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 꿈꾸는 구본무 회장의 야망

LG그룹이 공격경영이란 ‘창’을 빼들었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3조5000억원의 연구·개발 투자를 포함해 11조3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한편 연간 6000여명에 달하는 신규인력을 채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LG그룹이 이처럼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는 배경에는 “글로벌 리더로 발돋움하려면 불황에 투자해야 한다”는 구본무 회장의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사상 초유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미래 투자’에 나서며 재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LG그룹의 저력과 구본무 회장의 경영관을 살펴본다.<편집자 주>

‘민첩한 추격자’에서 ‘글로벌 마켓 리더’로
불황에 공격경영 나선 LG그룹
지난 3월10일 아침 여의도 LG트윈타워 지하1층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LG그룹 임원회의. 초유의 경제위기를 의식해서였을까. 회의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구 회장의 굳어진 표정 때문인지 회의에 참석한 LG그룹 임원들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역력했다. 경제 상황에 대한 LG경제연구원의 보고에서 ‘역성장’, ‘대공황 보다 더 큰 위기’ 등 심각한 단어들이 열거되자 회의실을 가득 메운 300여명의 LG그룹 경영진들의 긴장감은 더욱 팽팽해졌다.

이 같은 긴장감 속에 이날 연단에 선 구본무 회장의 발언의 화두는 ‘미래투자’였다.
구 회장은 이날 그룹 임원진들에게 “불황을 극복하고 시장의 리더로 발돋움한 기업들의 공통점은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미래에 대한 투자’였다”며 “R&D, 마케팅 분야의 유능한 인력 확보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강조하는 한편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만의 차별화된 역량을 키워갈 수 있는 R&D투자는 줄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굳은 얼굴로 ‘미래에 대한 투자’를 언급하는 구 회장의 모습은 오랜 시간 동안 손발을 맞춰온 병사들과 함께 전장에 나서는 장수의 모습과 흡사했다.


창사 이래 최대 3조5000억원 R&D투자 단행

구본무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이 있은 다음날 LG그룹은 불황에도 불구하고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3조5000억원의 R&D투자를 포함해 11조3000억원의 투자를 단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구본무의 회장의 발언의 실체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날 LG그룹이 발표한 투자계획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선 우선 지난해(2조8000억원)보다 무려 25% 늘린 3조5000억원을 올해 연구개발에 배정했다.

LG그룹이 불황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의 R&D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배경에는 원천기술 확보에 대한 구본무 회장의 끝없는 열망이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R&D투자가 크게 늘어난 데는 “미래흐름을 선도할 수 있는 원천기술 확보에는 아무리 긴 시일이 소요되더라도 더욱 적극적으로 도전하겠다”는 구본무 회장의 의지가 담겨 있다.

3조5000억원에 달하는 R&D투자비의 사용처를 부문별로 살펴보면 우선 전자 부문에서는 작년 LG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LTE(Long Term Evolution, 롱텀에볼루션) 단말 모델칩을 기반으로 한 4세대 단말기를 비롯해 스마트폰 및 모바일 TV, 네트워크 TV 등 차세대 기술개발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며, 태양전지를 비롯해 시스템 에어컨, AM OLED, LED 등 저탄소 녹색성장을 이끌 친환경기술 개발에도 주력할 방침이다.

화학 부문에서는 하이브리드카 및 전기차용 배터리 기술 개발 등 미래 성장을 이끌 선행기술 확보와 더불어 향후 시장을 주도할 당뇨, 비만, 치매 등 삶의 질을 개선하는 ‘해피드러그(Happu Drug)’ 신약 개발에도 R&D투자를 집중할 계획이다.

또 통신·서비스 부문에서는 4세대 이동통신을 주도하기 위한 네트워크 고도화 기술 개발과 더불어 초고속인터넷·인터넷전화·방송이 결합된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 사업을 선도하기 위한 안정적인 품질 확보와 신규 서비스 개발에 주력할 방침이다.
한편 지난해(8조5000억원)에 비해 다소 줄어든 시설투자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차별화된 제품을 생산하고 시장을 주도하는 데 사용된다.

이와 관련 LG그룹 관계자는 “작년 대규모 프로젝트성 투자인 8세대 TFT-LCD의 주요 설비투자가 완료됨에 따라 올해 전체적인 시설투자 금액이 작년보다 감소하긴 했지만 각 계열사별로 미래 성장을 이끌 사업 육성을 위한 시설투자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며 “중소형 LCD용 LTPS(저온폴리실리콘) 생산라인, 2차 전지, 편광판,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해외자원개발 사업 등 향후 지속적인 고성장이 예상되는 분야의 생산라인 구축 및 설비 확장을 통해 시장을 선점할 것”이라고 밝혔다.

LG그룹의 시설투자 계획을 부문별로 살펴보면 우선 전자 부문에서는 LG디스플레이가 모바일용 LCD시장에서 프리미엄 제품 강화를 통한 고객 기반 확대를 위해 5700억여원을 들여 파주에 중소형 LCD용 LTPS 신규라인을 구축하는 것을 비롯해 현재 구축 중인 8세대 및 6세대 라인 확장 등에 올해 총 2조~2조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또 LG전자가 작년부터 투자를 진행해오고 있는 태양전지 생산라인 투자와 더불어 차세대 이동통신 등 기존 생산라인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시설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화학 부문에서는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전지 및 편광판 등 정보전자소재사업과 불임치료제, 서방형 인간성장 호르몬 등 전문 의약품 생산라인에 대한 설비투자를 전개할 계획이다.

통신·서비스 부문에서는 4세대 이동통신 및 초고속인터넷, 인터넷전화, 방송이 결합된 트리플플레이서비스 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한 기간망과 가입자망 등 네트워크 인프라 강화를 비롯해, 이동통신 부문의 무선 네트워크 확충 등에 투자를 집중할 계획이다.

또 LG상사가 카자흐스탄과 오만 등 기존 유전광구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면서 러시아 사하공화국 및 중국 내몽골, 인도네시아 등 신규 유망지역에서의 유전 및 석탄광구 등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대한 투자를 집중할 계획이다.

최악의 불황에도 매출 확대 ‘역발상’

LG그룹은 이 같은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지난해 115조원에 이어 사상 최대인 116조원의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경제위기를 오히려 글로벌 톱 브랜드로 성장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것이다.

전자 부문에서는 LG전자가 휴대폰·LCD TV·에어컨 등 주요 품목의 글로벌 점유율 확대를 통해 시장에서의 글로벌 지위 강화에 나설 방침이다.

LG전자는 이를 위해 휴대폰에서는 확고한 글로벌 3위 유지, LCD TV에서는 올해 50% 판매 신장 및 2010년 글로벌 2위 진입, 에어컨 분야에서는 가정용 에어컨 글로벌 1위 유지 및 상업용 에어컨 5년 내 1위 달성 등의 목표를 세웠다.

LG디스플레이도 노트북용 LCD 패널의 글로벌 1위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가운데 세계 최초로 개발한 잔상이 거의 없는 ‘480hz LCD 패널’과 시청하지 않을 때는 디지털 액자로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포토 TV’ 등 고객가치 기반의 혁신적인 제품으로 시장을 적극 공략할 방침이다.

또 필립스, 도시바, 비지오(Vizio), 파나소닉 등 글로벌 고객사들과의 더욱 긴밀한 협력관계 구축 및 신규거래선 확대를 통해 글로벌 소비침체 속에서도 판로를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화학 부문에서는 LG화학이 전기차용 및 하이브리드카용 배터리 등 신규 성장분야를 적극 공략하는 것과 동시에 중국을 제외한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국가 등 신흥 국가에서의 수출확대를 통해 성장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통신·서비스 부문에서는 LG텔레콤이 4세대(4G) 이동통신 주파수를 확보해 2013년부터 4세대 서비스를 시작, 시장 선점을 통해 가입자를 확보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LG데이콤과 LG파워콤은 초고속인터넷·인터넷전화·IPTV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에 주력해 올해 적어도 10% 이상 성장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불황 속에도 적극적인 투자를 펼치는 데에 대해 LG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Fast-Follower(민첩한 추격자)’에서 ‘글로벌 마켓 리더’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불황기에 투자하여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구본무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밝혔다.

과감한 미래 투자를 통해 ‘글로벌 리더’를 꿈꾸는 구본무 회장의 야망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주목된다.
이형구 기자 lhg0544@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