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가 투표율 26.1%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다. 필자는 ①사전 투표율이 매우 높고 ②청년층이 적극 참여하며 ③ 선거 판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며 ④ 문재인 후보에게 매우 유리할 것이라고 일찍부터 예언한 바 있다. 그러나 26.1%는 20% 전후가 될 것이라는 필자의 예상조차 훨씬 뛰어넘는, 당분간 깨지기 힘든 대기록이 될 것이다.

지역별 사전투표투표율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두 가지다. ①호남 지역이 전반적으로 높고 ②대구, 제주, 부산이 가장 낮고 ③서울이 전국 평균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서울 투표율이 전국 평균과 거의 일치하는 현상은 역대 선거에서 이례적인,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러나 연령대별 투표율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결론을 내기는 어렵다.

높은 투표율로 미루어 호남은 대세가 결정됐다고 추론할 수 있다. 역으로 대구, 부산의 투표율이 낮은 것은 보수 진영이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추론할 수 있다. 보수 지지층은 과연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사전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보수 유권자는 다음 몇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실낱같은 보수 후보 단일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마지막 순간까지 투표를 미루는 경우.

둘째, 누구에게 투표해야 당선 가능성이 높을지 마지막 순간까지 여론 추이를 지켜보고 투표하겠다면서 투표를 미룬 경우.

셋째, 자유한국당이 바른정당 탈당파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난맥상을 보고 실망해 사실상 투표를 포기한 경우. 셋째 범주의 유권자는 9일 본투표에도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더 깊이 살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첫째, 둘째 범주의 유권자들이다. 이론적으로는 이들은 본투표에는 참여해야 하나, 정작 본투표일이 되어도 투표할지 말지 결론을 못 내리고 고민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바른정당 탈당파 13명의 우왕좌왕에서 이들의 고민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들은 나름대로 정치적 식견도 있고, 나름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있고, 나름 주변에 대한 영향력도 있는 유권자들이다. 투표를 하든 않든, 누구에게 투표하든 자신이 납득할 만한 동기와 논리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애초에 국정농단 사건, 외교안보와 경제 정책의 실패로 촉발된 조기 선거다. 대통령 탄핵이 가져온 조기 대선이다. 5대 후보 가운데 4명이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고, 단 한 명만이 탄핵 반대 세력을 대변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동기와 논리가 없고 의욕도 안 생긴다.

유보적 보수층은 단일화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것은 알고 있다. 탄핵을 주도하던 후보와 반대하는 당 후보의 단일화라니. 상승세의 홍준표·유승민이나, 하락세지만 한때 1위와 접전하던 안철수가 접을 리 없으니.

이들의 고민은 심각하다. 투표해 봐야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다. 차선의 후보에게 해 봤자 마찬가지다. 투표 생각하기도 싫고 하러 가기는 더 싫다.

투표하지 말까? 그래서는 안 된다. 투표는 민주 시민의 권리요 의무니까. 기권하면 내가 싫어하는 후보가 과반수 득표로 압승하는 참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 반대투표하자. 투표하면 지지하지 않는 후보의 득표율을 낮출 수는 있다. 그렇지만, 투표율은 높아진다. 투표율이 높아지면 투표로 선출된 대표의 정통성은 더 강화된다.

투표하든 기권하든 내가 싫어하는 후보의 정통성을 강화해주는 딜레마, 보수층의 마지막 고민이다. 이 고민이 해결되지 못한다면 이들은 투표장에 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들은 판단을 유보하고 기다린다. 누군가 설득력있는 논리를 제시해 주기를. 이들에게 분명한 지침을 주지 못한다면 홍준표는 잠재적 지지자를 투표장으로 끌어들일 수 없을 것이다. 결과는 문재인의 과반수 득표 압승, 진보는 2007년 참패를 10년만에 설욕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