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금호아시아나 사옥 (자료사진) / 출처 = 금호아시아나그룹

‘우선매수권자의 컨소시엄 구성 허용 여부’를 둘러싼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산업은행의 기싸움이 더욱 팽팽해지면서 금호타이어 인수전의 향방이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당초 20일 주주협의회 안건으로 이를 채택하기로 한 산업은행이 갑자기 부의를 연기하며 추가 법률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내용이 안건으로 올라갔을 경우 빠르면 오는 22일 채권단 측의 입장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었다.

이런 상황에 정·재계에서는 금호타이어가 중국 기업에게 인수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산업은행 내부에서는 정재계가 정치논리와 국민 정서 이유로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으로 버티고 있다. 

시끄러워지는 인수전···“결국은 법정”

21일 재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당초 ‘박삼구 회장의 컨소시엄 구성 가능 여부’를 주주협의회에 안건으로 채택하기로 했지만 이를 돌연 연기했다.

양측이 갈등을 겪고 있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산업은행이 금호아시아나 측의 요구를 채권단과 함께 논의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는 ‘주주협의회 의견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에 산업은행은 20일 안건을 올리고 22일 결론을 내기로 했으나 무산된 것이다.

산업은행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비, 법률 검토를 확실히 한 뒤 그룹 측의 의견을 들어주겠다는 입장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우건설 때 무리하게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계열사를 해체시키기도 했는데, 똑같은 방법으로 인수하려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며 "자체 자금조달 능력을 확인하기까지는 입장을 바꾸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미 어느정도는 파악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이 컨소시엄 구성을 허용할 경우 우선협상대상자인 더블스타가 소송을 제기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박 회장측 안을 거절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 바 있다.

더블스타는 지난해 금호타이어 입찰에 참여하면서 우선매수권의 효력 등에 대한 정의를 내려줄 것을 산업은행에 요청했었다. 당시 산업은행은 ‘우선매수권은 박삼구 회장과 박세창 사장 개인에게 한정된 권리’라는 공문을 더블스타 측에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산업은행은 더블스타에 공문을 발송할 당시 주주협의회에서 우선매수권의 해석에 대한 안건을 부의한 적 없는 것이다. 더블스타 쪽에서 소송을 제기해 문제가 불거질 경우 산업은행이 ‘독박’을 써야 한다는 셈이다.

산업은행이 법률 검토를 마친 뒤 그룹의 컨소시엄 허용 여부를 주주협의회 안건으로 올릴 경우, 의결권 기준 75%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가결된다. 주요 의결권자는 우리은행(33.7%), 산업은행(32.2%), KB국민은행(9.9%), 수출입은행(7.4%) 등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소송 문제가 본질적인 이유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부의를 부쳐봤자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금호그룹과 박 회장 스스로 인수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인수능력이 검증되지 않는다는 것.

금호아시아나와 산업은행은 ‘우선매수청구권 행사 기한’을 두고도 갈등을 빚고 있다.

채권단은 ‘우선매수권 행사권자는 계약조건을 통보받은 이후 30일 이내에 행사 여부와 자금 조달 계획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3일 더블스타와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한 만큼, 다음달 13일까지 우선매수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그룹 측은 채권단으로부터 주식매매계약서와 확약서를 받은 시점부터 30일이 적용된다고 보고 있다. 채권단은 더블스타와의 주식매매계약에 대한 내용을 그룹 측에 통보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매각 조건이 담긴 주식매매계약서와 확약서 등은 전달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삼은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은 법적 분쟁을 통해 갈등을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 출처 = 금호아시아나그룹

정·재계 “중국 기업은 안된다”

이런 상황에 중국 기업의 ‘먹튀’를 우려한 정·재계에서는 국가 기반 산업인 타이어 업종이 중국에 넘어가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정치권에서 채권단 측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의견이 다수 나와 주목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특혜나 ‘먹튀’ 논란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혀 중국 기업에 금호타이어를 넘길 수 없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안희정 충남지사,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이재명 성남시장 등도 한국 기업이 중국에 넘어가는 일에 우려를 표했다.

재계에서도 이 같은 목소리가 높아지자 더블스타 측은 21일 입장 자료를 통해 ‘인수 후 금호타이어 임직원들의 고용을 승계하겠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 자료사진 / 출처 = 더블스타 홈페이지

더블스타 측의 발표 내용이 지난 2004년 쌍용차를 인수했던 상하이자동차 사례와 비슷했다는 점이 오히려 부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상하이자동차는 과거 쌍용차 인수(2014년 11월)를 앞두고 2014년 7월 입장 자료를 통해 ‘쌍용차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현행 경영진과 직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 인수 후에도 쌍용차의 경영진과 직원들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인수 이후 대규모 해고와 투자 위축, 경영난 등 상처만 남겼던 아픈 기억을 각인시키고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최근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해 우리나라 국민 역시 중국 기업에 일정 수준 반감이 생겨있는 상황이라는 점도 인수전 당사자들에게는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금호타이어는 광주·곡성 등에 공장을 지닌 국내 유일의 ‘호남 기업’”이라며 “정치권에서도 쉽게 이를 중국에 넘겨주기 힘든 셈이다. 다가올 선거가 변수가 될 수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국제적인 도덕성 등을 모두 뒤집고 세금을 써서라도 금호타이어를 되찾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타이어 업계에 능통한 한 전문가는 “금호그룹 내부에서는 이미 (정치권에서 그룹 편을 들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결국 박삼구 회장이 금호타이어를 찾아오게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이같은 정치권 개입에 대해 부담스러운 입장이다. 금호타이어의 기술이 독자적 고급기술이 아니라는 점, 또 금호타이어 판매망이 한국 기아자동차측과 얽혀있어 쌍용차 사태처럼 `먹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해 우리나라 국민 역시 중국 기업에 반감이 커져있는 상황이어서 향후 여론의 향배도 중요한 결정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