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융복합의 시대다. 대부분 산업이 개별 성장 대신 ‘크로스오버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IT기업이 자동차를 연구하고 자동차 회사가 통신 기술을 배우는 식이다. 새로운 시각을 통해 블루오션을 개척하려는 기업도 많아지고 있다.

준비성이 철저한 회사는 비교적 여유롭게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일찍부터 움직여 나름대로 시장 기반을 닦아둔 덕분이다. ‘여행’과 ‘의전’이라는 단어를 하나로 묶어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정명진 코스모진여행사(이하 코스모진) 대표를 만나봤다. 수많은 여행객 중 단 한 명만 노리겠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시장에 뛰어든 사람이다.

여행 안 즐기는 여행사 대표

“무모한 도전이었죠.” 정 대표의 첫마디는 오래 전 그날을 떠올리며 시작됐다. 코스모진이 설립된 시기는 지난 2001년. 그가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97년이었다. 당시 20대의 젊은 나이, 퇴직금 700만원을 초기 자본금으로 일을 시작했다.

“여행사에 잠깐 몸담으며 ‘의전 관광’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국내에서 국제 회의 등이 열릴 때 외국인들을 관리했던 경험이 있거든요. 당시 국내에는 VIP를 의전하는 전문 여행사가 없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거의 불모지에 뛰어든 셈이었죠.” 정 대표의 회상이다.

초창기 사무실을 함께 지킨 직원은 한 명. 우여곡절도 많았다. 주요 호텔, 국제 행사 담당자들은 회사의 사업 비전 설명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다수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 아닌지라 일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정 대표는 “힘들었지만, 해외 VIP의 방문이 많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점차 ‘워커홀릭’으로 거듭났다. 회사에 머무는 시간이 늘고 집에서도 사업을 구상하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지금까지도 여행을 크게 즐기지 않는다고 한다. “잠깐 여행을 떠나도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사업이 확실히 정상궤도에 올라 제가 없어도 될 때 장기간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여행을 안 즐기는 여행사 대표인 셈이다.

코스모진은 점차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VIP가 한정적인지라, 고객을 일단 유치하기 시작하니 문의가 빗발치기 시작한 것이다. 결정타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당시 소소한 일정을 세심하게 준비해준 것이었다.

이 밖에 제시카 알바, 메간 폭스, 윌 아이엠, 우디 앨런 감독, 스와질란드 왕족 등의 방한 일정을 도우며 점차 입지를 쌓아갔다. 회사는 날로 성장을 거듭했다. 사무실이 좁아 같은 건물 내에서 5번가량 이사를 가야 했을 정도다. 현재 6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도약했다. 직원 수는 80여명으로 늘었다.

▲ 사진 =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차별과 특혜의 시선, 관광 시장 걸림돌 된다”

정 대표는 국내 여행업계에 아직도 ‘의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박혀 있다고 지적했다. 특정인에게 일정 부분 혜택을 주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게 골자다. 업계뿐 아니라 정부부처도 비슷한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코스모진을 운영하며 발견한 문제점이다.

“에릭 슈미트 구글 전 회장이 방한한 적이 있었어요. 그는 판문점과 DMZ를 직접 가보고 싶다고 했죠. 한국군이 직접 의전을 했다면, 우리나라가 안전하다는 이미지를 외국에 알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결론적으로는 미군의 협조를 받아 판문점에 가야 했습니다. 한국 땅인데도요.”

정 대표가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의전’이라는 것 자체가 국내에서는 ‘차별’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국빈이 방한한다 하면 대부분 여행사 쪽으로 문의가 들어옵니다. 일정은 어떻게 짜면 좋고 시간은 어떻게 쓰는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요. 유럽 등의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의전에 나서는 경우도 많고요. ‘특별한 분에게는 특별한 대우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차별’로 비춰질 수 있는 각종 혜택들에 대한 국민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정 대표는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은 일반인과 똑같이 행동하기가 힘들다. 시장에서 떡볶이를 먹거나 줄을 서는 것도 힘든 경우가 많다”며 “이들을 위해 특정 관광지를 개장 전에 잠깐 둘러볼 수 있게 해주는 행동 등을 ‘특혜’라고 무조건 몰아세우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여행업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중국 이슈’와 관련해서도 입을 열었다. 정 대표는 “정치적 문제 등과 맞물려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정작 문제는 관광객 수가 아니라 여행사들의 안일한 태도”라며 “바뀌는 시장 트렌드를 따라갈 생각은 안 하고 수백명짜리 패키지 관광객이 왜 안 오냐고 ‘남탓’만 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최근 용산 근처 찜질방 등에 가면 중국인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을 찾는 여행객들이 늘며 자유여행객도 동시에 많아진다는 것이다. 나홀로 여행객이 늘고, 조용한 장소를 스스로 찾아가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 대규모 패키지 상품 개발에만 열을 올린다는 것이다.

“여행사들은 여전히 남이섬을 고집하고 가이드를 준비하지만, 중국 관광객들은 스스로 <도깨비> 촬영장소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자유여행객에 대한 대비 없이 기존에 사람들이 오는 골목(패키지)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셔틀버스만 따로 운영하는 상품을 준비하거나 정보를 제공해주고 티켓만 따로 판매하는 방법을 찾는 등 고민이 필요합니다.” 정 대표의 일침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여행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 여행사에 입사할 수 없다”는 말을 던졌다. 일이 많아 여행을 떠날 시간이 많이 없다는 뜻이 담긴 농담이다. 동시에 경력 단절 여성의 사회진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나름대로의 소신을 밝혔다. “(여행업은) 커뮤니케이션 등 능력만 있으면 언제든 재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사회진출을 망설이는 여성들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하고 싶습니다.” 여성 CEO의 진심이 담긴 한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