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회장을 처음 보는 이들은 그 소탈한 모습에 놀란다. 굴지의 그룹 회장이면서도 보좌진이나 비서 없이 혼자 나오는 모습에 놀라고, “이거 뭐 별 쓸데는 없는 겁니다”라는 말과 함께 직접 건네는 명함에 놀란다.

평소에는 이처럼 소탈한 모습을 보이지만 위기가 닥치면 구 회장은 놀랄 만큼 치밀하고 섬세해진다고 한다. 실제로 1996년 축구단인 LG치타스를 창단하면서 LG그룹은 유명 디자이너에게 축구단 심벌 디자인을 맡겼다.

몇 달 뒤 디자이너가 가지고 온 치타 캐릭터를 보고 구 회장이 디자이너에게 한마디 던졌다. “치타가 뛰는 거 본 적 있습니까?”

치타가 달릴 때는 다리 모양이 그림과 다르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 치타가 달리는 모습을 확인한 후 디자이너는 치타의 다리 모양을 바꿨다.

GS·LS그룹 분가시키고도 3배 성장

구 회장은 이처럼 뛰어난 친화력과 치밀함으로 1995년 LG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한 후 14년 만에 LG그룹의 이미지를 ‘보수’에서 ‘혁신’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우선 외형으로만 봐도 구 회장이 취임한 후 14년간 LG그룹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구 회장 취임 당시에 LG그룹은 계열사 50개에 매출은 30조원, 수출은 148억달러였지만 지난해 LG그룹은 계열사가 32개로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 115조원, 수출 482억달러로 3배 이상 커졌다.

당시 LG그룹이 GS그룹과 LS그룹을 포함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LG그룹의 체질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처럼 강한 LG를 만들기 위해 구본무 회장은 취임 이후 지난 14년간 끊임없는 혁신을 시도해 왔다.

취임 후 그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그룹의 명칭과 CI를 개편한 것이다. 또 1997년에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계열사 간 상호의존적 결합 방식을 버리고 법인 단위의 책임경영 체제를 도입했다.

재계 최초로 지주회사 도입

무엇보다 구 회장의 LG혁신의 절정은 지주회사 체제의 도입이라고 할 수 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선진적인 기업지배구조의 필요성을 절감한 구 회장은 2003년 재계에서 가장 먼저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1999년 LG화재(현 LIG손해보험)를 시작으로 2000년 LG벤처투자와 아워홈, 2003년 LS그룹, 2005년 GS그룹, 2007년 LG패션 등을 차례로 계열 분리시켰다.

지주회사로의 변신과 계열 분리는 사업영역을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로 단순화·전문화하는 한편 계열사 간 중복투자를 줄여 조직을 날렵하게 만들었다. 또 각 계열사가 출자 등 복잡한 문제를 지주회사에 맡길 수 있게 돼 계열사 CEO들의 경영 집중력을 높이는 데도 큰 도움을 줬다.

이에 대해 곽병열 대신증권 연구원은 “LG는 기업지배구조를 선제적으로 개선하면서 지주회사 아래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며 “구조적으로 주주 가치를 우선하는 경영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곽 연구원은 “특히 재계에서 가장 먼저 했다는 것이 시장에서는 프리미엄으로 작용했다”며 “2004년 이후 LG 계열사 주식의 수익률이 경쟁사들 가운데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고객중심 가치창조’ LG 웨이 선포

지주회사제 도입을 통해 지배구조가 정비되고 사업영역이 단순화·전문화되자 2005년부터 구 회장은 기업문화의 혁신에 나서기 시작했다.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 등 정도경영을 실천해 1등 LG가 되자”는 ‘LG Way(웨이)’를 선포한 것이다.

‘LG 웨이’의 선언과 보수적인 기업문화의 혁신은 이후 LG그룹이 위기를 극복하고 ‘만년 2등 브랜드’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변신하는데 결정적인 원동력이 됐다.

LG그룹은 2006년 LG 주력기업인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면서 한때 유동성 위기설까지 돌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절체절명의 시기에 LG그룹 휴대폰 부문에서 ‘초콜릿폰’, ‘프라다폰’, ‘시크릿폰’ 등 글로벌 시장에서 메가 히트상품을 잇따라 선보이며 위기를 극복했다.
LG 휴대폰이 이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히트상품을 내놓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고객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LG 웨이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LG전자 마케팅 부문은 ‘LG 웨이’선포 이후 광고계에서 주로 쓰이는 ‘인사이트(고객 통찰) 마케팅’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정도로 고객의 요구에 충실한 제품을 내놓는 데 주력했고 그것이 적중한 것이다.

또 LG그룹은 하반기부터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에 들어간 지난해에도 노트북 LCD 패널 등을 1위 상품으로 만들어 결국 최고 실적을 냈을 정도로 ‘위기에 강한’기업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이 같은 혁신을 바탕으로 LG그룹은 올해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11조원의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는 공격경영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 LG가 잘나가게 된 배경에는 기존 사업을 적극적으로 구조조정하고 기업 체질 변화에 나서는 등 지속적인 혁신을 추진한 구본무 회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며 “구 회장의 ‘소리 없는 혁신’으로 LG는 질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형구 기자 lhg0544@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