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튿날 아침에 도망한 적병의 종적을 탐색하던 아군은 진과좌마윤 이하 20여 명이 배를 갈라 죽은 자리를 발견하고 장군에게 보고하니, 장군은 군사를 지휘하여 비록 적이지만 아량을 베풀어 시체들을 후히 장사지내주면서 술과 안주는 물론 축제문까지 지어 충혼을 조문하셨습니다.”

“음! 충무공 전서의 기록을 보면, 한산도 싸움에 이순신장군이 사용한 낙화(絡火)라는 것은 일명 연강거화(連江炬火)라기도 하고 초부(草桴)라기도 한다. 7, 8척이나 되는 나무 두 개를 교차하여 십자형을 만들어 물에 띄우면 비록 파도가 크게 일어나도 전복될 우려는 없다. 그 교차점인 중앙에 3척쯤 되는 돛대를 세우고 그 돛대 끝에 횃불을 둘, 셋씩 꽂아두고 불을 켜면 낙화처럼 보이는데, 수천 개를 만들어 동아줄로 연결하여 바다 위에 띄우고 캄캄한 밤에 발화하면 수많은 배가 연환진을 벌린 것 같이 보이니, 이것을 짚으로 만든 떼배 또는 낙화라고 한다.”

“네, 이순신장군은 지혜가 아주 출중하였던 모양입니다. 만약 이날 한산도 큰 싸움에 조선군이 졌다면, 일본 수군은 곧바로 전라, 충청, 경기, 황해의 모든 바다를 짓밟아 서해로 돌아갈 것이오. 그리된다면 오직 하나 남았던 전라도까지도 적병의 말발굽 아래 유린되었을 뿐만 아니라 평양에서 수군의 응원을 기다리던 고니시군에 합류하였다면 평양성은 물론 의주까지 쳐들어가 선조는 압록강을 건넜을 것이며, 조선 팔도는 풍신수길의 손바닥에 들어가 다시 회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음!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순신장군의 神나는 한산대첩으로 말미암아 조선이 구출된 줄도 모르는 선조 이하 조정대신들이 나중에 장군을 죽이려했던 것을 난중일기나 충무공 전서 같은 책에서 밝혀지지 않았더라면, 친일하던 놈들에게 어떤 왜곡으로 인하여 장군이 역적으로 몰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네, 역사의 기록물이 없었더라면 원균이 같은 자가 충신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선조는 모든 대소신료들이 오로지 이순신장군의 혁혁한 전공을 논할 때 꼭 원균이도 잘한다는 말을 했으며, 죽을 때까지 원균이 타령을 했다 합니다.”

“음! 조선의 역사가 매우 오래 되었지만, 식민지사관에 의해 엄청난 장난이 이뤄져 있다. 이것을 잡지 않고 정의로운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네, 맞습니다. 다시 한산도 대첩에서 가장 먼저 적의 층각선을 깨뜨린 순천 부사 권준의 근무지 순천은 옹주의 큰 읍이라 병선도 상당히 많고, 권준도 용략이 있는 장수일뿐더러 맨 처음 장군이 원정군을 일으킬 때는 반대를 하던 사람이었으나 지난 당포해전이래로 장군의 인격과 수완에 성심 감복하여 마침내 장군을 숭배하는 사람이 되어 유일하게 장군의 고굉(股肱=다리와 팔이란 뜻으로 가장 신임하는 중신을 일컫는 말)과 심려(心膂=심장과 등골, 사람의 몸에 있어서 심장과 힘줄 등이 소중한 것에 비겨서 하는 말로, 가장 믿고 중하게 여기는 신하를 말한다.)가 되었습니다.”

“음! 옳은 말이다. 장군의 휘하 장수들의 전공은 이러하다. 권준은 적의 장수가 탄 층각선 1척을 당파하고 적장 10명의 목을 베고, 적선에 있던 조선 사람 하나를 사로잡아 전군의 사기를 돋우었고, 이 조선 사람은 적군을 위하여 물길을 인도한 자였고, 이 사람의 거주, 성명은 경성사람 김덕중이었다. 장군의 문초함에 따라 적의 수군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를 상세히 고하는 말에 의하면 자기는 일본 수륙군 총대장 부전수가를 따라서 경성으로부터 내려와 일본서 새로 온 대 함대와 합세하여 군을 4부대에 나누어 일거에 조선 수군의 명장인 이순신장군을 멸하고 전라도를 향하려 했던 말이며 구귀의륭, 가등가명이란 일본 장수들이 방금 전선 40여 척을 거느리고 뒤를 따라 온다하고 또 부산에서 백여 척의 병선이 출동할 것이라고 전했다.”

“네, 그리고 오늘 이 싸움에 가장 큰 대장은 부전수가와 협판안치라 하였고, 권준, 어영담, 정운, 이운룡 등 제장이 벤 수급 중에 두 장수의 목은 없었습니다.”

“하하! 김덕중이 탄 배가 깨질 때는 부전과 협판안치는 물에 뛰어들어 다른 배에 기어올랐다.”

“네, 광양현감 어영담도 적장이 탄 층각선 1척을 빼앗아 거기에 탔던 적장 하나를 사로잡아 결박시켜 장군에게 받쳤고, 그 장수는 화살을 맞아 대단한 중상을 당하여 말을 못했습니다. 그밖에도 어영담은 12급을 베고 조선 사람 한 명을 사로잡았는데, 이는 구미 인동에 사는 우근신이란 자였습니다. 진술한 말은 경성사람 김덕중과 대동소이하고, 다만 일본군사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장군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