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성장에 걸림돌이라고 지적됐던 규제들이 점차 완화되고 있다. 이전까지는 유전체 분석 업체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영역이 제한적이었다면 앞으로는 그 범위가 넓어질 전망이다. 다만, 추가적인 규제 완화도 필요하고 유전자 검사 유효성을 입증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정밀의료 산업 육성 흐름을 타고 관련 산업 지원이 활발해질 전망이어서 유전체 산업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유전체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의 수혜가 예상된다.

예방주사 말고 DTC

지난 2016년 6월 정부는 민간유전체분석(Direct to Consumer, DTC) 시장 규제를 완화했다. 법률을 개정해 민간업체가 의료기관의 의뢰가 없어도 소비자들에게 직접 유전자 검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언젠가는 질병 예방을 위해 주사를 맞는 것이 아니라, DTC 검사로 미리 질병을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기존에는 의료 기관을 통해 의뢰를 받아야만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적었다. 하지만 이번 규제 완화로 앞으로는 일반 소비자들도 자유롭게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DTC 규제 완화는 유전체 분석을 대중화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평가된다.

규제가 풀린 항목은 △체질량지수와 중성지방농도 △콜레스테롤 △색소침착 △탈모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 △카페인대사 △비타민 C 농도 △피부탄력 △피부노화 △모발 굵기 등 12개다. 질병 예측이나 유전질환 부분이 아닌 미용과 웰니스 분야에 한정됐다. 하지만 앞으로 시장 반응이나 분석 결과에 따라서 서비스 범위는 점차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개인 유전체 분석은 지난 2008년 <타임>이 올해의 기술로 선정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도 관심을 받기 시작한 분야다. 지난 2013년 기준 글로벌 유전체 분석시장은 약 13조원 규모로 추정되는데 2018년에는 약 23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특히 미국이 가장 공격적으로 DTC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개인 유전체 분석은 대중화뿐 아니라, 제약회사와의 협력으로 신약 공동개발에 활용하거나 정밀의학 시대에 개인 맞춤 치료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확장할 수 있다. 최재훈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앞으로는 유전자 정보와 함께 개인의 생활습관 등을 포함해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업체가 유전체 분석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출처=한국투자증권

유전자 검사 범위 넓어진다

지난 2월 21일 보건복지부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안’이 통과됐다고 밝혔다. 개정안에는 그동안 유전자 검사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던 유전자 종류를 줄인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유전자 변이가 질병을 유발한다는 과학적 근거가 확보된 고지질혈증, 고혈압, 골다공증, 당뇨병 관련 유전자 11종을 금지 목록에서 지워준 것이다. 개정안은 이달 안으로 공포되고 바로 시행될 예정이다.

지난 2007년 복지부는 ‘유전자를 통해 폭력성, 장수, 호기심 등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유전자검사 28종을 ‘과학적 증명이 불확실해 국민에게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했다. 하지만 10여년 만에 개정안을 통해 금지·제한 항목을 크게 줄였다. 다만 질병 없는 일반인이 오남용할 가능성이 있는 장수·지능 유전자 검사 제한은 그대로 유지된다.

▲ 출처=교보증권

NGS 보험 적용… 11만원으로 유전자 검사할 수 있다?

유전자 검사 대중화와 더불어 검사 비용을 낮추기 위한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11만원으로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3월 1일부터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기반 패널 검사에 보험 급여 기준 항목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기준이 정해지면 본인 부담 50%가 적용돼 환자들의 검사료 부담이 줄어든다.

NGS 패널 검사는 알려진 유전자 변이 수십개를 하나의 패널로 구성해 한 번에 검사하는 것을 말한다. 암의 유전자 변이를 찾아내거나 자가면역질환, 유전자질환 등에 활용되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해 8월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정밀의료를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밀의료 기술 기반을 마련하려면 코호트 구축이 가장 중요하다. 코호트(Cohort)는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집단을 뜻하는 말이다. 복지부는 최소 일반인 10만명의 유전정보 수집으로 코호트를 구축할 방침인데, 정보 수집을 위해서는 NGS가 적극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NGS는 소비자 가격 50만원 이상의 고가 검사기법이다. 따라서 소비자 검사 수요를 높이기 위해 건강보험 적용으로 비용을 낮춰주려는 것이다. 앞으로 NGS 검사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를 모으면서 비용을 낮춰줄 검사기기 등도 출시되고 있다. 미국의 유전자염기서열분석 장비 제조업체 일루미나(ILMN)는 100달러(약 11만원)로 한 사람의 유전체 분석이 가능한 기기를 수년 내로 만들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다만 복지부가 건강보험 적용을 제한된 요양기관에서만 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고 ‘선별 급여’를 적용해 업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선별적 급여 조건을 맞출 수 있는 것이 일부 대형 병원에 국한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따라서 유전체 검사 시장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규제가 완화되고 있고 관련 업체들의 수혜가 예상되는 부분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규제 완화가 어떻게 실시되고 있는지 그 추이를 꼭 확인할 필요가 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한편 유전체 분석 시장을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적극적으로 나타나면서 앞으로 유전체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최재훈 연구원은 “규제 완화와 지원 정책이 이어지면서 유전체 분석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며 “유전체 분석 서비스 업체들이 추가 장비 구매를 해야 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비용 증가가 불가피할 수 있지만 유전자 정보 생성이 크게 늘어나면 유전자 정보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서비스 산업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전자 검사 범위가 넓어지고, 대중화되고, 비용이 낮아졌을 때 종합적으로 수혜를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국내 업체는 마크로젠, 랩지노믹스, 테라젠이텍스, 디엔에이링크 등이 있다. 마크로젠은 글로벌 150개국에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랩지노믹스는 개인 유전자를 분석해 다이어트 방안을 제시하는 서비스 등을 출시했다. 디엔에이링크는 SK케미칼과 함께 ‘DNAGPS’ 개인유전체분석사업 서비스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고 테라젠이텍스는 유한양행과 ‘헬로진(HelloGene)’ 서비스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