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르띠에 탱크를 착용하고 있는 앤디 워홀. 출처=까르띠에

당신이 앤디 워홀을 좋아하든 말든, 그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살아서 전설이 된 몇 안 되는 인물이었던 그는 라이프 스타일 또한 그의 작품만큼 독특했다. 화제의 인물에게는 으레 따라붙는 도시전설이 있기 마련. 그중엔 앤디 워홀에게 있어 시계란, 태엽을 감는 수고를 필요로 하는 지독하게 귀찮은 물건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실제로 지금까지 앤디 워홀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앤디 워홀의 시계에 대한 이야기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20세기의 아이콘에게 있어 시계란 그리 중요한 아이템이 아니었던 것일까. 

하지만, 진실은 소문과는 다른 법. 앤디 워홀이 죽고 난 다음 해인 1988년, 소더비 경매장에 앤디 워홀의 재산이 등장했다. 그리고 롤렉스를 시작으로 누구도 예상 못한 앤디 워홀의 시계 컬렉션이 세상에 하나씩 소개되기 시작했다. 파텍필립, 티파니, 롤렉스, 까르띠에, 피아제... 앤디 워홀은 지독한 시계 애호가였다.

▶ 지구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계 집결지 [타임피스 서울투베이징 홈페이지]

 

앤디 워홀이 가장 잘 하는 것

앤디 워홀은 영화, 광고, 디자인 등 시각예술 전반에서 빠지는 부분이 없는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가 중 하나다. 과열된 미술시장을 조롱하기도 하고, 명성의 덧없음을 역설하기도 하며 세계 미술사에 충격에 가까운 변화를 불러일으킨 이 인물은 1968년에는 급진적 페미니스트 작가인 발레리 솔라니스에게 2발의 총을 맞고 살아나기도 했으며, 1969년에는 미디어와 오락문화잡지 '인터뷰'를 창간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작품들만큼이나 그의 삶 또한 강렬한 흐름 속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 앤디 워홀의 대표작 마릴린먼로. 출처=위키백과

앤디 워홀의 가장 뛰어난 점을 꼽으라면 나는 ‘주제에 대한 발칙한 해석’이라고 이야기하겠다. 첫 주요 개인전에서 보인 캠벨 수프 깡통을 그린 회화나 지금도 유명한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는 주제가 갖고 있는 본래의 의미와는 다른 그만의 해석을 담고 있어 유명해진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가 주제를 해석하는 방식이 워낙 독특한데다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식 또한 강렬해 지금도 그의 작품을 보면 모두가 ‘앤디 워홀의 작품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 앤디 워홀이 착용했던 까르띠에 탱크. 출처=핀터레스트

앤디 워홀만의 의미 해석은 그의 시계에도 적용되었는데, 언젠가 앤디 워홀은 그가 가장 자주 착용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맞지 않는) 까르띠에 탱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간을 보기 위해 탱크를 차지 않는다. 사실, 나는 한 번도 와인딩을 한 적이 없다. 나는 탱크를 입는다. 왜냐면 그것은 입기 위한 시계이기 때문이다." 탱크에 대한 앤디 워홀의 이러한 해석은 시계가 시간을 보기 위한 유일한 물건이었던 시대를 산 사람의 생각이기에 더욱 놀라운 안목이다. 더욱이 21세기인 지금, 그의 말처럼 까르띠에 탱크는 쿼츠로 나온 까르띠에의 몇몇 컬렉션 중 하나이며 변함없이 남녀 모두의 패션을 완성시키며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여겨지고 있다. 여담으로, 그가 찼던 까르띠에 탱크는 1988년 소더비 경매에서 경매 추정치 1,500달러를 무려 5배를 웃도는 놀라운 가격인 10,625달러에 판매되었다.

 

시계 애호가 앤디 워홀

▲ 앤디 워홀의 롤렉스 Ref.4021. 뒷면에는 Russell R. Brown이라 새겨져 있다. 출처=호딩키

앤디 워홀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하드한 시계 애호가였다. 1988년 소더비 경매는 앤디 워홀의 롤렉스가 처음으로 등장한 곳이다. 로즈 골드에 세컨드 다이얼, 블루핸즈를 갖고 있는 Ref. 4021은 그 당시 기준으로 봐도 ‘레어한’ 모델이었다. 그러나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시계의 레어함이 아니라 뒷면에 있었다. 이 모델의 뒷면에는 'Russel R. Brown'이라 새겨져 있었다. 경매에 공식으로 나온 앤디 워홀의 시계인데 다른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니, 경매 도중 물건이 섞인 것이었을까? 당시 이 사실로 인해 작지만 소동이 일기도 했는데, 사실 진실은 아주 간단했다. 지금의 여느 시계 애호가들처럼 앤디 워홀이 Russel R. Brown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중고 시계를 구입했던 것이다.  

앤디 워홀의 시계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Christie's를 통해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수집한 앤디 워홀의 개인 컬렉션 중에는 브레게 누메랄의 파텍필립 Ref. 2526을 포함해 티파니의 각인이 새겨진 다이얼의 파텍필립 회중시계, 그리고 공식 석상에도 등장한 파텍필립의 Ref. 2503 등 이름만 들어도 마니아의 진한 향기가 풍기는 시계들이 있다.

▲ 앤디 워홀이 즐겨 사용하던 피아제의 사각 시계 링고(Lingot) 우리말로 금괴라는 뜻이다. 출처=피아제

그런가 하면 앤디 워홀은 피아제의 시계를 좋아하기도 했다. 쿼츠 무브먼트의 사각 시계는 워낙 유명한데다 링고(Lingot)라고 불리는 금색의 직사각형 탁상시계를 즐겨 사용했다.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앤디 워홀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시계들을 자신의 침대 위에 있는 캐노피에 보관했었다고 알려진다. 캐노피에 어떤 방식으로 시계를 보관했는지는 상상하기 쉬운 일은 아니나, 그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에 자신의 눈앞에 시계를 두고 싶어 했던 시계 애호가라는 점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잘 때 시계를 차고 자야 하나 풀어놓고 자야 하나를 고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앤디 워홀의 행동을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초월자의 30주년

앤디 워홀은 대부분의 시간을 뉴욕에 있는 비주얼아트와 팝아트 예술을 하는 스튜디오에서 보냈지만, 그가 스튜디오에 머물지 않던 시간에는 시계를 포함한 다양한 것들을 수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놀랍게도, 측근들에 따르면 앤디 워홀은 300점에 달하는 시계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중 다수가 굉장히 희귀한,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엄청난 가치의 파텍필립의 시계를 포함하고 있었다고 한다. 앤디 워홀의 재산관리인들이 이 이야기를 뒷받침해주는 증거물들을 –1988년 마지막 경매에 나온 스티커와 행택들, 그리고 파텍필립의 보관소에서 나온 기록물들- 내놓기도 했다. 때문에 마니악한 시계 애호가들은 앤디 워홀의 새로운 시계들이 경매에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 앤디 워홀이 착용했던 파텍필립 Ref.2503(좌), 파텍필립을 착용한 앤디 워홀. 출처=Christie's

2017년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앤디 워홀의 많은 시계 중 대부분은 경매에 나오지 않고 그가 자연스럽게 그랬던 것처럼 이 사람의 손에서 저 사람의 손으로 옮겨가며 빈티지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만약 경매에 숨겨진 파텍필립의 명작이라도 나온다면, 세계를 들썩일 시계 뉴스거리가 될 텐데 말이다.

앤디 워홀. 그는 팝아트 운동과 동의어라 불리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가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역사상 가장 매혹적이고 미스터리한 시계 애호가이지 않을까.

<참고문헌>

Christie's, unwound, The Andy Warhol Museum, Andy Warhol (Paperback)

 

▶ 다른 스타들의 시계 더 보기 [타임피스 서울투베이징 스타워치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