경했다. 창립부터 현재까지 기술적 역량 강화에 집중된 연구와 투자는 최초의 전자 타자기 일렉트로마틱(Electromatic), 프로그래밍 언어 포트란(FORTRAN) 그리고 70년대 저장장치의 혁신으로 불린 플로피 디스크 등 눈부신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일련의 성과들로 IBM은 1998년 IBM은 한 해에만 미국 특허청으로부터 2000개의 특허를 받은 최초의 기업이자 임직원들 중에서 총 다섯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기업이 됐다.

일본 기업 니콘(Nikon)도 광학 및 영상기술을 근간으로 한 촬영기기 기술에 있어 글로벌 마에스트로의 반열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기업이다. 니콘은 1917년 창립돼 올해로 정확히 100년의 역사를 기록했다. 니콘의 전신은 1917년 설립된 일본광학공업주식회사(日本光學工業株式會社)다. 니콘이라는 이름은 일본광학(니폰 고가쿠: 日本光學)과 독일 광학회사 자이스(Zeiss)의 브랜드 아이콘(Ikon)을 합성해 만들어진 것으로 회사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니콘의 광학 기술은 카메라, 현미경, 거리 계측기, 반도체 장비 등 광범위한 부분에 적용되며 현재까지도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글로벌 주얼리 브랜드 스와로브스키(Swarovski)는 주얼리 패션 분야에서 125년간 업계를 이끌어 온 마에스트로 기업이다. 스와로브스키는 1892년 오스트리아의 보석 기술자 다니엘 스와로브스키가 자신이 개발한 크리스털 커팅기계의 활용을 토대로 창립한 회사다. 그가 개발한 크리스털 커팅기계는 수작업으로 보석을 가공하던 기존 업계의 생산체계를 모두 기계화하는 혁신을 이끌었다. 아울러 1975년 스와로브스키가 발명한 투명 접착제는 크리스털 가공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들은 스와로브스키가 창업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주얼리와 패션이라는 외길을 묵묵하게 걸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아울러 스와로브스키만의 독특한 장수 비결로 이야기되는 것은 철저한 가업(家業) 승계 원칙이다. 창업자 다니엘 스와로브스키는 회사의 모든 지분을 후손의 서열에 관계없이 모두 같은 비율로 배분하며, 지분의 거래도 가족들 내에서만 이뤄지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이 같은 일관성은 후손들이 재산이나 경영권 소유의 다툼으로 기업이 무너지는 것을 막고 안정적인 경영 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스와로브스키의 원칙은 창립 이후 현재까지도 계속 지켜지고 있다.

일련의 기업들이 보여주는 생존 전략은 한 가지 전문 분야에 대한 몰입, 그리고 절대 원칙의 적용을 통한 ‘일관성’이다. 이는 곧 회사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핵심에 집중함으로써 더 큰 가치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백년기업들의 생존 전략이다.

앞서가는 혁신의 원동력 ‘변화’

앞서 소개된 백년기업들이 ‘일관성’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유지해왔다면 지금부터 소개할 회사들은 상황에 따른 변화를 통해 생존해온 사례들이다. ‘발명왕’ 에디슨이 세운 회사로 더 잘 알려진 GE(General Electric)는 에디슨(Thomas A. Edison)이 만든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Edison General Electric)과 톰슨 휴스턴(Thomson-Houston)의 합병으로 만들어진 회사다.

현재까지도 GE는 미국인들에게 ‘가전회사의 자존심’이라 불릴 만큼 상징적 의미가 있는 기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GE는 가전제품 제조를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지만 현재는 에너지·기술 인프라·금융·소비자·산업 등 5개 부문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기업으로 변화했다. GE는 산업계에 불어닥칠 변화의 흐름에 누구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기업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GE의 산업용 클라우드 플랫폼인 ‘프레딕스 클라우드(Predix Cloud)’다.

프레딕스 클라우드는 GE가 2015년 출시한 세계 최초의 산업용 클라우드 솔루션으로 산업 기계‧설비 공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대규모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클라우드 솔루션이다. 제품의 제조를 기반으로 한 GE의 이와 같은 변신은 관련 업계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의 사례로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그에 앞서 GE는 기업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자사의 핵심 사업인 가전사업부문을 중국 전자기업 하이얼에 매각하는 등 과감한 변화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다. 새로운 시장을 적극적으로 탐색해 조금이라도 효율성이 떨어진다면 자신의 강점이라고 할지라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GE는 현재 혁신과 변화의 아이콘으로 회자되고 있다.

새로운 영역에 대한 백년기업의 또 한 가지 도전 사례로는 독일 화학 기업 바이엘(Bayer AG)이 있다. 바이엘은 세계 150여개국 350여개의 자회사와 100곳 이상의 제조시설을 갖추고 있는 독일의 글로벌 제약 및 화학 회사다. 우리에게는 해열진통제 브랜드 ‘아스피린(Aspirin)’으로 친숙한 기업이기도 하다.

재미있게도 바이엘의 시작은 현재의 사업 분야와는 거리가 멀었다. 바이엘의 전신인 프리드리히 바이엘(Friedrich Bayer)는 1863년 8월 창립된 염료제조회사였다. 이는 공동 창업자인 프리드리히 바이어(Friedrich Bayer)는 염료 세일즈맨, 요한 베스코트(Johann Friedrich Weskott)는 염료를 만드는 장인이었기 때문에 둘은 염료의 제조와 판매로 의기투합했던 것이다. 이후 1881년 주식회사 ‘Farbenfabriken vorm. Friedr. Bayer & Co.’로 사명을 바꾸고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 바이엘은 의약품, 화학 분야를 겸하게 됐고 이 시기부터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역사에 남을 의약품 ‘아스피린’을 통해 글로벌 의약품·화학 업체로 발돋움한 바이엘은 농업 및 식량산업까지도 그 외연을 확장하며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바이엘은 2015년 9월 세계 최대 종자 생산회사인 미국 ‘몬산토(Mosanto, 1901년 설립)’의 합병 합의안을 체결해 올해 말 모든 절차의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아울러 바이엘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향후 6년간 농업 연구 개발(R&D) 분야에 80억달러(한화 약 9조3600만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하는 등 변화에 대한 자신들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김범열 수석 연구위원은 “세계 3대 경영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톰 피터스는 저서 <초우량 기업의 조건>을 통해 장수 기업이 되려면 ‘핵심 사업에 집중하라’고 했으나, 몇 년 뒤 톰 피터스는 이전에 이야기했던 이론들이 현재에는 들어맞는 것이 없다며 자신의 의견을 번복했고 새로운 책을 통해 핵심에 대한 집중이든, 혁신을 이끄는 변화든 중요한 것은 글로벌 환경에 대응하는 각 기업들의 전략적 접근이라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즉, 글로벌 환경에 대한 대응은 각 기업이 속한 업종에 따라 핵심 사업에 대한 집중이 될 수도 있고 변화가 될 수도 있다”며 “결국 백년을 가는 초우량 기업이 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시장과 소비자들이 제품이나 서비스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분석해 각 기업들이 자사의 상황에 맞는 생존법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