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오늘날 한산도에 의항(蟻港)이라는 지명이 있으니 적군이 항구에서 궁축(窮蹙=생활이 어렵고 궁하여 죽치고 들어앉아 있음)하여 갈 길을 알지 못하고 육지에 올라 개미떼 같이 모였다 하여 이름을 의항이라 하였습니다. 이 싸움에 일본 군사는 모두 9천여 명이 죽고, 도망한 자는 부지기수라 하였으며 공격하러 올 때의 적의 병력은 3만이라고 하였습니다.”

“음! 서울에 남아 있던 일본 제장들은 총대장 부전수가 이하의 수군 제장이 한산도 싸움에 대패하였다는 기별을 듣자, 모두 두렵고 무서워 떨며 이순신을 상대로 감히 서해를 엿볼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네, 한산도 싸움이 끝난 뒤에 장군은 전 함대를 몰고 승전고를 울리고 견내량 안바다로 나아가 진을 치고 밤을 지냈습니다. 장졸들은 종일 대전에 피곤한 것도 잊어버리고 기뻐하며 노래하였고, 장군은 아직도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요, 내일 또 어떻게 큰 싸움이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다들 잠을 잘 자서 몸을 휴식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음! 모두가 전투에 찌들어 자고 있을 때 공에 눈이 먼 원균의 배 4, 5척이 바다 가운데로 가만히 나가 적병의 시체를 찾아 죽은 목이라도 베는 것이었다. 원균은 그 어두운 밤에 적병의 시체를 찾아 머리 백여 급을 베어 소금에 절였는데, 이 행동은 싸움이 끝나거든 이순신장군 모르게 조정에 공을 보고하자는 비열한 짓이었으며, 이런 것을 조정에서 모르니 원균을 장군감으로 알고 칭찬하여 천거하는 서인들 중에 이항복 같은 무리가 있었다.”

“네, 장군은 이 밤에도 갑옷을 벗지 아니하고 북을 베게하고 누웠더니 창망한 달이 캄캄한 하늘에 기러기와 물새 떼가 높이 떠서 울고 날아온다. 초8일 밤 달은 서산 구름 속에 걸렸다. 장군은 돌연 일어나 뇌고취타를 명하여 잠들었던 제장들을 불러들여 적이 본래부터 속이는 것이 많고, 오늘의 패전을 복수하려 하여 아군의 피곤하고 잠든 때를 타고 야습을 할 것 같으니 미리 준비하여 곧 응전하게 하라고 단단히 타일러 경계태세를 강화하였습니다.”

“음! 그러기를 달은 서산에 걸렸는데, 과연 무수한 적선이 산 밑 검은 그림자 속에서 엄습하여 오는 것을 보고, 삼도 병선이 포를 쏘고 소리 지르며 일제히 달려드니, 적은 크게 놀라 낭패하여 급히 뱃머리를 돌려 안골포를 향하여 달아나는 것을 보고, 장군은 약간 진격시켰다가 군을 거두니, 삼도 제장들은 장군에게 귀신같다 하여 그 먼저 아는 이유를 물었다.”

“네, 장군은 밝게 웃으며 이것 어렵지 않소. 내 한 번 시험해 본 것이 우연히 맞아 떨어졌음이라고 하며 고시 한 수를 읊습니다.”

 

월흑안비고月黑鴈飛高하니, 단우야둔도單于夜遁逃라.

욕장경기탁欲將輕騎涿하니, 대설만궁도大雪滿弓刀라.

 

어두운 달밤에 기러기 높이 나니 선우가 밤을 타서 도망가는구나

날쌘 기병으로 뒤쫓으려 하니 많은 눈이 활과 칼에 가득하도다.

 

“음! 이 시는 당나라 시를 인용하였다. 원래 밤에는 기러기가 높이 뜨는 일이 없건마는 오늘 밤에는 기러기와 물새들이 높이 떠 날아오니, 정녕코 적선이 엄습하여 오므로 물새들이 놀래 날아오는 것이니,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자가 이러한 것을 놓치면 안 된다고 설명하니, 제장들은 탄복하여 이로부터 이순신장군을 신으로 알고 숭배하기를 한층 더 간절하였다.”

“네, 판서 신헌이 말하기를 월흑안비고月黑鴈飛高 단간야둔도單于夜遁逃는 또한 공의 뜻을 나타낸 것이라 하고 또 말하길 독룡장처수편청毒龍藏處水偏淸(독룡이 숨어 있는 곳은 물이 지나치게 맑다.) 벌목정정산갱유伐木丁丁山更幽(쩡쩡 나무 베는 소리 산 더욱 그윽하다.)도 세상에 전하길 장군의 실제 행적이라 한즉 장군의 시학은 역시 병가의 비책일새 특별히 겉으로 드러내 운운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음! 장군은 그 뒤 늦가을을 맞아 그 시운을 답하여 시 한수를 지어 답답하고 근심스러운 심정을 펴니 그 시는 이러하다.”

 

수국추광막水國秋光幕 경한안진고驚寒鴈陣高

우심전전야憂心輾轉夜 잔월조궁도殘月照弓刀

 

바다에 가을 빛 저무는데 찬바람에 놀라 기러기는 높이 나네

시름겨워 잠 못 드는 밤 새벽달만 활과 칼을 비추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