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를 공급받고 싶으시면 먼저 주문해주세요. 지금 주문해도 3년 뒤에나 제품을 공급해드릴 수 있습니다. 배터리 공장은 365일 가동해도 물량을 댈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증설을 결정했지만 지금 같은 선주문 상태라면 2년 뒤에도 또 증설에 나서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신공장은 스마트 팩토리 개념으로 지을 예정입니다.” 완판 행진을 이어가는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이야기다.

◇ 밀려드는 수주, 결국 공장 2배 증설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생산설비를 두 배 이상 늘리며, 사업구조 혁신의 핵심 동력인 전기차 배터리 사업 확장에 나선다. 급격히 커지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유기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설되는 배터리 생산설비 5, 6호기는 총 2GWh 규모로, SK이노베이션은 기존의 1.9GWh급 생산 능력을 단숨에 두 배 이상으로 확대하며 총 3.9GWh 규모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됐다. 연간 14만대의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생산설비들은 오는 2018년 상반기 중 서산 배터리 제2공장에 들어서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간다.

배터리 공장 신설비 증설 조감도. 출처=SK이노베이션

◇ 고밀도 배터리, 분리막 등 기술력이 이뤄낸 쾌거

SK이노베이션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사용하는 전기차 업체는 현대·기아자동차, 다임러 벤츠 등 국내외를 통틀어 다양하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도 LG화학이나 삼성SDI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이 통하고 있다.

여기에는 SK이노베이션만의 독보적인 기술력이 뒷받침됐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SK의 배터리는 전기차 배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며 고품질의 분리막을 생산해 안정성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밀도가 높을수록 한 번 충전하면 오래 주행할 수 있으며, 분리막은 혹시 모를 배터리의 폭발 위험을 최소화해준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에너지 저장 밀도를 높이기 위해 많은 전극물질을 넣기 때문에 폭발 우려가 크다. 이러한 폭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분리막이다.

SK이노베이션에서 생산하는 분리막 실물사진. 출처=SK이노베이션

전기차는 많은 2차전지가 사용되는 만큼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SK이노베이션은 국내 경쟁업체 대비 후발 주자이지만 기술력은 충분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배터리와 더불어 분리막 분야의 성장도 기대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5년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 1.5억㎡를 판매해 전 세계 시장점유율 30%를 차지한 세계 2위 업체다. 일본의 아사히카세이가 3.1억㎡를 판매해 시장점유율 50%로 1위에 올라있다. 3위가 일본의 도레이BSF다. SK이노베이션은 매년 20% 이상씩 생산능력을 늘리며 아사히카세이와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지난해 분리막의 연간 매출액은 2000억원 수준이다. 지난 2005년 리튬이온배터리 분리막 첫 양산 이래 현재까지 누적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앞으로 전기차 시장 성장에 맞춰 분리막 시장의 성장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매년 전기차 배터리용 분리막 수요가 29% 증가하고 있고 IT 기기 시장 수요도 연평균 9%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다. 

<세계 배터리 분리막 시장 전망>

출처=SNE리서치

특히 중대형 리튬이온 2차전지용 분리막은,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S의 인기와 함께 BMW i3, 기아자동차의 ‘쏘울EV’ 등 글로벌 자동차업체의 전기차가 출시가 이어지면서, 2020년까지 연평균 25% 이상의 높은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2차전지 생산 업체 중 유일하게 분리막 기술을 보유한 SK이노베이션만의 강점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분리막 시장은 2020년까지 연평균 약 36.1%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 효율적 경영, 선(先)수주·후(後)증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의 신규 투자 방향으로 ‘선(先)수주·후(後)증설’ 전략을 추구해왔다. 이번 추가 증설도 신규 프로젝트 수주에 따른 공급량 확대를 위해 전략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선수주 후증설은 SK만의 차별화된 전략이다. 기존 배터리 업체들이 이미 대규모의 생산시설을 확보한 상태지만 SK가 뒤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공장 건물을 미리 지어놓을 수도 있지만 발주량과 시기에 맞춰 증설을 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며 SK이노베이션만의 전략 방침임이라고 말했다. 

◇ 분리막·배터리 생산공장 증설 위해 투자 대폭 확대

SK이노베이션은 선 수주·후 증설 계획에 따라 전기자동차 업체와 공급 계약을 체결한 이후 전폭적으로 투자를 확대해왔다. 지난 2011년 전기차의 핵심소재인 분리막과 배터리 공장 양산을 위해 4936억원을 투입한 이후 2013년까지 총 1조2814억원을 투자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14년과 2015년에도 각각 1413억원, 4343억원 투자하기로 계획했고 2년간 총 1975억원을 지출했다.

▲ 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아울러 SK그룹은 신성장 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올해 배터리 공장 및 분리막 사업 확대와 인수합병(M&A)에 최대 3조원을 투자하기로 계획했다. 이는 지난해(8000억원)의 4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SK이노베이션은 3조원 중 2조6000억원을 충남 서산 배터리 공장 증설과 충북 증평 배터리 분리막 공장증설 및 M&A에 집중하기로 하고, 나머지 금액은 기존 화학 공장의 정기 보수 투자에 사용된다고 밝혔다.

▲ 출처=SK이노베이션 영업보고서

배터리 상업라인 건설과 분리막 증설 사업을 위해 자금조달도 확대하고 있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총 1조319억원의 금액을 자기자본을 통해 확보했다. 이 같은 투자 계획으로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 확대를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 증설 생산량 가져갈 주인은 이미 결정, 향후 7년간 선주문 모두 마쳐

신규 생산설비에서 생산되는 배터리 제품은 SK이노베이션이 최근 지속적으로 추가 수주해온 다수의 글로벌 프로젝트에 전량 공급된다. SK이노베이션은 신규 설비를 포함해 모든 설비를 100% 가동하는 것을 기준으로 향후 7년간의 생산량을 모두 고객사에 공급할 수 있는 수주 물량을 확보해둔 상태다. SK이노베이션은 2009년부터 독일 다임러 그룹, 현대기아차, 중국 베이징 자동차와 합작법인인 BESK를 설립하는 등 주요 전기차 모델들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대규모 프로젝트 협력 계약을 체결하며 시장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전기차 및 2차전지 전문분석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은 폭발적 성장이 예상되는 만큼 이번 증설을 시작으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시장 공략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세계 전기차 시장 전망(좌)과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전망(우)>

(단위: Mpcs=백만대) 출처=SNE리서치

◇ 생산성 극대화, 스마트팩토리 도입

공장도 스마트해진다. SK이노베이션은 신규 생산설비의 주요 공정에 고도화된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 개념을 적용시켜 생산성을 극대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원재료 투입부터 완제품의 검사 및 포장 공정까지 전 공정의 설비 자동화와 ▲빅 데이터 기반의 설비 운영 모델 고도화 ▲제조 운영 관련 중앙관리 시스템 등을 적용한다.

출처=SK이노베이션

뿐만 아니라 다년간 축적해온 설비 설계 및 운영 관련 기술력과 노하우를 모두 적용해 공간 활용도와 생산 효율성을 크게 개선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신규 설비들은 동일한 면적을 차지하는 서산 제1공장동의 기존 설비 대비 약 3배 이상의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된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투자 결정으로 전기차 배터리 사업 중심의 신성장사업 강화와 이를 통한 사업구조 혁신을 강력하게 실천하게 됐다”며 “글로벌 시장의 주요 프로젝트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사업의 규모를 키워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의 꾸준한 성장을 위한 소프트 파워(Soft Power) 강화에도 투자를 지속할 예정이다. 향후 SK이노베이션은 글로벌 수준의 기술력 확보를 위한 연구 개발을 확대하고, 인적 역량 제고를 위해 인력 채용 및 교육 등의 투자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은 뛰어난 기술력과 안정적인 공급 능력에 대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매년 성장을 거듭해왔다”며 “국내외 전기차 배터리 시장 공략을 강화해, 향후 글로벌 Top 3 배터리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