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덕후’가 들려주는 포켓몬 이야기. 포덕노트 3화.

나는 그리 부지런한 트레이너는 아니었다. 그저 외출을 안하던 인도어(indoor)파의 외출 빈도가 늘어났고, 간간히 외출을 할 때마다 편의점 근처를 서성거리며 굳이 평소와는 다른 길을 보다 많이 걷게 됐을 뿐이다. 걸으며 머릿속에는 거의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일본여행이라 쓰고 포켓몬센터라고 읽는 여정을 말이다.

2015년 7월 휴가를 몰아써서 다녀온 나의 첫 일본여행은 만족 반 아쉬움 반이었다. 리아코 인형이라든가 치코리타 인형이라든가 ‘포켓몬 타임(Poketmon Time)’ 이브이 시리즈라던가 그 때 사지 못했던 인형들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면 10개도 채 안나오는 검색량과 3배 이상 오른 가격에 가슴이 먹먹하고 손발이 저릿하고 전두엽이 아려오는 듯한 슬픈 기분이 된다.

▲ 니트남이 소유 중인 포켓몬 굿즈들. 출처=니트남

지금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는 사이에도 인형 재고가 떨어지면 어쩌나 싶어 하루에 몇 번씩 ‘오사카 포켓몬 센터’, ‘오사카 메타몽’ 등등의 검색어로 네이버 블로그와 네이버 이미지를 이잡듯이 뒤져댔다. 그러다 비교적 최근 날짜 포스팅이나 사진에 내가 원하는 상품이나 시리즈 중 하나가 찍혀있음을 발견하면,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닌텐도를 꺼내들고 ‘포켓몬 문’을 실행해 부질없고도 공허한 알까기의 고행길을 걷는 것이다. 이 이상은 어차피 생각해봐야 소용없다며 마지막으로 짠 견적(입출국, 숙소, 식비, 기타 쇼핑비를 제외한)에는 대충 4만엔(약 40만원)이라는 액수의 금액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모자란다고!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왔다!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에는 결심한 것이다. 비록 근미래의 빈곤함이 나를 괴롭게 할지언정, 돈이 부족해 미련을 남기지는 말자! 질러라, 일단 지르는 것이다! 일본 포켓몬센터 홈페이지에 들락날락하며 몇날 며칠 동안을 구매리스트 작성에 공을 들였다. ‘악의단원 피카츄 시리즈’ 뽑기는 로켓단 피카츄만 뽑으면 되는데…. ‘대타출동’뽑기에는 얼마정도 쓰게 되려나? 모찌후와 야돈은 있겠지? 메타몽 변신 이브이 시리즈는 4개를 살까 6개를 살까? 행복하면서도 불안한 고민의 날이 계속 됐다.

▲ 그림=니트남

없다, 없다, 없다, 없다, 없다, 없다! 엉덩이가 빵실하고 팔다리가 오동통한 야돈인형이 없고, 변신에 실패해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는 변신 메타몽 이브이 시리즈도 없고, 언제나 포켓몬 대신 뚜들겨 맞는 극한직업 대타출동 인형도 없고, 슈퍼볼·하이퍼볼·마스터볼 인형도 없었다! 계획했던 구매 리스트 중에 반 이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2015년에 갔을 때보다 규모가 줄어든 것 같았다.

와이파이와 구글갓의 가호로 여행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두 번째 여행이다보니 아무래도 멍때리는 일이 없어진 덕이다. 난생처음 먹어본 연어알과 성게초밥은 어쩜 그리 맛있던지! 군것질과 식사를 틈틈이 누리며, 마침내 오사카 우메다역 다이마루 백화점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13층을 누르는 내 표정은 아마 월급날을 앞둔 지름신과도 같았을 거다. 문이 열리고, 가벼운 발걸음은 원스텝 투스텝 빠르게 나아갔다. 잠시 후 알게 될 비극도 모른체….

분명 이쯤에는 ‘몬코레’(피규어의 일종으로 몬스터콜렉션의 줄임말)가 한가득 진열된 벽이 있었던 것 같은데… 분명 이쯤에는 진열대에 이브이 인형이 있었는데…. 실제로 규모가 축소된건지 아닌지 진실은 아직도 모르겠으나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태풍주의보가 반기는 해수욕장을 마주한 불쌍한 휴가인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함께왔던 일행을 방치한 채로, 포켓몬센터를 돌고돌고 또 돌았다. 분명 내가 잘못본거야, 내가 못본 것이 있을테야, 기다리고 있으면 금방 재고가 채워질거야. 어리둥절 빙글빙글 매장을 30분 가량 해매고 나서야 체념할 수 있었다.

덴덴타운에는 혹시나 있을까…. 다음날의 일정에는 부디 건질 것이 있기를 바라는 것 외에는 남은 게 없었다. 어딘가 허전한 바구니에는 2만엔 어치의 인형과 물품들이 담겨 있었다. 거기에는 원래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돈이 넉넉하다 싶으면 사자고 생각했던 ‘포켓몬GO 플러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2017년 2월. 나의 두 번째 포켓몬 여행은 아쉬움 반 참담한 반으로 마무리한다.

▲ 니트남이 소유 중인 집념의 악의단원 피카츄 컬렉션. 출처=니트남

여담으로, 계산대를 나와 삭히지 못한 분을 어찌해야 할까 싶었던 차에 ‘악의단원 피카츄’ 뽑기를 발견한 나는 ‘로켓단 피카츄’만 뽑으려는 처음계획 따위는 엿이나 먹으라지, 라는 마음으로 약 13번의 시도(1회당 300엔)를 통하여 7마리의 피카츄를 모두 모으는데에 성공하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