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에서 실패 이력서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았다. 모 대학 총장이 나와 본인의 성공 이력서를 보여주더니, 다음 슬라이드에서는 실패 이력서를 보여주었다. 성공 이력서에는 서울대학교 졸업, 미국 시카고대학 박사학위 취득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실패 이력서에는 학력고사 4수, 박사학위 몇 년, 또 다니던 회사 모두 파산 등 실패한 이력들로 가득했다. 어느 이력서를 먼저 보느냐에 따라 그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을 볼 때 결과만 보고 그 이면의 수많은 실패는 잘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누구는 한번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고, 자신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니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러워지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공은 몇 번의 실패에 대한 보상이며 그 결과라고 그 프로그램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사람도, 사실 지금도 실패하는 중인지도 모르지만, 실패를 참 많이 했다. 대학교 10년은 그렇다 치더라도 박사 과정 8년은 정말 힘들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솔직한 이유는 실패를 많이 해서 그렇다. 수업도 그랬지만 특히 논문을 쓰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심사 과정을 밟아 나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오죽하면 학위 논문 통과한 학생 중 프로포절부터 재심사에 걸린 학생은 우리 학과 역사상 딱 한 명이라고 하니 말이다. 사실 그때 얼마나 힘들었던지 지금도 몸이 좋지 않으면 논문 통과 못 해서 졸업 못 하는 꿈을 꾸곤 한다. 하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은 그때 너무 처절하게 실패해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 된 것이다.

사실 성공은 한 번이지만 그 성공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실패가 있다. 실패가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창업 선배의 말처럼, 우리는 이제 실패에 대한 고정 관념을 바꾸어야 한다. 시대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량생산을 하는 시대에서는 정답이 존재했다. 그래서 그 정답에 미치지 못하면 불량이었고 실패였지만 지금은 정답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거나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고 그에 따른 오류 역시 항상 존재한다. 새로운 것은 실패 없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패는 낙오가 아니다. 실패를 해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고 목적지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요즘 대학에서 여러 가지 창업 관련 강좌들이 생기고 있던데 참 다행한 일인 것 같다. 창업이야말로 실패의 연속이며 그 실패 속에서 성공 방정식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은 정작 학교에서는 현장과 다르게 실패에 대해 관대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리 교육 자체가 정답만을 가르치는 시스템이다 보니 기존에 학습한 것을 외우고 반복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행착오가 인정된다면 굳이 몸을 사려가면서, 실패하지 않을 일만 선택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실패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고 그 실패를 환영해주고 축하해줄 수 있는 그런 문화가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실패한 경험이 우리 자식들 세대에서는 축복이 되고 진일보할 수 있는 경험의 밑천이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사람들에게 실패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재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줄 수 있는 실패 학교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성공적인, 훌륭한 실패에 대해 상을 주는 그런 학교 말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것도 우리 사회가 헤쳐 나가야 할 또 하나의 코즈(Cause)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