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기아자동차 양재동 사옥 전경 / 출처 = 현대자동차

중국의 ‘사드(THAAD) 보복’에 따른 후폭풍이 우리나라 주요 산업인 자동차 제조업을 덮쳤다. 현대·기아차의 지난달 중국 판매 실적이 반토막난 것.

현대차는 전년 같은기간 대비 44.3% 빠진 5만6026대, 기아차는 68% 떨어진 1만6006대의 자동차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고 지난 4일 밝혔다. 양사 합산 판매량인 7만2032대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52.2% 하락했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판매가 10만대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6년 2월(9만5235대) 이후 처음이다.

中 ‘사드 몽니’ 자동차 산업 직격탄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의 이같은 중국내 실적 악화는 사드 배치로 인해 현지에서 한국산 제품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 롯데를 필두로 영업에 큰 지장을 받고 있는 가운데 반한감정이 자동차에까지 번진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도 지난 2012년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영토 분쟁 당시 판매가 곤두박질친 바 있었다. 사드를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 사이에 난기류가 흐르기 시작한 시점 한 중국 네티즌이 현대차를 심하게 훼손한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길거리에 있는 일본차를 무자비하게 파손하던 과거 중국인들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는 셈이다.

여기에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영문판 사설을 통해 현대·기아차에 대한 불매운동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일부 폭스바겐 딜러와 현지 업체들은 ‘현대차 마케팅’까지 펼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 구매자가 이를 팔고 오면 추가 할인 혜택을 주는 것이 골자다. 한국차 구매 계약을 취소하고 오면 ‘애국선물’을 주는 경우도 있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중국 시장의 현황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 현대차의 중국 전략형 모델인 올 뉴 위에동 / 출처 = 현대자동차

현지 공장 ‘위기’···“4공장 막 돌아가는데”

사드 논쟁 이후 한달여간 판매가 갑자기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며 현지 생산공장의 타격도 불가피해졌다.

현대차는 이미 지난달 24일부터 4월 4일까지 허베이성 창저우에 위치한 ‘중국 4공장’의 가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한 바 있다. 2016년 10월 가동에 들어간 곳으로 연간 생산 능력은 30만대 수준이다. 현대차 측은 당시 라인 점검 등이 필요해 가동을 잠시 멈췄다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도 사드보복을 예상하긴 했지만 훨씬 빠른 속도로 영업에 타격을 입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4공장이 일주일가량 멈출 경우 가동분은 5000대에도 미치지 못한다. 북경현대가 매달 10만대 가까운 차량을 팔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다고 봤다”며 “실적이 절반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라고는 예상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영업 환경도 불확실 하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최근에는 현대차 베이징 공장도 당초 24시간 가동 체제에서 야간 조업을 멈추는 쪽으로 생산방식을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車와는 다르다” 앞길 불투명

지난달 판매 급감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경영환경이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중국은 현대·기아차의 핵심 시장으로 글로벌 판매량은 물론 실적까지 크게 좌우하는 곳이다. 지난해 기준 이들의 해외 판매 중 중국의 비중은 각각 23.5%, 21.5%다.

현대차의 3월 해외 시장 판매는 국내공장 수출 9만8272대, 해외공장 판매 24만3892대 등 34만2164대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8% 떨어진 것이다. 기아차 역시 국내 공장 9만7286대, 해외공장 9만3315대 등 12.5% 감소한 19만601대를 팔았다.

일본의 사례를 살펴볼 경우 영토 분쟁이 본격화했던 2012년 9월 도요타, 닛산, 혼다의 중국 현지 판매는 각각 38.4%, 43%, 40.5% 급감했었다. 다음달에도 감소세가 이어지다 11월 들어서야 전월대비 반등한 것으로 파악됐다. 평년 수준으로 판매가 돌아온 것은 6개월 후인 2013년 3월이었다.

정치적 이슈의 불똥이 산업계로 튀었다는 점, 분쟁이 아직 진행 중이지만 중국 내 정서가 안정됐다는 점 등은 한국의 현재 상황과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업계에서는 일본 브랜드의 사례와 단순 비교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2014년 기준 중국 내 판매 점유율 10%를 넘기는 ‘빅3’ 업체다. 그룹사 기준 폭스바겐, GM에 이어 3번째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일본 브랜드들의 경우 근대부터 이어온 뿌리 깊은 반일감정 탓에 중국에서 큰 존재감을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다. 합작사 설립에 대한 거부감으로 현대차그룹보다 현지 시장 진출이 늦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실제 도요타·닛산·혼다 3사의 중국 내 자동차 월간 판매는 영토 분쟁이 있기 전인 2011년 당시 20만대선에 채 미치지 못했다. 판매가 급감했던 2012년 10월의 경우 7만대 수준에 불과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 3사의 얘기가 자주 언급되곤 하는데, 로컬브랜드 약진 등 중국 내 시장 환경 등이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며 “과거 사례에 비춰 앞길을 예상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 기아차의 중국 전략형 모델인 KX7 / 출처 = 기아자동차

“결국 정치적 이슈···해법 있나”

결국 정치적 이슈가 해결되지 않는 한 마땅한 활로를 찾기도 힘든 셈이다. 전문가들은 재고물량 관리 등을 철저히 하며 힘든 시기를 보낸 뒤 향후 SUV 신차 등을 통해 계단을 다시 올라와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당장 중국에서의 불확실성만 제거하면 영업환경에는 다소 숨통이 트일 것으로 예측된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사건은) 현대·기아차가 아닌 정치적 문제”라며 “현대·기아차가 중국에서 전년 수준으로 실적을 냈다고 가정할 경우 글로벌 판매는 각각 4.1%, 3.7% 증가하게 된다”고 밝혔다.

신차 투입이 단기적으로 약효를 발휘하기는 힘들 것으로 분석된다. 베이징현대는 지난달 21일 중국 전용 모델 ‘올 뉴 위에동’을 선보였지만 ‘사드 보복’ 불똥으로 인해 신차효과가 전무했다.

위에동은 2008년 이후 133만여대가 출고되며 베이징현대 단일 차종 기준 최다 판매 기록을 지닌 인기 모델이다. 점유율 40%를 넘기고 있는 SUV 시장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에서 경쟁하는 차종이기도 하다.

기아차도 3월16일 현지에 전용 차종인 KX7을 내놨다. 기아차가 최초로 중국에 투입하는 쏘렌토급 SUV다.

2017년 3월 현대차의 중국 공장 모델별 출하 내용을 살펴보면 SUV 실적 하락세가 눈에 띄었다. 세단 판매가 약 4만4000대로 32% 빠질 동안 SUV는 약 1만2100대로 지난해 3월보다 67% 하락했다. 특히 가장 경쟁이 치열한 소형 SUV-준중형 SUV인 ix25(약 3800대), 투싼(약 7600대)의 실적이 전년 동월 대비 64%, 66% 떨어진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기아차 역시 세단(약 1만1700대) 성적이 59% 하락할 동안 SUV(약4300대)는 80% 빠졌다. 주력인 스포티지의 출고가 2600대로 절반 이상 줄었으며 KX3, KX7 등은 1000대도 팔지 못했다.

당장 사드사태 때문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SUV 라인업을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중국 정부가 NEV(New Energy Vehicle)의 의무생산 비중을 2018년 8%까지 맞출 것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및 전기차(EV) 차종의 도입 필요성도 언급된다. 현대차는 중국에서 아직 해당 라인업을 갖추지 않은 상태다. 배터리 업체에 대한 보복으로 최근 출시 예정이었던 쏘나타 PHEV의 도입 시기가 1년여 늦춰지는 등 경영 환경이 쉽지 않은 상태다.

현대차는 연내 중국에 밍투·쏘나타의 부분변경 모델과 ix25 부분변경, 전략형 SUV 모델 등을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ix25 등 소형 SUV라인업은 국내 출시를 앞둔 ‘코나’ 등과 플랫폼을 공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SUV 라인업 확장과 친환경차 투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사드배치에 따른 중국의 판매부진영향이 글로벌 총 판매대수 영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현대차의 내수 판매가 분기 성장하는 등 긍정·부정적 지표들이 혼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사드 보복 등 불확실 요소들은 현 주가에 기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차후 지표가 개선되는 부분에 집중해도 될 듯하다”고 분석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당장은 활로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충칭공장 10월 준공이 예정돼 있는데, 내부적으로 공장에 대한 물량 감산 등을 통해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야할 듯하다”며 “(이번 사건을) 향후 동남아 시장으로 수출 다변화 등을 고려해보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내 부진의 원인이 ‘사드 보복’ 때문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사드 보복의 영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 시장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현재 상당히 기형적인 구조로 흘러가고 있는데, 생산대수를 판매대수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부분 경쟁사가 재고 정리를 위해 높은 수준의 프로모션을 강행하고 있는데 반해 현대·기아차는 사드 이슈에 대한 대응 등으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선제적으로 재고 조정을 한 것 등은 긍정적인 지표일 수 있다”며 “현대·기아차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만큼 시장이 재고 조정 단계를 벗어난 이후 다음 국면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사드 보복’에 따른 실적 부진이 알려진 이후인 5일 오전 10시38분 기준 현대차 주가는 전일 대비 1.32% 떨어진 15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같은 시간 기아차는 전일보다 0.83% 빠진 3만6050원에 거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