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사들이 재해자살보험금을 미지급하면서 촉발된 ‘자살보험금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보험업계 역대 최고수위의 제재인 ‘CEO 문책경고’를 확정, 삼성생명의 김창수 사장과 한화생명의 차남규 사장 연임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지난 23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이들에 대한 문책경고를 의결했다. 김 사장은 지난 1월말 임기가 종료됐으나 최순실 게이트로 삼성그룹 인사가 늦어지면서 다음 주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특히 같은날 삼성생명이 이사회를 열고 `사장 연임’을 발표했는데, 불과 9시간만에 금감원의 초강력 제재가 의결되면서 혼미스러운 상황이 빚어졌다.

한화생명도 상황이 다소 다르지만, 임기가 1년 남은 차남규 사장의 중도사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한화생명 차사장에 대해 "문책경고가 의결되면 임기를 채울 수 있겠느냐"며 중도사퇴가 불가피할 것임을 시사했다.

실제 지난 2009년 황영기 당시 KB금융그룹회장이 전직인 우리금융그룹회장 시절 부적절한 투자의 손실 책임으로 중징계 제재를 금감원으로 받았다. 당시 KB금융그룹 회장직과 무관했지만, 결국 사퇴한 적이 있었다. 다만 황영기 회장은 2013년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 받은 제재를 취소해달라며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낸 제재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삼성과 한화측은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이들 생보사가 행정소송 등의 방안을 통해 감독당국의 제재에 불복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보험금 지급이 당연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지만,, 법원에서 판단한 사항에 대해 감독당국이 반기를 드는 것이 옳지 않다는 의견도 나와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이코노믹리뷰>는 자살보험금을 둘러싼 쟁점과 보험사 및 감독당국의 입장을 문답식으로 정리해봤다.

Q. 금감원이 강력한 행정제재를 강행했다

==금감원은 23일 오후 제재심을 열고 자살보험금을 미지급한 삼성‧한화‧교보생명에 대해 영업 일부 정지와 CEO 문책경고 등 행정제재안을 확정했다.

우선 영업 일부정지 기간은 삼성생명이 3개월, 한화가 2개월, 교보는 1개월로 확정됐다. 영업정지 기간에는 재해사망보험을 판매할 수 없다. 또 영업정지 제재를 받은 3사는 향후 3년간 신사업 진출을 못하게 된다.

CEO 문책경고는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이 받는다. 문책경고시에는 현재 최고경영자가 연임은 물론 3년간 금융사 임원으로 선임될 수 없다.

Q. 생보사별 피해는 어떤지

==영업 일부정지는 신상품에 해당된다. 게다가 1~3개월로 기간도 길지 않아 영업상의 큰 타격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신사업 진출 역시 제재받는 3사가 모두 대형사이기 때문에 이미 대부분 갖춰 놓고 있어 문제가 없다는 전망이다.

하지만 CEO 문책경고의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만일 CEO 문책경고가 확정될 경우 당장 삼성생명 김창수 사장과 한화생명 차남규 사장의 연임이 어려워질 수 있다.

전날 삼성생명 이사회에서 연임 안건이 의결된 김창수 사장은 다음 달 주주총회 승인을 받으면 정식 연임이 되는 상황이다. 이번 제재 때문에 연임이 힘들어질 수 있다. 차남규 한화생명 사장의 경우 2012년부터 사장을 맡아 연달아 연임하고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다만 제재심 결정은 금융위원회에서 최종 확정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결론이 바뀔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Q. 제재의 근거는

==감독당국은 보험사측 잘못이 명백하다고 설명한다. 금감원은 보험업법 127조3항 ‘약관 준수’ 규정을 내세우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는 보험계약자의 권리 축소 또는 의무 확대 등 보험계약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포함하지 아니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따라서 가입자가 재해사망금만 청구했더라도 보험사들이 알아서 자살보험금까지 챙겨줘야 한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피보험자는 보험금을 청구할 때 약관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를 감안할 때 보험사들이 주계약 관련 보험금만 지급한 것은 지급 보험금을 악의적으로 축소했다는 주장이다.

금감원 압박에 ‘백기 투항’…저항하는 삼성‧한화생명

Q. 미지급 자살보험금 규모는 얼마인지

==미지급 자살보험금 총 2600억여원 가운데 소멸시효가 지난 금액은 무려 2200억원에 육박한다. 만일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대부분의 자살보험금이 사라지게 된다.

다만 대부분의 생보사들이 금감원의 제재 압박에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전액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교보생명의 경우 제재심 당일(23일) 오전 자살보험금 전액 지급을 결정했다. 남아있는 미지급금은 삼성‧한화생명분 약 1900억원 규모다.

금감원측은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소멸시효가 지날 때를 기다린 회사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Q. 교보생명은 제재수위가 다소 낮다

==뒤늦게나마 자살보험금 전액 지급을 결정한 것이 반영됐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지난해 말 자살보험금을 전액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 지급하고 공익재단에 기부하는 형식으로 ‘꼼수’를 부렸다. 일각에서는 이 과정에서 ‘괘씸죄’가 적용됐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Q. 삼성‧한화생명의 대응은

==금감원의 제재 통보가 공식적으로 온 뒤 입장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보험업계에서는 이들이 제재에 불복할 것이란 관측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이미 대법원에서 법적 판단이 난 사항에 대해서 감독당국이 제재안을 내는 것이 잘못됐다는 논리다.

익명을 요청한 생보업계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이 나있는 상황에서 사법기관이 아닌 곳에서 제재를 가한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며 “법적인 판단이 우선이 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