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년전 의료영리화를 막겠다던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의료계와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의료영리화법으로 평가받는 규제프리존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지난 10일 대한상공회의소를 방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 경제인들을 상대로 한 특별 강연에서 규제프리존법에 대해 “이 법을 민주당이 막고 있다”며 “다른 이유가 없다면 통과시키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1년전 의협대의원총회에선 “의료영리화는 막아야 한다”더니…

안철수 후보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해 의료계 관계자들 앞에서 밝혔던 입장과 분명히 상반된다.

안 후보는 작년 4월30일 양재동 더케이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의사협회 제68차 정기대의원총회에 참석해 정부와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표시한 바 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규제프리존법과 더불어 의료영리화법으로 불리며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는 법이다. 두 법 모두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다.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축사를 통해 “의료계가 반대하는 의료영리화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는 게 국민의당의 근간"이라며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으로 일하면서 국가가 권리행사만 하고 의무는 민간 분야에 다 떠넘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한 달 뒤인 5월30일 국민의당 장병완·김동철·김관영 의원은 이학재 바른정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규제프리존법) 발의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의료영리화’ 평가받는 규제프리존특별법이란?

규제프리존법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마다 지역전략산업을 지정해 관련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선 적극 추진하거나 찬성해왔으나 의료계와 시민단체에서는 강력 반발해왔다. 19대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으나 20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됐다.

규제프리존법이 의료영리화법으로 평가받는 대표적인 이유는 의료기관 부대사업과 관련한 조항 때문이다. 이 법 제43조는 ‘규제프리존 내 의료기관을 개설한 의료법인은 시·도의 조례로 정하는 부대사업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료법은 시행규칙에 의료법인이 할 수 있는 부대사업의 종류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규제프리존법은 특별법이기 때문에 일반법인 의료법보다 우선 적용돼 의료법 시행규칙에 나열된 부대사업 외 다른 사업도 의료법인이 영위할 수 있다.

시민단체 “기업실증특례 제도, 국민건강 위협할 것”

또 한 가지 강하게 비판받는 규제프리존법의 내용 중 하나는 ‘기업실증특례’라는 제도다. 규제프리존에서 지역전략산업 등을 추진하고자 하는 자는 안전성 등 일정 요건을 갖출 경우 시·도지사에게 기업실증특례 부여를 요청하고 기획재정부장관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검토 및 특별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기업실증특례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건강권실현을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기업실증특례제도의 안전성 문제를 지적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11일 성명서를 통해 “무엇보다 규제프리존법이 안전을 파괴하는 법인 이유는 기업실증특례라는 제도 때문”이라며 “기업이 상품으로 내놓을 제품의 안전을 판매자인 기업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허용한다. 제 2의 가습기살균제 재앙을 불러올 법”이라고 비난했다.

더불어민주당도 10일 논평을 통해 안철수 후보의 발언을 강하게 비판했다.

유은혜 문재인 후보 수석대변인은 “규제프리존법은 의료, 환경, 교육 등 분야에서 공공 목적의 규제를 대폭 풀어 시민의 생명과 안전, 공공성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며 “안 후보와 국민의당이 국정농단 핵심 세력이 밀실에서 만든 정경유착의 표본과 같은 법을 꼭 통과시키겠다고 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전했다.

규제프리존법에는 ‘규제프리존 지역추진단’을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박근혜 정권의 ‘창조경제혁신센터’이다. 창조경제 추진단 공동단장은 최순실게이트의 핵심이었던 차은택과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협회 ‘신중하게 접근’…의사출신 안 후보가 “설마”

규제프리존법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던 대한의사협회 내부에선 안철수 후보의 발언에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분위기다. 작년 의협 대의원총회에서 의료영리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던 안철수 후보가 의료영리화법으로 평가받는 규제프리존법에 찬성하겠느냐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같은 대학 의대를 졸업한 추무진 의협 회장과 동문이다. 안 후보는 의사출신이기 때문에 타 대선후보에 비해 보건의료정책에 이해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를 받아왔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현재 (안 후보의 발언과 관련해)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며 “안철수 후보의 발언이 당의 공약으로 나온 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봐야 정확한 입장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12일 열리는 상임위원회에서 이에 대해 논의할지 여부도 정확하지 않다”며 “다만 규제프리존법에 반대해왔던 의사협회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규제프리존법 '긍정'…안 후보 "의료영리화 찬성한 것 아니다"

국민의당은 규제프리존법 내 보건의료와 관련한 조항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안철수 후보와 뜻을 같이 했다.

문제가 되는 의료기관의 부대사업 확장 조항이나 기업실증특례제도에 대해서도 부정하지 않았다.

정재철 국민의당 보건복지전문위원은 "(규제프리존법은) 성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법을 통해) 산업화하고 표준화하는 작업을 하다보면 산업으로 진출하는 관련 기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부대사업 확장 조항 및 기업실증특례제도의 문제제기와 관련해서는 "독소조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구체적인 입장을 밝힐 수는 없지만 만약 관련 조항에 문제가 있다면 국회에서 해결할 문제"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안철수 후보의 의료영리화 반대 입장은 여전하다고 밝혔다.

정 위원은 "규제프리존법을 시행한다고 해서 상업화가 촉진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의료영리화에 반대한다는 안 후보의 기존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