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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준의 ‘언 카메라’] 악마의 렌즈
이성준 사진 작가/강사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7.05.10  07:00:32
   
 

줌(Zoom)이란 단어는 통상 카메라 렌즈의 한 형태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오토바이나 차량이 움직일 때 나는 ‘부웅’ 하는 소리의 영어식 의성어다. 멀리 있어 작게 보였던 물체가 갑자기 망원경과 같이 가깝게 보이는 효과에다가 그 화면전환의 속도가 순식간이라 이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과거 필름이 아니면 사진을 찍을 수 없을 때도 집에 카메라 한 대 있는 것이 보기 드문 것은 아니었다(우리나라에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이 되어서다). 흔히 똑딱이 카메라라고 부르는 자동카메라(Point & Shot카메라) 하나 정도는 다 있어서 소풍이나 수학여행, 혹은 졸업식 때 쓰였다(그 외에는 주로 장롱 속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최초의 줌 렌즈는 이미 19세기에 개발되었지만 의미 있는 형태로는 Clile C. Allen이 설계한 것으로 1902년에 미국에 특허 등록했다. 

작은 자동카메라에는 줌렌즈가 흔했지만 렌즈를 교환해서 쓸 수 있는 일안반사식(SLR) 카메라는 50㎜, 35㎜, 105㎜ 등의 단초점렌즈를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본격적으로 사진에 입문하는 초보 사진가들은 SLR 바디 하나에 50㎜ 표준렌즈 하나로 시작하곤 했다. 그런데 디지털카메라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이제는 처음으로 사는 카메라가 필름이 아닌 디지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카메라의 변화는 내부 속 초점이 맺히는 면에 자리 잡았던 필름이 디지털 센서로 바뀐 것뿐 아니라 또 다른 광학적인 변화도 있다. 바로 대부분의 첫 카메라에 줌렌즈가 달려있다는 것이다.

단초점 렌즈와 줌렌즈의 차이는 초점거리 변환의 유무다. 단초점 렌즈는 초점거리가 고정돼 있다(우리 눈이 그렇듯이). 그래서 보이는 화각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화각은 임의로 조정할 수가 없다. 가령 화각을 좁혀서 저기 멀리 떨어져서 나무에 앉아 있는 새를 가까이 보려면 우리 눈의 수정체와 망막의 거리가 길게 조정이 돼야 하는데 그럴 수 없기에 망원경을 사용한다. 그렇게 도구를 사용하여 초점거리가 길어지면 보이는 화각은 좁아진다. 그렇게 좁은 화각에 꽉 찬 새가 우리 눈에 크게 보이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보통 화면을 ‘당긴다’라고 부른다. 반면에 줌렌즈는 초점거리를 렌즈 경통 안에서 유리 렌즈들이 움직이며 초점거리를 바꿀 수 있다.

처음 큰 마음을 먹고 DSLR 카메라를 사는 초보자용 카메라 세트는 줌렌즈로 구성돼 있는 경우가 많다. 혹은 보다 작은 ‘디카’를 사게 되면 그것에도 이미 줌렌즈가 달려있다. 단초점 렌즈는 렌즈교환식 카메라를 사고 난 이후 추가로 구매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지금 처음 사진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매우 사진을 어렵게 배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로 화각이 변하는 줌렌즈로 사진을 처음 시작하기 때문이다.

   

보통 10배의 배율에 이르는 초점거리를 가진 이런 줌을 ‘슈퍼 줌’이라고 부른다. 여행지에서 렌즈를 교환하기 어려울 때 많이 쓰인다고 하지만 단 초점렌즈에 비해 화질이 떨어지고 또 무겁다. 물론 화질이 좋은 줌도 있다. 대신 비싸다. 사진=위키피디아

미국의 사진가이자 사진교육자인 필립 퍼키스(Philip Perkis)는 그의 책 <사진강의 노트>에서 “줌렌즈야말로 악마의 작품이다. 줌렌즈는 대상을 날카롭게 잡아내는 경우가 드물며, 더 중요한 이유는, 사진가의 진정한 ‘시각’을 구축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학 강단에서 오랜 시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또 사진가로서 그가 직접 경험한 것으로부터 그가 렌즈에 대해 내린 하나의 분명한 태도는 ‘줌렌즈를 멀리하라’라는 것이다.

이유는 우리 눈에는 줌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카메라는 줌이 되기 때문에 줌렌즈는 그것을 든 사진가에게 고성능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자리를 바꾸지 않아도 당겨서 보거나, 반대로 더 밀어내 넓게 볼 수 있다. 자유자재로, 또 시시각각 내 시각을 바꿀 수 있다. 시각을 바꾸는 것은 말하자면 내 시선을 바꾸는 것이다. 수시로 시선을 바꾸면서 필립 퍼키스의 표현대로 대상을 ‘날카롭게’ 볼 수 있을까.

카메라의 프레임은 기계적인 장치를 통한 것이다. 세상이 네모로 보이는 것도 그렇고 렌즈를 통해 화각이 수시로 변하는 것도 그렇다. 처음부터 빠르게 변하는 기계의 화각을 쫓아다닐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없다. 오랜 시간 동안 카메라 줌렌즈에 훈련이 돼있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줌렌즈를 든 사진가는 대상을 찍기 전에 머릿속으로 이 줌렌즈의 다양한 화각 가운데 몇 ㎜를 선택해야 하는지 빨리 판단해야 한다. 반면에 만일 단초점렌즈를 가진 사진가라면 그 시간에 대상에 보다 더 집중할 것이다. 보다 더 그 대상이 보여주는 빛과 그 대상과 나와의 교감에 집중할 것이다. 줌렌즈는 좋은 것이 아니라 단지 편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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