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서 출발해 어느덧 중견기업 수준의 규모로 발전한 기업들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옐로모바일과 쿠팡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기업가치 6470억달러에 이르는 소위 유니콘 기업 중 국내 기업은 CJ게임즈와 함께 쿠팡과 옐로모바일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으며, 최근 실적을 발표한 배달의민족은 배달앱 업계의 지배권을 강화하며 지난해 영업이익 25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들 대부분이 O2O의 방향성을 지향하는 상황에서(옐로모바일은 느낌이 다소 다르지만) 업계의 기대감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나아가 티몬과 위메프를 비롯한 소셜커머스 회사와 배달의민족과 경쟁하고 있는 배달통-요기요 연합군도 서서히 몸집을 불리며 나름의 존재감을 가다듬고 있다.

하지만 묘한 지점도 보인다. 옐로모바일과 쿠팡, 배달의민족 등이 보여주는 성장세는 탄탄한 편이지만 비즈니스 모델적 측면에서 '속도가 느리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기대했던 수익이 예상만큼 나지 않으며 일각에서는 지지부진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 옐로모바일 실적. 출처=옐로모바일

느리게 가도...
옐로모바일이 지난 14일 지난해 실적을 발표했다. 지난달 31일 공시 마감일을 지키지 못해 숱한 루머가 돌았던 상황에서, 거의 보름이나 지각하며 지난해 실적을 공개해 눈길을 끈다. 대우조선해양 사건 등에 휘말린 외부감사인인 안진에 문제가 있었고, 정확한 인수합병 회계처리를 위해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지각했다는 설명이지만 금융감독원에 경위서까지 제출하며 실적 발표를 늦춘 것은 의미심장하다는 후문이다.

옐로모바일의 지난해 매출액은 4428억원, 영업손실은 280억원으로 나왔다. 매출은 전년보다 41% 늘어났고 영업손실은 전년 대비 41% 감소했다는 설명이다. 추가 인수합병이 없었고 핵심 사업 집중 차원에서 14개 계열사가 분리됐음에도, 매출은 전년도에 이어 지속적으로 성장한 점을 강조해 관심을 모은다. 5개 사업부문의 연간 매출은 쇼핑 부문 870억원, 미디어 부문 89억원, 디지털마케팅 부문 1202억원, 여행 부문 435억원, O2O 부문 1874억원 등이다.

매출은 올랐으나 영업손실은 그대로다. 상장을 앞두고 흑자를 장담했으나 영업손실을 줄이는 선에 머물렀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에 옐로모바일은 "광고선전비 430억원, 무형자산 상각비 126억원, 주식보상비 65억원과 IPO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들이 영업손실에 영향을 미쳤다"며 "회계고도화 전략을 채택해 매출 집계 방식을 발생 기준으로 전환했고, 광고와 쇼핑 분야 확장과 국내외 시장 선점을 위해 선제적 개발 및 투자를 진행했으며 지난해 경영효율화를 위해 진행된 구조조정 비용 등도 영업손실에 반영됐다"고 전했다.

또 당기순손실은 영업권 감액 등 일회성 영업 외 비용이 대폭 반영되면서 1424억원 발생했으며 이번 결산에선 영업권 632억원을 일시 반영함으로써 회계상의 잔여 영업권 부담을 경감시켰다고 설명했다. 정리하자면 영업손실의 폭을 크게 줄였으며, 이 과정에서 마이너스 요인들을 대거 털어내 몸을 가볍게 만들었다는 해명이다.

여기서 쿠팡을 보자. 쿠팡은 지난해 매출 1조9000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73%의 성장을 기록했고, 영업손실은 5600억원으로 나왔다. 총 누적적자는 약 1조2600억원이다. 일단 소프트뱅크의 투자금은 거의 소진되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양 사의 상황을 보면 현금 유동성 측면에서 상당한 리스크가 보인다. 옐로모바일의 경우 영업적자를 크게 줄였다고 하지만 장담했던 흑자는 요원해 보이며, 쿠팡의 영업손실은 지난해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철저하게 돈의 흐름적 시각으로 보면 양 기업은 냉정하게 말해 무너지고 있는 기업이다.

하지만 업계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일단 쿠팡의 경우 아직까지는 영업적자를 '투자'의 개념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해까지 73만m²의 물류인프라를 구축했고, 쿠팡맨 배송지역을 85%로 확대하는 등 전사적인 투자를 통해 미래가치를 잡아내고 있다는 주장이다. 쿠팡 스스로도 "매출이 증가하며 손실비율은 지난해와 비교해 40% 감소했다"며 "멀리 보고 대담하게 투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쿠팡 물류센터. 출처=쿠팡

물론 이러한 투자 전략이 장기간 실적부진에 시달리다 최근 급부상한 미국 아마존의 궤적을 완벽하게 재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마존은 거대한 시장에서 혼자 독주했으나 쿠팡은 오픈마켓으로 변신하며 스스로 기존의 강자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다만 최소한 업계에서는 쿠팡의 손실은 곧 손실이 아닌 투자, 나아가 미래 가치 전략이라는 주장이 많이 나오는 중이다.

반면 옐로모바일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상장을 앞둔 상태에서 흑자를 공언했으나 실패한 것은 차치한다고 해도, 영업손실을 줄여도 그러한 현재의 ''타격'이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논리로 전개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옐로모바일의 가치인 각 사의 시너지 효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쿠팡의 경우 오프라인 거점 확보를 통해 미래 가치의 단서를 일부 보여줬으나 옐로모바일은 선명한 존재감이 없다는 뜻이다.

옐로모바일 자회사 첫 이탈 사례인 퍼플프렌즈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0월 옐로모바일은 퍼플프렌즈의 지분 80.1%를 매각했으며, 이수형 퍼플프렌즈 대표가 사재를 출연해 지분을 되산 것으로 확인된다. 퍼플프렌즈가 지속적으로 적자를 기록해 옐로모바일 전체의 재무상황에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이수형 대표가 책임경영의 측면에서 행동에 나섰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많은 자회사들이 모두 수익을 내고 튼튼한 실적을 낼 수 없기 때문에 퍼플프렌즈와 같은 사례가 특별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러한 상황은 옐로모바일 내부의 시너지 강화를 매개로 연결되어 있던 각각의 자회사들이 모두 '뜻대로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최초 옐로모바일은 출범 당시 '자회사 이탈은 없다'는 것을 내세운 바 있다. 결국 시너지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말을 바꾸는 것을 감수하고' 극단적 결단을 내린 배경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여기에 꾸준히 나오고 있는 피키캐스트 수익성 문제 및 자회사 결합 가능성 등도 마찬가지다. 옐로모바일은 '무언가 있다'는 것은 보여줬으나 '자회사 연합의 확실한 시너지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아직도 답을 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배달의민족은 다른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0일 금융감독원을 통해 공시된 (주)우아한형제들의 2016 회계연도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배달의민족은 작년 한 해 848억5026만원의 매출과 24억6001만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다만 2.89%에 불과한 영업이익률은 다소 아쉽다. 매출 성장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아직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배달의민족은 쿠팡과 옐로모바일의 상황보다 상대적으로 준수하다. 상황이 어떻든 흑자를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낮은 영업이익률은 분명 숙제로 여겨지고 있다.

▲ 배달의민족 실적 취합. 출처=배달의민족

느리게 가도 좋아?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쿠팡과 옐로모바일은 적자로 허덕이고 있다. 배달의민족은 흑자를 냈지만 낮은 영업이익률이라는 심각한 숙제를 받아들었다. 이 지점에서 해당 기업들이 말하는 공통된 교집합이 있다. 바로 '느리게, 그리고 착실하게 가며 중장기 비전을 노린다'는 말.

만약 생각대로 흘러간다면 지금의 부진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느리게 착실하게 가면서도 중장기 비전을 노리지 못하는 상황이 닥쳤을 경우다. '그렇지 않다'는 항변을 하려면 최소한 근거를 대야 한다. 이 대목에서 쿠팡은 물류거점 확보 및 소셜커머스에서 오픈마켓으로의 변신, 나아가 데이터 등을 활용한 사용자 경험을 강조하고 있으며 배달의민족은 푸드테크 기업으로의 방향성을 말한다.

문제는 옐로모바일의 경우다. 영업손실을 줄이기는 했으나 현재의 인프라가 미래의 비전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는 확실한 시그널이 감지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옐로모바일에 대한 오래된 비판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비판 이상의 가치를 보여줄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다. 지금의 부진은 아무것도 아니며, 미래를 노리고 있다는 말을 하려면 최소한 미래 가치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보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부진하면서 앞으로도 부진할 것 같은데 미래 가치를 노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표현해 말장난이다.

▲ 출처=배달의민족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스타트업 업계 전반으로 시선을 넓혀보면, 이제는 무한경쟁시대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부동산 앱 다방과 직방은 지금도 날을 세우며 이름가지고 싸우고 있으며, 숙박 O2O의 양대산맥인 야놀자와 여기어때는 각각 성매매 논란과 개인정보 탈취라는 악재와 싸우고 있다.

그러나 다방과 직방, 야놀자와 여기어때의 경우는 양반이다. 배달앱의 경우 배달의민족, 배달통, 요기요 등이 3강 체제를 만들고 있으나 카카오가 진입하고 있으며 우버이츠가 시동을 걸고 있다. 모바일 혁명을 바탕으로 시장이 형성되고 스타트업이 빠르게 치고 나오는 상황에서 강력한 플랫폼 사업자들이 기존 생태계를 움직여 신진 플레이어를 뒤흔드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결국 경쟁 상대가 다변화되고, 이제 하나의 방식으로는 길을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무역협회가 유니콘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의 비결로 융합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역으로 다양한 플레이어의 시장 교란을 말하는 것이며, 경쟁의 치열함이 모든 상상가능한 영역에서 벌어진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그래서 옐로모바일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시너지 창출이라는 모호하고 단편적인 이슈에 집중하지 말고 차라리 융합, 통섭에 가까운 새로운 형태의 대단위 플랫폼 서비스라도 보여줘야 하며 이를 통한 강력한 생태계 전략을 옐로모바일의 손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쿠팡과 배달의민족도 여기에 안주하면 끝이라는 절박함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쿠팡의 경우 대규모 영업손실은 '끝'으로 가는 시한폭탄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오픈마켓으로 진격한 타당한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아마존 이야기만 하면서 세상이 스스로를 아마존으로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서비스 기업이냐, 물류 기업이냐의 질문에서 모호한 줄타기라도 해야 한다. 배달의민족도 푸드테크의 방식으로 물류 방법론까지 빠르게 장악해 새로운 플레이어의 공격에도 견딜 수 있는 내구도와 확장성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모든 스타트업이 마찬가지다. 돈줄이 서서히 말라가고 대기업의 횡포가 국정농단 사건의 종결 수순으로 여전히 이어질 것이라는 악재를 직면하면서, "와 새롭네"를 넘어 "이거 다른 사업자가 금방 따라하지는 못하겠네"로 나가야 한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부족이 아쉬운 이유이자, 지금의 경쟁이 잔인한 이유다. 그럼에도 감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