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스 켄트(Jess Kent)의 발랄한 오프닝이 끝났다. 어두워진 무대에선 악기 조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팬들 설레는 마음이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몇분이 흘렀을까. 약간의 기다림 끝에 콜드플레이가 등장했다. 그다음은 그야말로 휘몰아쳤다. 2시간가량 이어진 공연이 시작 전 그 잠깐보다 짧았다.

콜드플레이 팬은 아니다. 그럼에도 전주 3초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명곡이 수두룩했다. ‘Viva La Vida’부터 ‘Fix You’까지. 크리스 마틴을 중심으로 멤버들이 넘치는 에너지로 무대를 장악했다.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을 빼곡하게 채운 관객들은 떼창으로 그 에너지를 증폭해 ‘미러링’했다. 입장할 때 나눠준 LED 팔찌는 소리와 빛의 하모니를 연출하며 벅찬 감정을 더했다.

지난 15~16일 열린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 콘서트 현장이다. 데뷔 후 19년 만에 첫 내한 공연이었다. 너무나도 늦은 내한이었기 때문일까. 예매부터 전쟁이었다. 현대카드에 따르면 예매 사이트 동시 접속자가 90만명에 달했다. 9만석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야, 이거 돈 되겠는데?’ 속사정이야 잘 모르겠지만 흥행 이벤트인 건 분명해보였다.

한국에 콜드플레이 팬이 이렇게 많다니. 숨돌리고 생각해보니 다들 팬이었던 건 아닌 듯싶다. 나조차도 팬이 아니면서 누군가의 자릴 빼앗고(!) 그 현장에 있지 않았나. 가서 흠뻑 빠져있다 왔다는 건 팩트다. 10만원 돈을 티켓 값으로 지불했는데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비록 그 돈이면 아메리카노 수십잔을 사마실 수 있다 하더라도.

가치소비다. 돈만 낸다고 해서 언제든 쉽게 할 순 없는 경험 아닌가. 아마도 ‘쉽게 할 수 없는 구경’이란 생각이 팬 아닌 사람도 공연장으로 이끌었을 거다. 이젠 팬은 아니었지만 팬이 될 순 있겠단 생각이 든다. 몰랐던 멤버들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게 된다. 오늘 출근길엔 지니뮤직 플레이리스트에 콜드플레이 노래를 가득 담아 들었다. 비싼 경험을 잊지 않으려는 발버둥일지도 모르겠다.

난 콜드플레이를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철저히 유저이며 팬이고, 소비자이며 수용자다. 정신 차리고 기자라는 처지로 돌아온다. 콘텐츠 제작자라는 측면에서는 콜드플레이와 다를 바 없다. 음악이든 기사든 결국엔 콘텐츠니까. 이 관점에서 보니 콜드플레이가 달리 보인다. 무엇이 그토록 사람들을 열광케 하는가. 내가 본 낯선 광경을 자꾸만 톺아보게 된다.

▲ 지난 16일 콜드플레이 콘서트가 열린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엔 4만5000명이 운집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콜드플레이는 하나의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독보적 브랜드다. 독보적 콘텐츠를 생산하는 독보적 브랜드. 19년동안 숙성된 그들만의 세계는 작정하고 흉내낸다고 해서 따라할 수 없는 차원이다. 우스운 모창 정도야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독보적’이란 말을 쓰고 보니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뉴욕타임스의 새로운 혁신 보고서 제목이 ‘독보적 저널리즘’ 아니었나. 어째 맥락이 크게 달라보이진 않는다. 이런 보고서가 나온다는 건 독보적 저널리즘이 충분히 실현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거다.

이게 추구해야 할 방향이 맞다면 그다음은 방법론이다. 다양할 수 있다. 자기들만의 탤런트를 폭발시킨 게 세상엔 콜드플레이 말고도 무수히 많지 않은가. 적어도 딱 그 숫자만큼은 뾰족한 방법이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