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비선실세 논란을 수사하는 검찰의 행보가 다시 빨라지고 있다. 특검이 최순실과 삼성,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추적하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 종료한 상태에서, 뒤를 이은 검찰이 삼성 외에 재계 전반을 정조준하는 분위기다.

최근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면세점 인허가를 담당하는 관세청 직원 2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는 사실이 15일 알려졌다. 지난해 상반기 면세점 제도 개선안이 마련된 경위를 조사했다는 후문이다. 재계는 이를 계기로 검찰이 사실상 재계에 대한 수사를 재가동한 것으로 평가했다.  

황교안 총리 불출마와 대선 날짜 확정 '발표 날'

지난 2월28일 공식 수사일정이 종료된 박영수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하는데 성공했으나 그 외 재계 전반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특검은 지난 1월19일 이재용 부회장 첫번째 영장이 기각되지 않았다면, 시간적 여유를 갖고 SK 및 롯데에 대한 수사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처음 청구한 영장이 기각되고, 다시 2월17일 구속영장 재청구 끝에 구속에 성공했지만, 수사범위를 재계 일반으로 확대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박영수 특검은 70일간의 수사를 마친 자리에서 "우병우 전 수석과 SK 및 롯데 수사가 미진했다"며 "국민께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 가능성은 열어놓았다. 이규철 당시 특검보(대변인)는 뇌물죄 수사와 관련해 "삼성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며 "특검법의 수사대상을 보면 명시적으로 '삼성 등 대기업의 관련 의혹'이라고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SK의 뇌물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적시해 말하기도 했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하자 특검의 뒤를 이은 검찰은 탄력을 받은 모습이다.

 검찰은 오늘(1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21일 오전 9시 30분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할 것을 공식적으로 통보했다. 파면 후 사실상 삼성동 사저를 근거지로 삼아 '진지전'에 돌입하는 한편, 헌재판단에 불복하는 메시지를 던진 박 전대통령에 대해 민심이 악화되자 수사를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검찰은 또 재계 일반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를 천명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국무회의를 통해 5월9일을 대선일로 확정하는 등 선거관리내각으로 전환하자 정치적 부담에서 홀가분해진 느낌이다.

▲ 캡처. 출처=이코노믹리뷰DB

SK와 롯데, 수사 앞두고 다시 `초긴장'

검찰이 재계 일반에 대한 수사에 나서기로 한 이상, SK와 롯데가 1차적 목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SK가 잔뜩 긴장하는 눈치다. SK는 미르 및 K스포츠 재단에 총 111억원이라는 큰 금액을 출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 SK가 받고있는 의혹은 크게 두 가지다. 최태원 회장 사면과 면세점 특혜다.

SK와 박 전대통령의 청와대는 당시 수감중이던 최태원 회장을 두고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 회장이 지난 2015년 8.15 특사로 풀리기 전,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2015년 7월13일 당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을 만나 최 회장의 사면을 부탁했다는 게 특검측 시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은 안 수석에게 "경제수석님. 지난 번 말씀주신 내용에 대해 뵙고 논의드리고 싶습니다. 일단 뵐 수 있는 시간과 장소에 대해 말씀주시면 챙기겠습니다"는 문자를 보낸 사실까지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나아가 김영태 부회장이 8.15 특사로 최 회장이 출소하기 직전 이미 출소를 기정사실화한 정황도 포착된다. 김 부회장은 수감된 최태원 회장과 면회하며 "(정부에서)분명하게 숙제를 줬다"와 "왕회장이 귀국을 결정했다" 등의 말을 한 것으로 확인된다. 숙제는 SK가 내야할 재단 출연금, 왕회장은 박 전대통령을 의미한다는 게 특검측 추정이다. 최 회장은 8.15 특사로 석방됐다.

이후 김 의장은 안 전경제수석에게 "하늘같은 이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고 산업보국에 앞장서 나라 경제살리기를 주도할 것"이라며 "수석님의 은혜 또한 개인적으로도 잊지 않겠습니다"는 문자를 보낸 것도 드러났다.

SK는 이같은 '딜'을 부정하고 있다. SK 관계자는 "면회 이전 이미 언론보도나 다양한 루트를 통해 사면 대상에 최 회장이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숙제의 의미는 경제 살리기를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SK는 최 회장이 출소 직후 바로 서울 서린동 SK 본사에서 김 의장 등 그룹 경영진과 만난데 이어 주말이자 광복절인 2015년 8월15일, 16일에도 본사에 나와 경영진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는 것. 이어 17일 확대경영회의를 시작으로 대전과 세종 창조혁신센터를 방문하고, 대전 R&D센터, 이천 반도체사업체를 연이어 돌았던 광폭행보의 배경도 이러한 경제 살리기를 의미한다는 뜻이다.

문자에 대해서도 SK 관계자는 "일상적인 설명으로 봐달라"고 전했다. 당시 SK는 최 회장의 구명을 위해 나름의 역할을 상식적이고 정당한 수준에서 벌이고 있었으며, 그 연장선에서 안 전 수석에게도 인연이 닿았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최 회장 출소후 안 전 수석에게 "하늘같은..."문자를 보낸 배경도 통상적인 감사인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SK 관계자는 "문자의 말미, '수석님의 은혜 또한 개인적으로도 잊지 않겠습니다' 뒤에 '산업보국에 앞장서겠다'고 되어 있다. 이는 통상적인 감사의 의미며 사면 취지인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최태원 회장 본인도 '딜'을 부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지난 2월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 심리로 열린 국정농단 사건 관련 16차 공판에서 공개한 진술소개서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은 미르 및 K 스포츠 재단의 출연금에 대해 "(관련된 일은)사후보고를 받았다"며 "(사전에 보고를 받았다고 해도)어쩔 수 없이 출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나아가 최순실 및 안 전 수석에게 약점이 잡혀 재단 출연금을 낸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아니다"고 했다. 자신의 사면 취지를 일자리 창출로 이해했다는 뜻이다.

면세점 이슈는 더욱 직접적이다. 15일 검찰이 관세청 직원을 불러 조사하며 사실상 재계 일반에 대한 수사의지를 드러내며 SK와 롯데를 정조준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관세청 직원을 불러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검찰이 SK와 롯데의 면세점 이슈를 파고들겠다는 의지로 보기에는 미지수이나, 개연성은 충분하다.

▲ 면세점. 출처=이코노믹리뷰DB

이 사안은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3월 면세점 승인 요건을 완화하는 정책을 발표한 대목부터 의혹의 시선을 받고 있다. 당시 공고는 시장 지배자적 사업자가 면세점을 입찰할 경우 감점을 매기는 정부 원안이 빠져있어 SK와 롯데 등 대기업을 위한 특혜라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문제는 SK와 롯데가 2015년 11월 면세점 재승인 심사에서 탈락한 후 월드타워점과 워커힐면세점 사업권을 상실한 상태에서, 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2월부터 3월까지 최태원 회장과 신동빈 회장을 비공개로 면담했다는 점이다. 이후 SK와 롯데는 미르 및 K 스포츠 재단 출연을 확정했다.

시기적으로 보면 'SK와 롯데의 면세점 탈락(2015년 11월)-대통령 독대(2016년 2월~3월)-기획재정부의 면세점 승인 요건 완화 정책 발표(2016년 3월)'로 이어진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면세점 사업을 완화하는 조건으로 SK와 롯데로부터 거액의 재단 출연금을 약속받아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애매한 부분이 있다. 면세점 승인 요건 완화 정책 발표 후 SK는 K스포츠 재단으로부터 추가적으로 30억원의 지원금을 요청받았으나 결론적으로 없던 일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SK는 면세점 특혜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롯데는 K 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 출연했고 추가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됐지만 2016년 6월 오너 일가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돈을 다시 돌려받았다. 이 과정에서 수사정보누설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30억원 추가 출연을 요청받았으나 거절했던 SK는 최종 탈락했다.

 검찰 수사 속도전...경영 환경은 '흔들'

재계 일반에 대한 수사는 검찰 특수본 1기에서 특검으로, 다시 검찰 특수본 2기의 손에 떨어졌다.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 구속을 성공시키며 미르 재단 등에 대한 출연 및 최순실 일가에 대한 지원을 3자 뇌물죄로 끌어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문에서 "피청구인(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위는 기업 재산권을 침해했을 뿐 아니라 기업 경영의 자율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표현, 뇌물죄에 대한 특검의 판단과는 다른 시각을 보였다. 삼성의 주장대로 `강요죄` 해석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지금까지 삼성은 재단 출현 및 최순실 일가에 대한 지원에 대해 줄곧 대가성이 없었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헌재가 이를 기업의 재산권 침해와 기업 경영의 자율권 침해로 봤다는 점은 삼성의 입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당장 '강요에 의한 지원'이라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

SK와 롯데도 모든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며, 치열한 법리전쟁을 벌일 각오다.

일각에서는 "기업 경영 환경이 흔들려 경제 전반에 상당한 후폭풍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찮다. 

삼성의 경우 이 부회장 구속, 미래전략실 해체 등 사실상 그룹이 공중분해되고 임원인사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SK와 롯데도 한반도 사드 배치에 따른 후폭풍으로 대중국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SK는 중국 현지 파트너와 벌이던 주요 사업들이 연이어 무너지고 있으며,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는 격렬한 불매운동의 희생양이 되어 말 그대로 얻어맞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 무역주의와 탄핵 정국에 휘말린 국내 정치상황 등 경제의 불확실성도 높아지고 있다. 때문에 검찰의 칼날이 SK와 롯데를 시작으로 재계 일반에 다시 번질 경우, '대한민국 경제의 축이 흔들리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