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국민의당 경선에서 안철수에 대해 호남은 득표율 90%라는 어마어마한 몰표를 몰아주었다. 정치 평론가들과 언론은 호남‘반문’의 전략적 선택이니 뭐니 하면서 아부하기 바빴다. 그동안 역대 대선 때마다 호남 몰표, TK 몰표는 전략적 투표로 포장돼 왔다.

과연 몰표는 전략적 고려의 산물인가? 아니면 몰상식한 지역감정의 잔재인가? 어떻게 90%를 넘는 득표율이 가능하냐, 5공 철권 통치 때에도 그런 몰표는 없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검증할 길은 없었다.

손자는 최선의 전략은 적을 다치지 않고 온전히 항복을 받아내는 것(全國僞上 破國次之, 全軍委上 破軍次之, 孫子 謀攻篇)이라 했다. 만일 몰표가 올바른 ‘전략적 고려’의 산물이라면 상대의 역량을 훼손하지 않고 온전하게 보전한 채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지역 감정을 종식시킬 수 있어야 하고, 정치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은 정반대다. 몰표는 진정성 어린 동의나 화해를 얻어내기는 커녕 반발만 키웠다. 몰표는 몰표를 낳고, 선거를 치를 때마다 지역 감정은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특정 지역의 몰표는 제대로 된 전략적 고려의 소산이 절대로 아니다.

결론부터 말해 무조건 몰표, 무조건 반대, 절대 전략적 투표 아니다. 정말 무식한 행위다. 퇴행적·망국적 지역 감정의 소산일 뿐이다. 이제는 ‘전략적 투표’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묻지마 몰표’를 극복할 때가 되었다.

지역 몰표는 지역 감정을 부추겨 쉽고 값싸게 표를 얻으려는 정상배들의 얄팍한 선거 전술의 결과물일 뿐이다. 이들은 언론과 담합해 지역적 몰표를 ‘전략적 투표’라고 호도함으로써 지역 주의를 조장해 왔다. 유권자들이 비판 의식 없이 투표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함으로써 쉽게 뭉치표를 얻었다. 아니 훔쳤다.

세간에서는 전통적 지지층을 ‘집토끼’, 부동층 또는 중도성향의 유권자를 ‘산토끼’라고 쉽게 말한다. 어떻게 유권자를 만만한 토끼로 비유할 수 있는가? 유권자를 우습게 알고 농락하는 이 분류법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재명 성남 시장이 ‘머슴(정치인)들이 간이 배밖에 나왔다’고 질타한 것이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전략적 투표론’ ‘토끼론’은, 유권자를 자기들 입맛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선거꾼들의 왜곡된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언론도 반성해야 한다. 지역적 몰표는 의식없는 투표 행위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지역적 몰표와 토끼론은 반드시 몰아내야 할, 우리 정치의 어두운 그림자다.

호남은 멀리 거슬러 올라가 임진왜란 당시 한반도의 운명을 오롯이 지켜냈다. 그런가 하면 동학혁명으로부터 시작해 5. 18 광주 민주화 운동 그리고 DJ의 한을 안고 있다. 호남 몰표에는 그 자부심과 그 한(恨)이 씨줄과 날줄로 교직(交織)돼 있다.

그러나 DJ가 집권해 노벨 평화상까지 받고, 노무현이 DJ의 정권을 이어받기까지 한 이 시점에 아직도 거기 머물러 있다면 지하의 DJ가 땅을 치고 통탄할 것이며, 민주화의 성지가 맞는지 반성해야 한다.

TK 역시 마찬가지다. 여말 선초 막강한 중앙 권력을 견제한 영남 사림(士林)의 아름다운 전통을 왜 기억하지 못하는가? 이승만 이래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11명의 대통령 가운데 5명을 배출한 ‘권력의 산실’이라는 자부심을 조금 더 너그럽게 드러낼 수는 없을까?

가장 정치 의식 높은 두 지역이, 선거꾼의 장난에 놀아난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두 지역이 아직도 구시대적인 묻지마 투표에 매몰돼 있다면, 그것은 수치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호남도 TK도 모두 ‘묻지마 투표’의 구태를 벗을 것으로 보인다. 희망의 싹이 보인다. 판세가 불리해지자 지역 정서를 부추겨 뭔가를 얻으려는 후보가 있지만, 현명한 호남과 TK 유권자들이 그들을 정말 통렬하게 단죄해 줄 것을 기대한다.

지더라도 당당히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힐 것인가? 될 사람에게 투표해 압승하도록 하고, 그래서 국정 안정에 기여할 것인가? 이것이 진정한 전략적 투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