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움직이는 첨단기술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보통 사람들은 전자공학이나 컴퓨터공학 또는 기계공학일 것이라고 답한다. 최근엔 생명공학일 것이라는 대답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인류 문명의 속살은 모두 소재(素材)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재의 물성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떤 과학기술도 실생활에서 활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상이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학적 문제들이 대부분 소재 물성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돌파해야 할 기술적 장애물들은 대부분 새로운 기능소재를 개발하지 않으면 넘어서기 힘들다고 말할 수 있다.

컴퓨터 속도를 지배해온 무어의 법칙이 실현된 배경은 집적회로 설계기술과 함께 다양한 반도체 소재 개발과 미세공정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아무리 발달해도 그 로직을 빠르게 처리해주는 반도체나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만약 좋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센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학습을 할 자료가 없고 쓸 만한 기계지능이 도출될 수도 없다. 전기자동차의 대중화는 배터리 소재기술의 발달에 달려있고, 자율자동차의 대중화는 고성능 센서 개발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 첨단 센서나 고효율 모터 소재가 없다면 고기능 로봇도 불가능해진다. 좋은 광학소재가 없다면 고속통신도 불가능하고 사물인터넷 세상이 전개되지 않는다. 소재기술은 물리, 화학, 생물의 기본 원리들이 교차하는 영역에서 꽃피운다. 실용기술은 시스템의 골격을 만들 수 있는 소재들을 채택해야만 가능해진다.

 

인류문명은 수많은 소재기술의 결정체이다

인류 역사에서 소재의 발전을 더듬어 보면 수많은 기술혁신들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다. 같은 재료라도 다른 용도의 소재로 활용하기 위해서 합금하거나 가공하면서 구조, 특성, 성능을 변화시켰다. 재료의 조성이나 가공에 따라서 변하는 기계적, 전기적, 자기적, 광학적, 양자적, 화학적 속성의 변화를 이해하게 되면서 전자, 통신, 의학, 운송, 제조, 레크리에이션, 에너지 및 환경 등 관련 산업에 적합한 인공소재를 개발해 왔다. 최근에는 분자나 원자 단위의 조작을 통해서 새로운 나노소재들을 개발해내고 있다. 재료개발 종사자들은 끊임없이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며 미래첨단산업에 필요한 소재물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최근 한 달 동안에 공표된 소재 관련 신기술들 중에서 눈에 띠는 사례를 모아봤다.

최근 차세대 태양광 소재로 주목받고 있는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는 금속, 유기물, 할로겐족(불소, 염소, 브롬 등)이 결합된 유기‧무기 하이브리드 결정구조를 가진다. 태양광 소재로 개발이 시작된 2009년에 광전변환 비율이 3.8%에 머물렀지만 지난 7년 동안 급격하게 성능이 향상되어 21.2%(울산과기대, 화학연구소) 수준에 이르렀다. 실용화를 위해서는 내열특성과 내습특성 등 아직 해결한 문제점들이 남아 있지만 유기물과 무기물이 녹아있는 용액에서 용매를 제거하면 쉽게 페로브스카이트 결정을 만들 수 있고, 특별한 열처리 과정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제조원가가 낮은 장점이 있다. 수년 내에 저가의 태양광 흡수 소재로 기존 실리콘 위에 코팅하여 광전효율을 높이거나, 건물 창유리 등에 투명하게 코팅하는 태양전지로 각광받을 수 있다. 기존의 실리콘 태양전지는 설치 공간의 제약을 받는 데 비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플렉시블한 폴리머 위에 박막 코팅을 입혀서 태양광 전지로 바꿔주는 마술을 펼칠 수 있는 소재이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에너지가 존재하고 있다. 햇빛, 방안의 열기, 체온, 그리고 몸을 움직이는 근육의 힘도 에너지이다. 이런 에너지들이 보통은 버려지고 있지만 잠재적으로는 센서부터 휴대형 손목시계에 이르기까지 소형 전자기기를 구동하는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다. 흔히 온도변화나 압력변화를 이용해서 에너지를 흡수하는 소재를 각기 열전소재와 압전소재라고 부른다. 핀란드의 오울루(Oulu) 대학교 연구진에 의하면 KBNNO라는 특정한 유형의 페로브스카이트는 강유전체(強誘電體, Ferroelectrics) 강유전체(強誘電體, Ferroelectrics)는 외부의 전기장 없이도 스스로 분극(자발 분극, Spontaneous Polarization, Ps)을 가지는 재료로서 외부 전기장에 의하여 분극의 방향이 바뀔 수(Switching) 있는 물질을 뜻한다. 주로 산화물이 많이 응용되고 있으며 페로브스카이트 구조를 갖는 BaTiO3가 가장 대표적인 재료이다.

소재로서 온도가 변하거나 압력이 변하면 전기가 흐르는 성질을 가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KBNNO 조성을 조절하면 페로브스카이트를 태양광 소재뿐만 아니라 열전 소재나 압전 소재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페로브스카이트의 이런 특성을 활용하면 날씨에 관계없이 전천후로 전력 소모가 많은 센서나 소형 휴대장치를 구동시킬 전기를 태양광이나 주변 온도변화 또는 압력변화를 이용해서 생산해낼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4진법 데이터 메모리는 불가능한가?

페로브스카이트는 빛이나 열을 받으면 전기를 생산하지만 반대로 전기가 흐르면 빛을 방출하는 조명 소재가 될 수도 있다. 미국 플로리다 FAMU-FSU 공과대학 샹챠오 린(Shangchao Lin) 교수는 유기‧무기 하이브리드 페로브스카이트가 태양전지 소재, 열전소재 그리고 LED 소재로 사용되는 기존의 실리콘이나 기타 무기물질들보다 기계적인 변형에 유연하다는 점을 이론적으로 계산해냈다. 페로브스카이트 결정이 변형을 받으면 비정질로 바뀌면서 파괴되지 않는 성질이 있다는 것을 린 교수는 계산으로 확인했다. 하이브리드 페로브스카이트는 기존의 열전재료인 비스무스 텔루라이드(Bi2Te3)보다 열전효율이 두 배나 높다. 반면 희토류 원소가 들어가지 않으므로 가격은 매우 저렴하다. 유연한 기판 위에 페로브스카이트 용액을 잉크로 삼아 코팅 인쇄한 후 용매를 제거하면 다양한 디자인의 LED 소재나 열전 소재가 될 수도 있다.

만약 두뇌의 시냅스 신호가 컴퓨터와 같이 ‘예’, ‘아니오’란 로직만 존재했다면 아마도 머릿속은 발열로 인해 다 녹아버렸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컴퓨터 정보처리는 ‘1’과 ‘0’만을 구분하는 2진법 방식이다. 트랜지스터 스위치를 ‘켜고’, ‘끄는’ 동작으로 구분해준다. 만약 세 가지나 네 가지 값을 구분해 주는 다중 값 논리를 이용할 수만 있다면 한 개의 스위치로 훨씬 더 많은 정보처리가 가능해진다. 이런 다단계 로직을 컴퓨터에 도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재료가 없기 때문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생물의 DNA가 있기는 하지만 읽고 쓰기 속도가 느려서 응용에 한계가 있다. 반도체처럼 순간적으로 스위치 작용을 하지 못한다. 만약 상온에서 여러 값들을 쉽게 읽고 쓰는 소재만 발명된다면 컴퓨터도 두뇌처럼 ‘예’, ‘아니오’뿐만 아니라 ‘아마도’라는 개념을 활용할 수 있게 되며 적은 에너지로 두뇌 비슷한 엄청난 정보처리가 가능해진다.

미국 아르곤연구소의 발렐리 비노카(Valerii Vinokur)는 외부에서 가해주는 전기장에 따라서 분극(Polarization)이 바뀌는 강유전체(強誘電體, Ferroelectrics) 소재라면 다중값 논리를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강유전체는 분극작용으로 물리적 상태가 변하므로 주로 전자회로에 사용되는 MLCC(다층세라믹축전지)를 비롯한 센서나 의료용 초음파장비 등에 사용된다. 비노카 연구팀은 강유전체 특성을 갖는 페로브스카이트 박막이 전기장 크기에 따라서 매우 안정된 네 가지 분극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계산으로 확인했다. 만약 각 분극상태를 구분해서 각기 다른 상태 값으로 지정해주면 4진법으로 데이터를 표현하는 로직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연구팀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전기장을 조절해서 각 분극값 사이를 이동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이것을 디바이스에 실현하면 3진법 또는 4진법을 적용한 메모리 저장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강유전체의 분극 성질을 이용한 다중값 컴퓨터 메모리의 등장이 가능해진다. 이 방법은 소위 인간의 두뇌를 모방하려는 뇌신경컴퓨터의 발전에도 의미 있는 힌트를 줄 수 있다. 물론 실험적으로 구현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저전력 플렉시블 인쇄전자 부품용 스위칭 기술

최근에 UC산타바바라 연구소 연구진은 폴리머 반도체의 스위치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폴리머 반도체를 디바이스에 적용하려면 반도체에 흐르는 전하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폴리머 합성을 통해 고속 고성능 반도체 물질을 개발했지만 저전력 디바이스에 폴리머 반도체를 충분히 적용하지 못한 이유는 음전하와 양전하가 동시에 이동하는 현상을 막는 스위치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항상 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종래에는 여러 층의 금속 막을 증착시켜야 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방법은 복잡한 제조공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값싼 플렉시블 전자부품에는 적합지 않다. 그런데 한 실험에서 풀러렌(Fullerene) 첨가제를 사용하면 음전하의 이동을 억제하면서 양전하만 이동하도록 허용하는 특성을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또 CuBP를 첨가하면 플러렌과 반대 방향으로 양전하 이동은 묶어 두고 음전자만을 이동시키는 스위치가 만들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로써 동일한 폴리머 반도체에 음전하와 양전하를 각기 제어하는 두 가지 스위치를 모두 장착하는 기술이 가능해졌다. 이 기술은 식품이나 장거리 수송 시 변질하기 쉬운 물품의 온도센서를 인쇄전자부품으로 제작하는 등 값싼 저전력 플렉시블 인쇄전자 부품에 쉽게 응용할 수 있다.

문헌을 조사해 보면 매일 같이 기발한 소재기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기술들은 단순해 보여도 전자기술, 통신기술, 컴퓨터기술, 생명과학 기술의 발전에 필요한 핵심 비법이 담겨있을 수 있다. 문명은 이렇게 발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