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전에 액토즈소프트의 ‘천년’이란 게임을 즐겼다. PC온라인 무협 RPG(역할수행게임)다. 지금은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다. 그 게이밍 경험이 아직까지도 어린 시절 추억처럼 남아있다.

현실사회가 그런 것처럼 가상세계에도 적폐가 있기 마련이다. 천년속 세상의 한가지 문제는 매크로 사용 유저가 차고넘쳤단 거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통해 캐릭터를 직접 조작하지 않고도 경험치를 쌓는 유저들 말이다.

엄연한 부정행위다. 남들 시간 들여 손수 캐릭터를 키워나갈 때 그들은 매크로에 의존해 땀 흘리지 않고 성장을 이뤄냈으니. 게임사는 이들을 적발해 ‘유배지’란 곳에 보내버렸다. 그러나 갈수록 부정행위 수법이 교묘해졌다.

이른바 ‘오토플레이’라고도 불리는 행위다. 이게 천년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시절 PC온라인게임들에서 쉽게 발견되던 행태다. 오토플레이를 금기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금기를 넘어서는 건 때론 달콤했다.

▲ PC온라인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천년'. 지금은 서비스가 중단됐다. 출처=액토즈소프트

 

오토플레이,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시대가 달라졌다. 오토플레이가 합법화(?)됐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국내 게임판이 모바일게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요즘 나오는 모바일게임 중엔 오토플레이 기능이 없는 게임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대개 게임속 옵션으로 오토플레이를 지원하는 식이다. 이에 따라 게임 플레이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유저가 직접 신중한 컨트롤로 몬스터를 하나하나 때려잡을 필요가 없다. 오토플레이를 돌려놓고 내 캐릭터가 몬스터를 때려잡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사실 보지 않아도 무방하다.

모바일게임 인기차트를 보면 오토플레이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 게임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오토 게이밍 시대가 열린 셈이다. 이는 ‘하는 게임’이 아닌 ‘보는 게임’로의 전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게이머는 이제 선수가 아닌 감독 노릇을 하게 됐다.

한국게임과 중국게임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내 유저들 사이에서도 과거 기억 때문인지 이런 변화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다. 실력을 겨루며 경쟁하는 게임에 오토플레이란 요소가 개입하니 밸런스가 붕괴된다는 지적이다.

▲ 라이엇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 이른바 '신컨'(신의 컨트롤)을 요구하는 게임 중 하나다. 출처=라이엇게임즈

“보통 신컨(신의 컨트롤)이란 말을 하잖아요. 치열한 컨트롤로 상대를 이기거나 미션을 클리어하는 쾌감을 오토플레이를 통해 얻긴 어려워요. 그러니 게임의 재미도 떨어지고요.” 한 게이머의 말이다.

이재홍 한국게임학회장(숭실대 교수)은 이런 흐름을 우려했다. “오토플레이는 기술 측면에서 보면 모바일 플랫폼이 지닌 인터페이스 문제를 극복하려는 업계의 몸부림이자 고육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업계가 너무 오토플레이 방식에만 의존하면 게임이 지닌 ‘플레이’라는 본질적인 가치를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오토플레이 없으면 사람들이 게임을 안 해요" 

게임사 입장은 복합적이다. 일단 모바일 플랫폼 최적화 차원에서 오토플레이를 받아들였다는 입장이다. 화면이 작고 조작감이 나쁜 모바일 환경에서는 오토플레이를 옵션으로 넣는 게 유저경험(UX) 극대화 차원에서 당연한 고려라는 설명이다.

또 유저의 개입을 100% 오토플레이로 대체한 것도 아니다. 대부분 오토플레이 옵션을 끄고 직접 플레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니 컨트롤의 묘미를 원하는 유저는 원래대로, 조작이 서툴고 가볍게 ‘보는 게임’을 즐기고 싶은 유저는 오토플레이를 켜면 그만이다.

업계 관계자가 설명했다. “오토플레이 없으면 사람들이 게임을 안 해요. 플레이 타임 통계를 보면 오토플레이를 지원해야 유저들이 오래 즐깁니다. 유저들이 게임에 오래 머물러야 과금도 이뤄지는 거고요. 게임사 입장에선 수익에 직결되는 문제죠.”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오토플레이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 같이 흥행에 실패했어요. 결국 오토플레이를 유저들 다수가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부에선 게임이 재미를 주는 부분이 예전이랑 달라졌다고 말한다. 재미의 퇴보가 아니라 진화라는 입장이다. 

 

여유 없는 하루, 달라진 게이밍

30대 회사원 A씨는 직장에서 하루종일 모바일 RPG ‘리니지2 레볼레션’을 즐긴다. 근무태만이라고 보긴 어렵다. 오토플레이 기능을 켜놔서 게임속 캐릭터가 알아서 성장해나간다. 출퇴근길에 주로 성과를 확인한다.

“만약에 레볼루션이 하루종일 조작해야 하는 게임이었다면 안 했을 거예요. 하루에 게임할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오토플레이를 지원하는 게임 아니면 손이 안 가네요.” A씨가 그랬다.

▲ 넷마블게임즈의 모바일 MMORPG '리니지2 레볼루션'. 국내 모바일게임 역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한 게임이다. 출처=넷마블게임즈

A씨처럼 경제생활 최전선에 있는 이들은 이렇게라도 게이밍을 이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오토플레이를 대하는 게임사들 자세가 과거와 달라진 건 이처럼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진 결과로 볼 수 있겠다. 이재홍 학회장이 말했다. “여유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오토플레이가 이 시대 주요한 게이밍 경험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이같은 변화가 진화일지 퇴보일지는 지켜볼 일이다. 또 오토 게이밍 시대 이후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주목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