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이타주의자> 윌리엄 맥어스킬 지음, 전미영 옮김, 부키 펴냄

우리의 착한 행동은 늘 세상에 도움이 되는 걸까? 저자의 결론은 ‘No!’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가 아는 유니세프, 월드비전, 옥스팜 등 거대 자선단체의 재해구호는 비용 대비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 공정무역 제품 구매, 노동착취 제품 불매, 온실가스 감축 노력 등 개인 차원의 선행도 별 효과가 없다는 통계가 넘친다. 따라서 이제라도 단체와 개인의 선행들이 어떤 결과를 보이는지 전면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 경솔한 선행은 해악을 끼친다

아프리카 오지의 식수난을 해결해주려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회전놀이기구 ‘뺑뺑이’와 펌프 기능을 결합시킨 ‘플레이펌프’를 개발했다. 어린이들이 뺑뺑이를 돌리며 놀면, 그 회전력으로 지하수를 끌어 올린다는 기발한 아이디어여서 후원금이 몰렸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제동이 걸렸다. 플레이펌프의 효과가 기대와는 달랐다. 펌프 동력 공급에 아이들의 ‘노동’이 동원되면서 사고가 속출했다. 오지마을은 자체 유지보수 능력이 없었다. 플레이펌프는 마을의 흉물로 전락했다. 선의와 열정에만 의존한 경솔한 이타주의가 해악만 끼친 셈이었다.

◇ 공정무역 커피는 가난한 농부에 도움 안 된다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한다고 해서 무조건 가난한 나라의 빈곤층에 수익이 돌아가는 건 아니다. 공정무역 인증 기준은 상당히 까다로워 가난한 나라의 농부들이 기준을 충족시키기가 어렵다. 또한 공정무역 커피의 주요 생산지는 에티오피아 같은 최빈국이 아니라 그보다 10배 부유한 멕시코, 코스타리카 등이다. 공정무역 제품이라 웃돈을 얹어 판매되는데, 웃돈이 커피 생산자 수중에 떨어지는 것은 1% 미만이어서 노동자에게는 거의 돌아가는 것이 없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형편이 좋은 국가의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하느니 최빈국의 비(非)공정무역 상품을 사는 게 빈곤퇴치에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선진국 시민단체들은 노동착취 공장제품의 불매운동을 펼쳐왔다. 그러나, 절대 빈곤층에게는 그만한 일자리도 없다. 선진국 소비자들의 ‘공정한 대우’ 압력에 의해 공장 밖으로 쫓겨난 빈민층은 결국 더욱 고되고 수입이 적은 농장 인부나 넝마주의로 전락하게 된다. 모든 경제학자들이 한 목소리로 선진국 시민단체들의 ‘노동착취 제품 불매’ 운동을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학자들은 노동착취로 비춰지는 공장들이야말로 빈국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고 말한다.

◇ 재해구호금 분배는 불합리하다

2010년 아이티에서, 2011년에는 일본 도호쿠에서 강진이 발생했다. 두 곳의 지진피해는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구호단체들은 두 곳에 50억달러씩 원조했다. 하지만, 아이티 사상자는 15만명, 일본은 그 10분의 1에 불과했다. 자체 대응자원 보유량(GDP)도 아이티는 일본의 1000분의 1 수준이었다. 피해가 더 크고, 가난할수록 구호금을 많이 받아야 하건만 구호단체들은 사건의 정서적 호소력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널리 알려져 있는지에 따라 돈을 분배했다. 어린이 결핵 사망자는 하루 1만8000명이지만 구제비용은 일본 지진의 22분의 1에 머문다. 효율을 따져 보면 재해구호단체에 기부하는 것보다 빈곤단체에 기부하는 게 더 합리적이다.

◇ 기생충 구제, 케냐 학생 출석률 높이다

그럼, 선행을 하지 말라는 것인가. 아니다. 사전에 이타적 행위의 효과에 대해 냉정하게 따져 보라는 얘기다. 여기 모범사례가 있다. 마이클 크레머는 아프리카 케냐의 학교 출석률을 높이고 싶었다. 배워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현지 실험부터 했다. 우선 학교 7곳에는 교과서·수업교구를 지급했다. 비교 대상인 7곳에는 지급하지 않았다. 조사 결과 출석률에 별 차이가 없었다.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줄여보는 실험도 마찬가지였다. 이어 기생충 치료를 실시했더니 갑자기 결석률이 25%나 줄었다. 마이클 크레머는 곧바로 기생충 구제 자선단체를 설립했다. 기생충 구제는 보건, 경제 등 교육 외적인 부분에서도 연쇄 효과를 가져왔다. 빈혈, 장폐색증, 말라리아 등 다른 질병의 발병 위험도 줄었다. 10년 뒤 추적 조사한 결과 감염 치료를 받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주당 3.4시간 더 일했고 소득도 20% 높았다. 이타심에 냉정함을 결합하자 효과적 사업이 탄생한 것이다.

이 책은 무조건적인 선행이 오히려 해악을 끼칠 수 있으며, 선행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냉정한 판단이 앞서야 한다고 가르친다. ‘착한 일도 알아보고 해야겠다.’ 이 책을 읽으며 이런 반성부터 하게 된다. 선행에 앞서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