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라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무엇에라도 홀린 듯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신토불이(身土不二)를 외쳤다. 몸과 태어난 땅은 하나. 좋은 뜻 만큼이나 모두가 열광했다. 그러나 너무도 쉽게 잊혔던 단어. 신토불이가 르노삼성자동차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한국적인 것을 내세워 글로벌 명가로 도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잊혔던 한국의 힘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르노삼성의 활약기.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이 있다. 그런데 유독 자동차업계에서만큼은 통하지 않는다. 늘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다 보니 외부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경쟁사의 움직임에 따라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기술 발전이 변화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갈수록 자동차 교체 시기가 짧아지는 이유다. 오죽하면 10년 자동차타기 운동이 있겠는가. 국내 자동차 시장 뿐 아니라 세계 자동차 시장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그러나 르노그룹은 다르다. 다양한 변화보다는 품질 개발에 관심을 기울인다. 지사 개념인 르노삼성자동차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르노삼성은 2000년 첫 출시 이후 현재까지 SM시리즈만 선보였다. 외형적 변화의 폭은 최대한 줄이면서 말이다. 대신 기술력 개발에 매진했다.


한번이라도 SM시리즈를 타본 사람이라면 왜 사람들이 “SM, SM”하는지 납득이 갈만큼. 지난달 16일 뉴SM7은 사전예약을 시작한 지 4일 만에 4000대 판매고를 올렸다.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8월 한 달 동안 팔린 SM7의 경쟁차종인 그랜저와 알페온, K7의 판매량은 각각 5403대, 415대, 1602대로 나타났다. 정식 판매가 아닌 상황을 감안하면 엄청난 양이다. 그만큼 르노삼성 차량의 품질이 뛰어나다는 것이 읽힌다.

르노삼성이 처음 만든 SUV QM5의 경우 천장 전체가 투명한 파노라마 선루프,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 시스템, 오토 와이퍼, 제동 상황 발생 시 비상등을 점멸하는 ESS(Emergency Stop Signal), 차속 감응 전동식 파워스티어링, 크루즈 컨트롤 등의 기능을 갖췄다. 첨단기능 장착은 다양하고 편리한 기능에 민감한 한국 운전자들의 취향을 고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역대 CEO 역량 인정 그룹내 중역 포진
여기에 하나 더. 르노삼성은 르노그룹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뛰어난 인재를 바탕으로 그룹 내 씽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 규모도 3위로 핵심 거점 역할을 맡고 있다.

르노삼성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품질과 고객만족이다. 정확히 말하면 고객을 중심으로 한 품질 개선이다. 일례로 국내에 출시됐던 SM시리즈의 경우 실외 뿐 아니라 실내디자인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색상 하나하나에도 한국인에 맞게 했다. 국내 유명 디자이너에게 직접 의뢰를 했다고 한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르노삼성 내부 인재들의 활약도 한몫 거들고 있다.

르노그룹의 러시아 진출 이후 플루언스(SM3 러시아판)가 출시되기까지 르노삼성의 엔지니어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 또 르노그룹 내 협력업체 품질 개선을 위해 설립한 협력업체 품질 본부를 이끌고 있는 것도 르노삼성의 해외파견 임직원들이다. 르노그룹 입장에선 르노삼성이 판매시장과 핵심 거점, 기술연구소 등 다방면에서 효자인 셈. 그래서일까.


르노삼성을 거쳐 간 CEO들은 그룹의 중요한 자리를 떡하니 꿰차고 있다. 1대 CEO를 지냈던 제롬 스톨은 경상용차 세일즈&마케팅 담당 부회장으로, 2대 장 마리 위르띠제 사장은 상용차 판매 총괄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르노삼성이 르노그룹 중역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면 성실하고 손재주가 뛰어난 임직원을 바탕으로 가장 한국적인 게 세계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르노삼성이 향후 르노그룹에서 차지하게 될 비중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지난 1일 취임한 프랑수아 프로보 사장은 그룹 내 핵심 부서를 거친 인재다. 영업과 마케팅 등을 두루 거치며 차세대 그룹 내 리더로 주목받는 인사 중 한 명. 품질력을 바탕으로 한 영업과 마케팅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낼 경우 그룹 내 중역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르노삼성은 그에게 천군만마로서 다가갈 수 있다.

프로보 사장은 2002년 프랑스 르노 본사에 입사한 뒤 르노포르투갈 영업총괄(2005년), 르노본사 마케팅기획 담당(2008년), 르노러시아 부사장(2010년)을 역임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그가 맡은 후 르노러시아법인은 판매량이 76%가 오른 것으로 알려진다.

“전기차 시대 연다”
프로보 사장은 취임사에서 “르노삼성에서 일하게 된 것은 멋지고 흥미진진한 기회”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내년 성공적으로 전기차를 출시하고 동시에 세계시장에서 세운 목표도 달성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전기차는 새로운 자동차의 대안으로 꼽힌다. 그룹 내에서도 거는 기대가 크다. 르노삼성에서 전기차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은 그룹 내 르노삼성의 위치가 얼마나 높은지를 짐작할 수 있다.

르노삼성은 뉴SM7 판매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또 2012년부터 전기차 상용화를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뛰어든다. 프로보 사장은 “전기차가 미래 잠재력을 지닌 새로운 자동차의 대안”이라며 “정부보조금도 없고 네트워크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러시아에서도 전기차에 관심이 높다. 내년에 국내 시장에 도입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르노삼성이 선보일 전기차는 기존 충전식이 아닌 탈거형 배터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질 것으로 알려졌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