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딸 아이가 교통사고가 나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수술비가 없습니다. 직장은 다니고 있는데 어떻게 대출할 수 있을까요?" A 씨는 은행 창구 앞에서 초조하고 절박했다. 그는 다섯 식구의 가장이다.

"신용등급이 7등급이군요. 특별한 재산은 없으시네요. 예전에 카드론 대출도 받으시고 연체내역도 한 번 있어서 대출이 어렵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대출직원의 말은 기계적이고 차갑다. 대출직원은 그의 사정이 딱하지만, 대출을 해준 후 원금이 회수 되지 않아 문책 받는 것이 걱정됐다.

▲ <서민금융연구포럼의 패널들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대표(패널)는 말한다.

"신용등급이 높은 사람이 돈이 필요합니까? 이런 사람들은 대출받지 않아도 잘 살아요. 그런데 서민금융 대출조건은 이런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금융이 절실히 필요한 신용등급 6등급 이하의 사람들은 접근이 어렵죠. 이런 점에서 정부의 서민금융정책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는 12일 열린 제1차 서민금융연구포럼에서 정부의 서민금융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패널로 참석한 조 대표는 "국민은행과 농협은 서민금융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귀족 금융화했다"며"은행이 성장하면 서민금융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는다. 이런 환경이 정부정책의 실패 원인"라고 지적했다. 

이날 포럼은 ‘새 정부에 바라는 서민금융 정책방향’이라는 주제로 서민금융정책의 문제점과 개선점이 논의됐다.

이 자리에서 장상훈 금융감독원 서민금융지원실장은 "서민금융을 위해 설립한 상호금융이 제도권 금융을 따라간다”며 "조속히 서민금융의 전담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장 실장은 금융회사나 일선 창구직원이 원금손실의 위험성 때문에 서민금융지원자금을 적극적으로 운용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금융 관료사회도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서민에게 자금지원을 해주는 공공기관 직원들이 문책성이 인사가 두려워 적극적 지원을 망설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적극적인 서민금융정책에 대해 발생하는 손실은 관대하게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며"우리 사회가 서민금융에 대해서 너그럽게 용인하는 분위기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서민에 맞는 신용평가제도 없다

새 정부를 향해서 구체적인 정책목표가 있어야 된다는 주장도 있다.

박창균 중앙대교수(패널)는 "정부가 서민금융에 대해 정책목표가 뚜렷하지 않아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서민금융에 대한 정부정책이 너무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서민금융정책이 너무 많아 어떤 정책이 효율적인지 비효율적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을 제기했다. 여기에 너무 많은 규제가 실무 현장에서 대출규제로 이어져 서민금융정책의 실효성이 의심된다고 역설했다. 정부의 지나친 간섭이 대출을 옥죄고 실무자에게 책임을 묻는 구조라는 것.

아울러, 그는 신용등급을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기계적 대출심사가 합당한 것인지도 따졌다. 신용등급이 10등급인 사람도 다양한 기준과 상황을 고려하여 대출이 가능한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러한 사람들이 도저히 상환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무리하게 금융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복지의 영역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박 교수는 주장했다.

이같은 박교수의 견해에 대해 정영석 유안타저축은행 대표도 동조했다. 그는 더 나아가 서민금융이 필요한 6등급 이하의 사람들의 정보를 보다 효율적으로 공급자에게 제공하는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중 금융공급자들이 대출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면서 자금을 풀려고 하는데도 고객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대출이 원활하지 않다”며“만성적인 초과수요가 있지만, 차입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해 고객모집비용 등이 지출된다. 이 비용이 고스란히 이자율에 반영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포럼에는 정인환 한국대부금융협회 전무가 참석, 대부업계의 입장을 전했다.

정 전무는 대부업체가 가지고 있는 서민금융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업체의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대부업'이라는 명칭에서 부정적인 선입관이 생기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현행 대부업법은 등록 사금융업체에 대해 '대부'라는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근 대부업계가 금감원의 채권추심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등 이미지 개선에 많은 애를 쓰고 있다는게 그의 설명. 

그는 대부업계의 애로사항도 토로했다. 정 전무는"법정최고금리는 계속 인하됐는데 자금조달 규제는 점점 늘어난다"며"대부업의 자금조달 규제가 조금 완화된다면 서민에 대한 자금지원이 저리로 이루어지지 않겠냐"고 대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각 패널의 의견에 대해 정부 측 패널로 참석한 최건호 서민금융진흥원 부원장은 "제기된 일련의 모든 의견을 수렴해 정책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과 취약계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서민금융에 대한 규제가 심하다는 박창균 교수의 의견에 대해 최 부원장은"정부가 큰 틀의 방향만 제시하고, 디테일한 문제는 민간에서 주도하도록 정책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답변했다.

▲ <조성목 서민금융연구포럼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포럼은 서민금융연구포럼이 주최했다. 조성목 서민금융포럼 회장은 인사말에서 "가계부채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소득이나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은 돈을 빌리기가 더욱 힘들어진다"며 "이럴 때일수록 이들을 조그만 도와주면 일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들이 급격한 정책변화로 서민들이 한순간에 금융의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