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가 IM-650S(출처=팬택 베가 홈페이지)

유저의 일상과 가젯(Gadget)에 얽힌 그렇고 그런 이야기. 일상가젯 2화.

“자기야, 우리도 카카오톡 하자. 스마트폰 사면 안돼?”

때는 2010년. 복학생이던 나는 여자친구의 권유로 ‘스마트폰’이라는 신문물을 접했다. 당시에는 ‘아이폰 쇼크’ 이후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다양한 휴대폰 제조업체가 막 스마트폰을 생산하기 시작하는 단계였다.

개인적으로 친구의 ‘옴니아’를 본 이후 스마트폰이란 제품 자체에 대한 불신은 굉장히 컸다. “저딴 식으로 만들거면 그냥 만들지 말지…”라는 게 내 심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자친구의 한마디에 “불신 따윈 개나 줘! 스마트폰이 짱이야!”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기며 이동통신사 대리점으로 향했다.

이런저런 제품들을 보는데 유난히 내 눈길을 끄는 녀석이 있었다. 고급스러운 은색 베젤에 무심한 듯 칠해진 검은 무광커버, 진보적인 아이디어의 상징과도 같았던 ‘SKY’ 브랜드. 차가운 도시남자를 위한 스마트폰 같았다. 팬택에서 시리우스 이후 내놓은 프리미엄 모델 ‘베가’ 시리즈의 원조 IM-650S는 이렇게 내 손에 들어왔다.

내 생에 첫 스마트폰이었다. 그리고 2G폰에 비해 3G폰이 할 수 있는 것들은 다양하고 폭넓었다. 정전식 터치로 인한 편리함, 대화면이 가지는 쾌적함,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구동할 수 있다는 확장성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떼놓을 수 없는 ‘핵심 가젯’이 됐다. 자취방에 인터넷이 없었는데 ‘와이파이 핫스팟’ 기능을 요긴하게 썼다. 각종 동영상 시청과 레포트 작성을 도왔다. 무엇보다도 모바일메신저 사용은 혁명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여친과의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정말 행복했다. 딱 1년까지는.

어느 순간 베가 이 녀석은 화면전환이 느리거나 버벅거리는 현상이 자주 나타났다.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사진이 모두 싹 날아가는 경우도 발생했다. 당시 여친과 삐걱거리기 시작했는데, 거짓말처럼 베가도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결국 사단이 났다. 평소처럼 베가로 웹서핑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이 꺼졌다. 그리고 자기 혼자 재부팅이 되더니,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다. 서비스센터를 찾아가니 초기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원인은 모르겠다고 했다. 그저 컴퓨터 블루스크린처럼 오류가 나는 것이라고, 초기화를 하면 괜찮아질 것이라 했다.

기분 탓일까. 여친과의 싸움이 잦아질수록 베가 이 녀석의 말썽도 늘어났다. 전화통화 중 마음대로 전원이 나가는가 하면, 블루투스 연결이 잘 안되기도 했다. 서비스센터에서 초기화만 4회 받았다. 경기도 오산 팬택서비스센터 기사님은 내 얼굴을 외우기 시작했다. 번호표를 뽑으면 “오늘도 초기화시죠?”하고 말을 걸기도 했다.

여친과 결국 이별을 한 뒤에는 베가가 한동안 조용해졌다. 나는 잠시 “이녀석, 결국 괜찮아지려는구나”하는 착각을 했다. 덮어뒀던 문제는 결국 소개팅때 터졌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소개녀를 만나기로 한 날. 베가는 갑자기 전화통화가 되지 않았다. 문자메시지를 보내려고 해도 보내지지 않았다. 전송실패만 지속됐다. 놀랍게도 3G 데이터는 유지됐다. 나는 근근히 모바일메신저로 연락을 했다. 차가 막혔다. 약속시간에 늦을 것만 같았다. 메신저를 통해 메시지를 계속 보냈는데 어쩐지 ‘1’이 사라지지 않았다.

약속장소에 도착했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지하철역 2번 출구 부근 카페에서 보기로 했는데 그녀는 3번 출구로 알고 있었다. 메신저를 뒤늦게 보고 약 40분만에 만났다. 그녀는 왜이렇게 전화를 안받냐고 채근했고, 나는 ‘아 이번 소개팅은 망했구나’ 싶었다.

분노한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베가를 집어던졌다. “너란 베가 정말 너무하다, 망할 스마트폰 X끼야”라고 외치며 절규하기도 했다.

▲ 2010년 당시에는 3.5mm 이어폰 단자가 혁신적인 변화였다. 최근에 아이폰이 반대로 3.5mm단자를 없애버린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출처=팬택 베가 홈페이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당시 팬택의 베가시리즈는 안정성이 많이 떨어져 있었으며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상당히 나 있었다. 오죽하면 ‘베가 + 쓰레기’의 합성어인 ‘베레기’라는 단어까지 나왔을까. 공장초기화만 5회 한 나로서는 공감이 많이 됐다.

팬택은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겪고 최근 부활했다. ‘스카이 IM-100’을 통해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호평 받았다. 감각적인 디자인과 적절한 가격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도록 만들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과거와 같이 ‘무한부팅’, ‘강제 초기화’ 등의 오류는 현저히 줄거나 없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는 내 심정도 복잡미묘하다.

내 생에 첫 스마트폰, 즐거움과 동시에 불편함을 안겼던 베가. 팬택이 부디 더욱 완성도 높은 스마트폰을 만들어 ‘애증’이 아닌 ‘애정’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