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에서와 마찬가지로 법정에서도 예의가 결과를 좌우한다`

변호사나 피고인은 법정 예의를 경시했다가 `괘씸죄`에 걸리기 일쑤다. 심할때는 `법정모독`으로 감치(監置)를 당하기도 한다.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대행이 10일 오전 `대통령 탄핵사건`(사건번호 2016헌나1) 판결결정 요약문을 20여분동안 읽어내려갔다. 탄핵 소추한 국회측과 피고인인 대통령측 대리인단 변호사들은 잔뜩 긴장했다. 전날까지 악을 쓰던 대통령측 변호사들의 얼굴이 더 굳어있었다. 

법조계에선 탄핵인용 전망이 우세했다. 사건 기록을 보지 못한 상태임에도 탄핵인용에 기울어져 있었다.

"법정 예의라는 게 있죠. 대통령측 변호사들이 왜 그렇게 예의를 잃은 행동을 했을까요. 그것은 예의를 지키면서 논증을 펼 수 있는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법리논쟁으로는 이길수 없다고 판단, 예의를 깨트려 훼방을 놓으려 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일이 가다오기 전까지만 해도 달랐다. 법조계내에 탄핵소추가 기각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적지않았다.

재판은 여론과 사회분위기가 아니라,  ‘서류’로 진행한다는게 법조인들의 신념이다. 아무리 재판 과정에서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해도 정작 판결문을 쓸 때는 관련 증거, 그와 일치하는 주장을 하나하나 따져본다.

때문에 판결문에도 논리적, 법리적 오류가 없어야 한다. 한 법조인은 “아무리 여론이 한 쪽에 치우쳐 있다하더라도, 법관은 다른 한쪽의 주장과 증거가 서류로서 ‘예쁘게(정확히는 논리정연하게)’ 정리돼 있을 때에는 저울이 그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탄핵재판의 최대 쟁점은 법률위반이 대통령직을 수행하지 못할 만큼 “중대성”이 있는지에 있었다.

다른 법조인은 “중대성의 기준이라는  게 기계적으로 딱 단정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소추위원단이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법률위반이더라도 중대성이 없다면, 탄핵은 기각이라는 것.

이번 헌법 재판에서 그럴 가능성이 다분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력과 비위에 대한 원성이 아무리 높더라도, 국회소추위원회가 제출한 증거와 논리적 주장이 빈약했다면 탄핵심판의 결정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많은 법조인들은 결정일이 다가올수록 탄핵인용으로 기울어졌다. 그리고 그 근거는 의외로 법리적인 주장이 아니었다. 대리인단 변호사들의 태도를 문제삼았다. 대리인단의 불손한 언행 등이 재판에 분명히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증인을 20명 신청했는데, 그중에 9명 밖에 채택안해줬다고 해서 재판부가 편파적이었다고요? 어휴. 일반법정에서는 신청한 증인을 1명이라도 받아주면 그저 감사할 뿐이죠. 9명이면 정말 많이 봐준 겁니다"

법정에서의 예의는 `불문율`이다. 과거엔 넥타이를 매지 않은 변호사에게 판사가 다시 사무실에 가서 넥타이를 매고 오라고 했을 정도였다. 법정 밖에 나갈 때 문 앞에서 목례를 하지 않고 나가면 지적을 받았던 때도 있었다. 그만큼 법정에서의 예절은 법조인들 사이에서 불문율에 가깝다.

법정 예의는 법관 개인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 아니다. 이보다는 사법권과 법원의 권위에 대한 존중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치주의에 대한 존중이다. 법관이 이같은 권위 안에서 판결을 내리기 때문이다.

무엇을 결례 했나

이번 대통령 탄핵사건 재판과정에 대통령측 대리인단의 김평우 변호사는 재판장에서 연일 독설을 쏟아냈다. 문제 소지가 있는 몇가지 발언을 들어보자.

"강일원 재판관이 증인신문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청구인(국회)쪽 증인에 대해선 별로 질문을 안하고 피청구인(대통령)쪽 증인에 대해서 주로 묻더라. 자칫 오해하면 청구인의 수석대리인이 된다“

"이정미 재판관도 문제가 있다. 역사적이고 국제적인 심판이 이정미라는 특정 재판관의 퇴임 일자인 3월13일 선고에 맞춰서 과속으로 졸속 진행하면 안된다“

"법관은 약자를 생각하는 것이 정도인데, 약한 여자 하나(박 대통령)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똑똑하고 강한 변호사들에게 힘을 보태주는 것은 법관이 해선 안 될 일이다"

"우리나라에 잘못하면 내란 사건(이 벌어질 수 있다)"

"역사에 없는 섞어찌개 탄핵소추다"

"국회의원들이 야쿠자인가"

대통령 대리인단의 조원룡 변호사는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재판 진행을 하는 헌법재판관 강일원의 기피를 신청한다"며 기피신청을 냈고, "재판관 9명 못 채우면 내란 일어날 수도 있다“고도 엄포성 발언을 했다.

이런 말들이 단순히 소송 전략이었을까.  이런 표현들이 재판관들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은 틀림없다는 게 법조인들의 분석이다. 개인적 불쾌감이 아니라 사법부의 권위에 도전하고,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 인식됐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경험 많은 대리인단 변호사들이 이를 몰랐을리 없었으니, 이는 다분히 고의적인 것으로 해석된다. 

말보다 더 기분 나쁜 것이 있다?

법조인들은 한결같이 이번 재판과정에서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무리한 절차를 감행했음을 지적한다.

이번 재판은 형사재판이 아니라, 본질상 징계재판이다. 헌재 절차가 형사소송법을 준용한다고는 하지만, 형사절차와는 달리 엄격한 증거신청 등이 필요치 않는 사건이다. 그럼에도 `형사재판처럼 하자`는 무례한 절차적 요구가 재판관들에게 피로감을 주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헌법재판관들은 매우 유능하고 덕망있는 법조계 인사들이다. 이들은 대법원의 대법관만큼이나 존경을 받아온 인물들이다. 당연히 재판과정에서 이들에게 갖추어야 할 예의는 다른 일반 재판에 비해 더욱 엄하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재판과정에서 지나치게 당당했다는 평가다. 이들은 자신들보다 어리다는 듯, 헌법재판관들을 가르치면서 재판을 진행하려 했다. 이들의 행동은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이 없다는 전제하에 변론을 한 것인데, 그  바탕에는 형사법상 `무죄추정원칙`을 내세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형사재판장의 현실은 그 원칙과도 전혀 다르다.

일반적으로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측 변호사들은 피고인과 같은 수준의 태도로 변론을 한다고 말했다. 혐의가 짙은 상황에서 고개를 뻣뻣이 들면 피고인의 형량이 더 높게 나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탄핵소추가 된 상태는 일종의 혐의를 의심받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대리인 변호사들은 무죄추정원칙을 남용, 재판부의 심기를 지나치게 흔들어놓았다는 해석이다.

한 변호사는 "대리인단이 의뢰인인 박대통령에 대한 예의도 저버린 것"이라며 "의뢰인을 생각했다면 절대로 헌법재판관들을 자극하는 일을 해서는 안됐다"고 지적했다.

묘하게 수임료 문제일지 모른다는 얘기도 있다. 또다른 변호사는 "변호사가 의뢰인과의 관계에서 의뢰인 요구에 대해 속박되지 않은 채 가장 자유로울 때는 무료 변론을 할 때"라면서 “혹시 대리인단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수임료가 받지 않거나 적은 수임료를 받았을 수도 있지 않겠나"라며 의문을 던졌다.

이정미 헌재소장 대행은 이날 결정문을 낭독할 때 톤이 올라간 대목이 있었다. 결정문 마지막부분이다.

이 소장대행은 "박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진상규명에 대해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정착 검찰과 특검의 조사에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어 "피청구인(박대통령)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헌법 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며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봐야한다"고 적시했다.

이어 "피청구인의 법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의 중대함으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이라며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주문 선고한다"고 끝을 맺었다.

재판관들은 무엇보다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박전대통령과 대리인단의 무례한 태도에 전원 일치 결정을 서둘렀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