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없으면 사진도 없다. 그런데 사진에서 빛은 너무 많아도 안되고 너무 적어도 문제다. 우리의 눈은 빛의 양을 스스로 조절한다. 정확하게는 내 눈 속의 홍채가 움직여서 자동으로 조절한다. 빛이 너무 많거나 적으면 홍채의 면적이 스스로 변한다. 내가 세상을 더 밝게 보고 싶다고 홍채를 더 열어서 더 눈부시게 볼 수 없다. 홍채는 의도적인 수동조작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 몸 속의 홍채는 언제나 ‘오토모드’로 돼있다. 반면에 카메라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밝게 찍을 수도 더 어둡게 찍을 수도 있다. 그것을 조절하는 중요한 장치 중 하나가 조리개다(또 하나는 셔터). 조리개는 눈의 홍채와 정확하게 같은 역할을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조리개는 홍채와 달리 ‘수동조작’이 가능하다는 것뿐이다.

캐논 50mm 렌즈 속의 조리개. 이 렌즈의 경우는 5개의 조각이 모여 오각형의 통로를 만들고 있다. 조리개 주변에 초점을 자동으로 맞추기 위한 모터가 보인다.(사진_위키피디아)

조리개(aperture)라는 단어는 ‘개방하다’라는 뜻인 라틴어 aperire에서 왔다. 007영화의 첫장면을 보면 턱시도를 입은 제임스 본드가 걷다가 몸을 돌려 카메라를 향해 총을 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그 장면의 주변을 장식하는 것과 비슷하게 생겼다. 조리개는 카메라에서 두 가지 역할을 한다. 하나는 렌즈 안에 위치해서 크기를 조절함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다. 조리개가 많이 열리면 빛이 목적지인 센서(필름카메라를 쓴다면 그 지점이 필름면이 될 것이다.)에 많은 빛이 간다. 셔터는 시간으로 이 빛을 조절하는 반면에 조리개는 겹쳐진 잎처럼 원형으로 배치돼 물리적으로 빛을 조절한다.

조리개의 나머지 역할은 심도에 관한 것이다. 통상 멀리 있는 것이 흐리게 보일 때 눈을 찡그리면 약간 선명하게 보인다. 눈을 찡그린다는 것은 눈을 가늘게 뜨는 것인데 이때 들어오는 빛이 줄어듦과 동시에 빛이 지나가는 통로가 줄어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심도가 깊어져서 선명도가 올라간다. 눈에서 빛의 양을 조절하는 것을 우리 의지로 할 수 없는 것에 반해서 눈에서 심도를 조절하는 것은 홍채와 달리 약간 조절이 가능하다. 그런데 조리개의 중요한 역할인 이 심도를 조절하는 기능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장면을 만든다. 배경만 별도로 흐리게 만들 수 있다. 아웃포커스(Out focus)다.

우리가 흔히 아웃포커스라고 부르지만 실은 Out of Focus를 줄인 말이다. 그러니까 ‘포커스의 바깥’정도로 해두면 되겠다. 배경이 멀리 떨어진 어떤 물체를 찍을 때 조리개를 열면(그러니까 빛이 많이 들어오도록 하면) 심도가 얕아지고 그 결과, 즉 포커스(초점)의 바깥은 흐려지게 된다. 이 현상은 처음 카메라를 들고 찍는 초보사진가들에게 사진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첫단계가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있는 것을 그대로 찍었는데 눈으로 보는 것과 달리 배경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다. 반면 초점을 맞춘 피사체는 선명하다. 그래서 내가 찍은 그 피사체로 더 집중시키는 효과가 생긴다. 여기서 좀 더 나가면 내가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나도 처음 SLR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50mm 표준렌즈를 사용해서 개방된 조리개로 친구를 찍어서 인화한 사진을 처음 봤을 때를 돌아보자면, 나도 나의 첫 아웃포커스 사진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소리 냈던 것 같다. “와.”(이것을 내가 찍다니.)

50mm렌즈에 조리개를 최대한 열고 찍은 사진. 물론 나의 첫 사진은 아니다. 

그런 아웃포커스의 장면은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의 근대 회화에서는 볼 수 없다. 피사체는 선명하고 배경만 흐린 장면 같은 것은 눈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아웃포커스가 만드는 장면은 사진적인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장면의 효과는 카메라를 든 사람의 실력이라기 보다 카메라의 실력이다. 그림처럼 아웃포커스 효과를 위해서 흐리게 색칠하거나 손으로 문지를 필요가 없다. 초점을 맞추고, 조리개를 열고, 셔터를 눌러 찍으면 된다. 그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