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분식회계 및 원전사업 손실로 존망의 기로에 선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부분 매각이 ‘일본 정부의 반대’라는 의외의 변수와 직면했다. 잠재적 입찰자가 총 10여 곳으로 압축된 가운데 도시바 내부에서 ‘헐값으로 매각할 수 없다’는 강경한 분위기까지 감지되고 있어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 출처=위키디피아

“중국과 대만은 곤란해”

아사히신문은 23일 일본 정부가 이번 매각전에 최대 변수로 부상했다며, 도시바가 중국이나 대만 기업에 넘어가는 것을 막는 권고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필요하다면 관련법에 의거해 법적인 강제성을 가진 매각 중지권 명령도 고려한다는 후문이다. ‘외환 및 외국 무역법’을 도시바 매각에 적용하기로 정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에 앞서 일본 현지 언론은 3월 중순 경 익명의 정부 관리 멘트를 인용해 “일본 정부는 차라리 애플과 같은 미국 기업이 도시바를 인수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현재 도시바는 최초 반도체 지분의 20%만 넘기는 선에서 급한 불을 끄려고 했으나, 원전 손실이 예상보다 크다는 이유로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 50% 이상을 넘기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나아가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의 기업가치가 20조원에 달하며,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하면 최대 26조원의 자본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가 도시바 매각전의 최대 변수로 부상한 배경은 국가 안보 때문이다. 도시바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이 정부 전자기기 곳곳에서 활용되는 상황에서, 만약 핵심 기술이 타국 기업에 넘어갈 경우 심각한 안보 위기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도시바 낸드플래시는 일종의 저장장치며, 현재 일본 정부에 비치된 대부분의 전자기기는 도시바의 제품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미국 의회가 화웨이의 스마트폰을 미국 공공기관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조치한 대목과 결을 함께 한다. 비록 반대의 경우지만, 전자기기의 사용과 국가 안보라는 패러다임은 밀접한 관련을 맺고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지난해 샤프 인수에 성공한 홍하이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사업을 쉽게 타국에 내어줄 수 없다는 위기감도 감지되고 있다. 특히 중국이나 대만의 경우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글로벌 전자업계의 큰 손으로 부상하는 중이다. ‘전자왕국 명가재건’을 노리는 일본 입장에서 당장의 손실을 만회하고자 알짜배기 기업을 판매하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특히 도시바의 경우 초유의 회계분식과 원전사업 손실에 따라 회사가 휘청이고 있지만, 메모리 반도체 사업부를 헐값으로 매각할 수 없다는 강경한 분위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도시바 매각전은 어떻게 전개될까? 당장 홍하이의 행보가 어정쩡해졌다. 지난해 샤프 인수를 통해 일본의 디스플레이 경쟁력을 체화한 상태에서 도시바 메모리 반도체 사업까지 노렸으나, 일본 정부의 강경한 방침은 ‘어찌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도시바를 향한 홍하이의 의지는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일 홍하이의 궈타이밍 회장은 샤프 디스플레이 공장 기공식에 참여해 "도시바를 위해 자금을 쏟아붓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인 바 있으며, 이러한 각오는 지금도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액수가 상당하기 때문에 단독입찰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런 이유로 홍하이는 자국의 TSMC와 더불어 한국의 SK하이닉스에도 손을 내민 바 있다. ‘타도 삼성전자’를 외치는 상황에서 SK하이닉스와 협력해 나름의 판을 짠다면, 도시바의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을 영리하게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하이는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이 약하다. 그런 이유로 양사의 격차를 고려할 경우, 연합전선의 구축으로 큰 이익을 얻는 것은 당연히 홍하이가 된다.

SK하이닉스도 상황이 애매해졌다. 일단 중국 및 대만 등 아시아권 기업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강경한 기류가 감지되며 그 이상의 행보를 거듭하기에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도시바 메모리 반도체 쟁탈전에 있어 최대한 말을 아끼는 가운데, 상황을 살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말이 나온다.

그 외 다양한 협력의 방식을 타진하는 한편, 현실적인 문제로 공동으로 도시바를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영권 인수가 아닌, 일정정도의 지분 확보를 목표로 삼을 것이라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도시바와 낸드플래시를 접점으로 삼는 웨스턴디지털의 인수도 여전한 고려사항이다. 이미 일본 시가현에서 도시바와 공동 공장을 설립해 협력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인수에 성공할 경우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미국 기업인 웨스턴디지털이 일본 민관펀드 등과 연계하는 그림도 그려진다. 만약 그렇게 되면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 메모리 반도체 인수에 가장 근접할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일(美日)합작 가능성이다.

이 지점에서 실체가 불분명한 싱가포르계 행동주의 펀드가 도시바 지분 8.14%를 확보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싱가포르 에피시모 펀드가 그 주인공이며, 8.14%의 지분이면 사실상 도시바 최대주주가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에피시모 펀드는 지분 매입의 배경으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분을 매입했을 뿐”이라고 설명했으나, 업계에서는 행동주의 펀드의 특성상 도시바 메모리 반도체 매각전에 있어 일정정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나아가 인텔과 TSMC, 애플 등 인수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도시바와 일본 정부 입장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기업들이 인수전에 나설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어려워지는 도시바..선택은?

도시바의 주거래은행인 미쓰이스미토모은행과 미즈호은행은 최근 미국 원자력자회사 웨스팅하우스(WH)에 파산보호 신청을 30일까지 하도록 도시바에 요구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바는 자금융통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으나 상황은 여의치 않다. 융자 지속 여부를 끊임없이 타진하고 있으나 일본 은행들은 대체적으로 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후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지만 도시바는 자사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부분을 헐값으로 매각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제외하면 엘리베이터 등 사회인프라 사업을 주축으로 삼을 수 밖에 없는 상태에서 최악의 경우 상장폐지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는 비장함이 팽배하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게 업계의 관심사가 도시바 메모리 반도체 사업 부분의 새로운 주인에게 쏠리는 가운데, 일본 정부라는 변수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